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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Dec 03. 2020

‘정상 가족’ 궤도를 이탈한 주거 난민들

한국 청년 1인가구에 대한 고찰




본인을 '주거 난민'이라 칭하는 30대 중반의 보라 씨는 현재 ‘역세권 청년 주택’에 입주한 지 3개월 차였다. 역세권 청년 주택이란 지난 2016년 서울시가 만 19세 이상 39세 이하의 무주택 청년 및 신혼부부를 위해 대중교통이 편리한 역세권에 임대주택을 마련해 제공하는 사업을 지칭한다. 보라 씨가 거주하는 청년 주택은 17층짜리 오피스텔로 층마다 20세대씩 거주할 수 있게 되어있어 총 340가구가 입주해 있었다. 보증금 4천 6백에 월세 28만 원(관리비 10만 원 미포함). 주어진 공간은 5.5평이 전부였다. 그는 인터뷰에 앞서 "1인 가구로 버티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주거 안정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운을 뗐다.


"저는 어디 가서 저를 소개할 때, 공대 나와서 사회를 부유하는 여자라고 얘기해요. 말 그대로 어느 한곳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흘러 다니는 부평초 같은 신세거든요. 대학 잘 가서 학벌만 높으면 그 뒤로는 탄탄대로만 펼쳐지는 줄 알았는데, 막상 졸업하고 보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니더라고요. 학과가 학과이니만큼 들어가는 곳마다 견디기 힘든 남초 직장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자주 이직을 해야 했고 직장을 옮길 때마다 회사 근처로 집도 옮기다 보니 결국 불안정한 철새 생활을 하게 되었고요. 아마 이사만 2~30번을 다녔을 거예요. 오죽하면 지인들한테 가장 자주 듣는 소리가 '또 이사갔어?' 라니까요."


보라씨는 비교적 월세가 저렴한 행복주택도 알아보았으나 이제는 아예 지원조차 하지 않는다고 했다.


"행복 주택 경쟁률이 얼만 줄 아세요? 거의 10,000대 1이에요. 공고 게시판에 보면 집 달랑 한 채 올라왔는데 조회 수가 삽시간에 몇만 회가 훌쩍 넘어간다니까요. 얼마나 치열할지 대충 감 오시죠?"


그렇다고 역세권 청년주택 입주자 경쟁률이 만만한 것도 결코 아니다. 서울시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역세권 청년주택 첫 입주자모집 당시 14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고 한다.





보라 씨는 자신을 스스로 주거 난민이라 칭할 정도로 기숙사, 셰어하우스, 청년 주택, 방 쉐어 등 다양한 형태의 집을 전전해왔다. 한때 셰어하우스가 서울 내 집 마련의 대안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신촌역 근처의 여남 공용 셰어하우스에 1년 동안 지내며 곧 그 생각도 접게 되었다. 월세 31만 원으로 6명이 벙커 침대 3개로 방 한 칸을 쉐어하는 곳임에도 방 크기가 성인 양팔 너비 기준으로 각 손끝이 벽에 닿을 정도로 협소했기 때문이었다. 주방이나 거실 같은 공간은 다른 방을 사용하는 사람들과 함께 사용했는데, 그 숫자만 20~30여명에 육박했다고 했다. 이러한 '닭장 쉐어'를 제공하는 업체는 현재 서울에만 30여 채가 넘는 건물을 셰어하우스 형태로 운영하고 있었다. 천정부지 치솟는 집값으로 내 집 마련의 꿈이 점점 희박해진 청년층들의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보라 씨의 이야기를 듣는데 얼마 전 KBS 공식 유튜브 채널 [중국 어제와 오늘]에서 시청한 '홍콩의 맥도날드 난민' 클립이 떠올랐다. 2018년을 기준점으로 홍콩 시내 12평 아파트의 분양가는 25억 원 선을 돌파했고, 이와 함께 덩달아 치솟은 전세 월세난에 거리로 몰려난 난민들이 24시간 운영하는 맥도날드로 모여들어 밤을 지새운다는 내용을 담은 르포르타주였다. ‘넘사’ 급이 되어버린 집값 때문에 갈수록 작아지는 홍콩의 초소형 주택들과 그만큼 더 작아진 홍콩인들의 삶이 구겨진 종이컵처럼 영상 안에 빼곡히 쌓여 있었다.


1년 만에 셰어 하우스를 떠나 청년 주택으로 이사를 나가던 날. 이삿짐 옮기는 것을 돕기 위해 지방에서 올라와 처음으로 딸이 지내는 공간을 방문했던 보라씨의 엄마는 "네가 왜 이런 데서 살아야 하냐..."라며 눈시울을 붉히셨다고 했다.


“1인 가구가 되고 싶어도, 애당초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은 사람들은 엄두를 내기가 힘든 실정인 것 같아요. 신혼부부 전세 대출을 끼고 서울 근교 아파트를 얻어 들어가는 지인들을 보면서 아, 이래서들 결혼하는구나 싶더라니까요? 결혼을 통한 정서적 안정 뭐 이런 걸 다 떠나서(설령 그것을 얻지 못한다 해도) 우선 사는 데 가장 중요한 문제인 주거 안정이 이뤄지니까……”


2019년 1월에는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40대 비혼 여성이 올린 <가족형태 변화에 따른 주택청약제 도의 합리적인 수정 요청>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자신을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 44세 독신여성’이라고 밝힌 청원자는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20대부터 밤낮으로 학원 강사를 하며 열심히 돈을 모아 20여 년 만에 제 집을 마련하고자 했’으나 주택청약을 여러 차례 신청하여도 매번 가점 총액에서 부족하여 떨어지는 상황을 맞닥뜨려야 했다고 호소했다. ‘부양가족수에 따른 가점’ 항목에서 언제나 최저점을 받는 것이 치명적인 걸림돌로 작용했던 것이다.  “평형 가운데 가장 작은 59m2C 이하 주택을 기준으로 청약신청을 해왔습니다만, 조건에 맞는 지역 주택의 청약에 당첨 되려면 적어도 청약기간과 무주택 기간이 15년 이상 된 4명 이상 부양가족을 가진 40대 가장만 당첨되겠더군요. (…) 가족의 형태는 시대 변화에 따라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가족 형태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청약제도라면 반드시 수정되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1]


위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가 불거지는 이유는 정부의 임대주택 공급안이 청년-신혼부부-유자녀 위주의 정부가 정한 [정상가족] 기준으로 설계되었다는 데 있다.


현재 안중읍에 거주하고 있는 20대 사회초년생 K도 “비자발적 캥거루족族(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물리적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청년층)이 되었다”며 비혼 청년층의 자가 마련에 대한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했다.


“2020년 상반기 기준 서울시 원룸 평균 월세는 52만 원 정도인데, 여기에 관리비와 각종 공과금 그리고 생활비를 더하면 주거 관련 생활비만 거의 1백 만 원 돈에 달하게 된다. 게다가 사회초년생의 경우 학자금을 떠안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정된 월급으로 높은 월세를 부담하면서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느낀다. 지금 당장이라도 독립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무시무시한 전셋값 때문에 비자발적 ‘캥거루족’이 될 수밖에 없는 상태다.”


그렇다면 해외의 경우는 어떨까? 동아시아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회복지제도가 잘 갖춰져 있는 미국과 유럽은 1인 가구 증가 추세에 맞춰 발빠르게 새로운 정책을 펼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청년 1인 가구의 주거 안정을 목적으로 노후 건물을 리모델링하거나 신축해 저소득 1인 가구를 대상으로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SRO(Single Room Occupancy) 프로그램, SHFYA(Support Housing for Families and Young Adults) 등을 운영하고 있다. 주거의 질을 위한 최저 가이드라인도 마련되어 있어(건축지 규모 등) 1인가구(Singlehood)가 열악한 환경에서 주거지 않을 최소한의 쾌적한 환경을 보장하며 국가에서 관리비와 임대료 주거비 등을 지원한다. 또한 청년층 소득 구간에 따라 임대료 할인이나 주거 바우처 등을 지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1인 가구 비율이 전체 가구 중 35%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프랑스의 경우, 수입이나 자산이 일정 규모 이하인 청년 1인 가구에 대해서는 주택수당을 제공하고, 학생에게는 임대 보증금을 지원한다. 또한 국적과 상관없이 청년이 정부와 협약을 맺은 임대아파트, 학교 기숙사나 민간 기숙사에 입주하게 될 경우 개인주택수당(APL: Aide Personnalisée au Logement)을 제공한다. APL을 받게 되면 그만큼 월세나 대출금이 줄게 되는 것이다 (European Youth Portal, 2019).


반면 한국의 청년들은 국내 취업난과 실업 문제, 고용 불안, 낮은 임금 등으로 인해 사회·경제적 자립이 지연되는 가운데 치솟는 주거비용(임대료) 등 주거비 부담도 함께 짊어져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청년 가구의 주거불안정과 빈곤 문제가 장기화되고 있는 이유이다. 보라씨와 같은 청년 세대들이 닭장 셰어나 5.5평 원룸과 같은 열악한 주거공간을 전전할 수 밖에 없는 배경에는 이와 같은 사회적 장치들이 놓여 있다.


“매주 로또 사는 거 포기 못하는 사람들 마음 이해한다니까. 그래도 방법이 뭐 있겠어? 바득바득 씨드머니 마련해서 경기도 역세권부터 갭투하면서 점차 상급지로 올라가는 수 밖에는 답이 없어. 왜냐면 내가 버는 돈 보다 집 전세금이 훨씬 더 빨리 뛸 거거든. 항상 그랬잖아? 부동산 불패 신화 나라의 후손 답게 살아야지.”


셰어하우스를 졸업하고 2년짜리 계약 집에 들어오던 날 친구와 나누었던 대화다. 비혼 1인 가구를 지향하는 친구와 나는 밤이 깊도록 전화를 붙들고 ‘각자도생’할 궁리를 한 것이다.


“결론적으로는 돈을 많이 벌어서 자가 마련하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는 거지? 회사 다닐 때 제러미 리프킨의 「소유의 종말」에 너무 심취해 있지만 않았더라도 영끌해서(영혼까지 끌어다 대출을 받는다는 뜻을 의미하는 신조어) 아파트나 하나 마련해 놓는 건데…….”


“작가가 김(金) 리프킨이었으면(안동 김金씨 한국 토박이였으면) 아마 주택만은 무조건 ‘소유’하라고 얘기했을 걸? 돈 생기면 우선 부동산부터 사라고 했을 거다.”


불안정한 주거지에 사는 비혼 청년 1인 가구원들은 “정부가 ‘1인 가구’를 일시적인 형태가 아닌 지속적인 삶의 형태로 바라보고 지원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 언론 매체와 인터뷰를 한 30대 여성은 “최근 역세권 청년 주택 ‘5평 논란’의 핵심은 당장 5평을 감당할 수 있느냐보다는 그 이후를 상상할 수 있느냐는 것”이라며 “청년 1인 가구를 ‘결혼 전’의 일시적인 존재로 보는 한 1인 가구는 주거정책에서 계속 소외될 것”이라고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주거복지 로드맵에는 정부가 정한 ‘정상 가족’ 울타리를 벗어난 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울타리 밖 그들을 위한 주거 사다리는 없다. 끊기 사다리 가장 밑바닥에는 여성 1인 비혼 가구가 있는 것이다.


“제가 닭장 셰어하우스에 살 때, <여자 둘이 삽니다>라는 책을 읽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둘이 살아도 서로 동선이 겹치지 않을 만큼 널찍한 집에 살고 있기 때문에 서로 스트레스받지 않고 잘 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요. 비혼 메이트를 구해서 사는 것도 정말 좋겠지만, 이런 식으로 좁은 집(5평~ 7평)을 구할 자금력밖에 안 된다면 서로만의 프라이빗한 공간이 보장되지 않아서 서로 스트레스받고 싸울 일이 분명 생길 수밖에 없거든요. 그렇게 살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지만 현실이 그렇게 모두에게 우호적이진 않죠. 특히나 경제적으로 말이에요. 저는 누가 봐도 ‘좋은’ 학벌을 가지고 있지만, 원체 집안이 어렵다 보니 직장을 전전해도 억 단위의 돈을 모으기가 힘들었어요. 지원받은 게 없으니까요. 이렇다 보니 몸 하나 누일 공간만 전전하는 나를 보고, 과연 온전한 1인 가구라고 할 수 있느냐는 회의감이 들고는 해요. 그래서 1인 가구의 정의를 제가 물어보신다면, 경제적으로 완전히 자립하여 안정적인 주거 공간을 가진 독립된 가구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제 목표이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매주 살 때마다 확률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로또를 사는 것보다 유튜브 채널에 콘텐츠를 꾸준히 올리며 대박을 바라는 것 밖에는 타계 책이 없는 것 같다며 B씨가 웃었다. 그는 이제 5년 뒤면 청년 주택에 살 수 있는 ‘청년’의 범위도 벗어나게 되는 상황이었다.


사실 비혼 여성 주거 관련 외침(주장)은 2007년부터 제기되어 왔던 내용이다. 최근 다시 회자 되고 있는 내용과 똑 같은 내용이 무려 13년 전에도 기사화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우리는 결혼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비혼을 선택해도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말하는 것이다”라는 목소리는 꾸준히 나오고 있고 그때보다 더 많은 비혼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정작 사회적 인식과 보장은 전혀 개선되고 있는 분위기는 아니다.


그러나 조금 희망적인 부분은 그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1인 가구 주거권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관심을 가지며 저마다의 비혼인들이 꾸리는 온 오프라인 모임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비혼여성을 위한 주거 정책 워크샵, 주거 및 사회적 관계 문제와 대안 강연회 등) 함께 공동체를 꾸리려는 행보도 다각화되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1인 가구로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첩첩산중이다. 물론 돈으로 해결되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개인의 요행이나 운(금수저, 은수저 등)에 기대지 않고도 ‘비혼 1인 가구’를 누구나 쉽게 엄두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은 결국 우리가 크고 작게나마 지속해서 의견과 목소리가 아닐까 한다. 우리 세대뿐이 아니라 우리 다음 그리고 또 다다음 비혼 세 대를 위해서 우리 비혼 지향 가구들은 영리하고 독하게 그리고 치열하게 자기만의 방을 쟁취하고 끊임없이 해당 안건을 수면 위로 끌어 올려 소수의 안건이 아닌 사회적 안건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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