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여기 두 사람이 있다. 그 둘은 각자의 영토를 꾸리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섬이 있다. 그것은 한 개일 수도 있고 혹은 수백개의 군도가 퍼져 있을 수도 있다. 우리는 서로를 만나고 싶을 때그 사이에 있는 섬에 조심스럽게 발을 디딘다. 섬은 우리가 교감이자, 공감이라고 부르는 이름의 신성한 중립지대이다. 추위에 유독 민감한 열대지방 출신인 상대에게 억지로 추위를 이겨보라 강요할 필요도, 더위에 민감한 내가 온 몸에 불을 붓는 것 같은 열기를 참을 필요 없는 그런 중립지대에서 우리는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
바싹 구운 비스킷처럼 부서지는 희고 고운 모래 알갱이들을 발바닥에 느끼며 우리는 오래오래 해변가를 거닌다. 반듯한 당신의 이마 위에 흐트러진 머리칼을 걷어내는 바람에는 소금끼가 어려있지만 날씨는 너무 덥지도, 또 너무 춥지도 않은 적당하게 선선한 날씨다. 두런두런 대화가 오간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붉은 옷자락을 끌고 바다 지평선을 넘어간 태양 뒤로 푸른 밤 하늘이 물감처럼 번져올 것이다. 반듯하게 닦인 희끄무레한 은백색 초승달이 고개를 내민 밤이다.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며 북두칠성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인간 관계란 이런 것이다. 각자가 일구고 보살펴야 할 곳은 그곳대로 남겨 놓은 채 기꺼이 시간과 감정을 할애하여 사람 사이에 놓인 ‘섬’으로 가볍게 소풍을 다녀오는 것. 그리하면 무리하게 바라는 것도,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며 폭력을 행사할 일도 없을 것이다. 상처를 주기보다는 함께 있는 공간과 장소의 특수성과 소중함을 깨닫고 최대한 가볍고 즐거운 기분으로 함께 바다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반나절 내내 함께 쌓아 올린 모래성이 밀물에 쓸려 간들 어떠하리. 우리 사이의 섬은 침몰되지 않고 이곳에 남아 언제든 기꺼운 상태의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모래성은 무너져 내리기 때문에 더 아름답다. 그리하여 쌓아 올리는 순간이 더 소중하고 특별하게 느껴질지도 모르는 것이다.
나는 당신들을 우리 사이의 섬으로 기꺼이 초대할 수 있는, 또 그 초대에 기쁘게 답하여 함께 화담을 나눌 수 있는 그런 관계를 꿈꾼다. 구태여 근원적 세계 속의 스러지고 흘러가는 계절을 되돌리거나 빨리 감기 할 필요 없다. 당신은 당신의 계절 속에서 잠시 걸어 나와 함께 소풍을 즐기다 돌아가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