“가족은 꼭 만들어야 하는 거야."
"왜?"
"그래야 노년에 안 외로워."
저녁 식사 자리에서 열심히 밥을 입으로 퍼 나르고 있는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에는 까슬까슬 가시가 돋쳐있었다. 멀쩡한 직장을 때려치우고 지난 1년여간 프리랜서인지 디지털 노마드인지를 하겠다며 가족들 속을 태우더니, 이제는 또 1인 가구인지 비혼인지를 하겠다며 엄마 속을 왈칵 뒤집어 놓은 탓이었다.
“외로운 거랑 남편 자식 있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
세상이 많이 변했다지만, 여자는 고로 지아비를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훗날의 인생 판로가 뒤바뀌는 ‘뒤웅박 팔자’라고 은연중에 믿고 있는 엄마였다.
“얘는? 너 늙어서 혹시 아프기라도 해 봐. 그럼 누가 돌보니?”
“요새 간병인 보험도 잘 나온다던데…….”
“아, 듣기 싫어!”
‘혼자 살다 아프면 어쩔래?’라는 걱정은 복지의 가족의존도가 높은 동아시아에서 비혼을 선택한 여성들이 흔하게 받는 염려 중 하나다 . 비혼 남성도 있는데, 유독 여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노후 복지 의존도가 성별에 따라 극명한 대비를 보이기 때문이다. 모 언론사가 삼성병원을 비롯한 병원 네 곳과 국립암센터의 암 환자를 300여 명을 면담한 결과로 작성한 통계 자료 중 보호자 병간호에 관한 항목을 보면, 여성 암 환자의 경우 배우자가 병간호를 해준다는 경우는 30%가 채 되지 않으나 남성 암 환자의 경우 96.7%, 대부분의 환자가 배우자의 병간호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뿐만이 아니라 여성의 경우 암 환자 본인이 집안일을 비롯한 각종 살림살이를 전담하는 비율이 68%에 육박했으나 남성의 경우 7.7%만이 해당 항목에 ‘그렇다’고 대답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위의 통계만 놓고 보자면 여성이 암의 걸릴 경우 친정엄마나 간병인에 의지하거나 스스로 보살피는 와중에 집안일도 도맡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얘기가 되는 셈이었다. “애미야, 그럼 애비 밥은?’ 암 수술을 하러 가는 날 이런 얘기를 들었다는 한 인터넷 사례가 재미를 위한 우스갯소리로만 넘길 일은 아닌 모양이다.
외로워서, 혼자 나이 드는 것이 두려워서, 경제적 이유로, 주변 사람들이 다 결혼할 때 나만 안 하면 이상해 보일까 봐…….
몇 년 전에 회사를 다닐 때 선후배 동기들에게 들었던 기혼 선망의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1900년대 초 농경 사회 때 결혼을 하는 이유와 크게 달라진 점이 없어 보이는 것은 기분탓인가?). 이들은 1인 가구로 사회 속에 남겨지는 상태가 ‘두려워서’ 기혼자가 되고 싶어 했다. 은연 중에 결혼을 노후 보장 장치로 여기고 있는 이들의 기저심리에도 마찬가지로 두려움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닐까(모든 기혼자 혹은 기혼 선망인구가 그렇다고 일반화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아직 선사시대 선조와 같은 ‘원초적 공포’를 가진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바로 ‘홀로 됨’을 두려워하는 것. 그때야 생명 유지와 직결된 본능과도 가까운 감정이었을 것이다. 혼자서는 식량을 제때 구할 수도, 위험한 야생 동물에 맞서 싸울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생명 부지를 위해 공동체 구성원들과 잘 어울리고 생물학적 번식을 통해 가족을 이루는 것은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이런 부족 사회에서 ‘낙인’이 찍혀 가족을 이루지 못하고 무리 밖으로 퇴출당하는 것은 곧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생물학적 죽음과 직결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다룰 내용은 집단을 이루어 후대에 성공적으로 유전자를 계승한 선조들이 아니라 모험을 자처하여 씨를 후대에 남기지 못한 돌연변이 선조들과 그 계승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들은 완전한 행복과 충만감을 찾기 위해 모험을 자처한다. 법으로 맺어진 0촌 관계보다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직업적 성공에서 안정감을 찾으려고 한다. 배우자의 경제적 조건보다 본인의 경제적 조건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자신의 소유물로 자아 존중감을 획득한다. 내 배우자나 직계 자손이 무엇을 얼마큼 누리고 소비하는지가 그들 행복의 질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소비하고 누리는 것이 그들 삶의 질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자아 존중감 획득이라는 새로운 동기가 이 돌연변이들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 자신이 최종의 목표이고, 최고의 가치이며 사회란 인간의 그와 같은 궁극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라는 인식을 베이스로 깔고 간다. 일하기 위해 살지 않고, 가족을 위해 살지 않으며, 사회적 대의를 위해 살지도 않는 인류가 곳곳에서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사람 앞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지만, 지금 이 순간 1인 가구의 길을 걷고자 하는 다른 동지들을 위해, 또 그런 이들을 탐구대상처럼 혹은 사회적 극복 과제로 들여다보고 싶어 하는 이들을 위해 이 모험기를 남긴다.
*1.지은숙 ( Eunsook Jee ). 2020. 한·일 비교의 관점에서 본 한국 비혼담론의 특성과 생애서사 구축에서 나타나는 정치성. 한국문화인류학, 53(1) : 179-218
*2.https://www.ytn.co.kr/_ln/0103_201404141523027188 "'여성 암환자 이혼율, 남성 암환자의 4배" 2014-04-14
*3.국영희 , 장하림. 2011. 미디어담론 속 문화유형에 관한 연구 -개인주의 논의를 중심으로-. 한국자치행정학보, 25(2) : 177-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