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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rain D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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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Dec 13. 2020

역마살

그래서 뭐 어쩌라고? 정신에 대하여


대학교 2학년 때 모 회사에서 주최한 행사에 선발되어 1박 2일로 지방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첫날 일정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자 전국 각지에서 모인 대학생들은 본격적으로 술판을 벌이기 시작했는데 커다란 방에 삼십 여명이 빙 둘러앉아 지금까지 각자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었던 기억을 첫 안주로 꺼내 놓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거의 마지막 차례로 그 전해 겨울에 다녀온 인도 봉사 여행에 대한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생에 첫 여행지가 왜 인도였으며, 그것도 왜 하필 그냥 여행이 아닌 봉사활동이었는지, 거기서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이야기 끝자락에서는 한국을 베이스캠프로 삼은 채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글을 쓰고 책을 내는 Universal Traveler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밝히며 마무리 지었다. 별 생각 없이 한 말이었는데 삽시간에 술자리 분위기가 숙연해져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진탕 놀아보려 술판을 벌였던 학생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강연을 듣기 위해 청중석에 앉아 있는 관객들의 분위기로 바뀐 순간이었다. 나 정말 잘 놀고 흥 많은 그런 사람인데… 나 맥커터(=흥 깨는 사람) 아니야… 얘들아… …! 돌아와…!  

그다음 날. 오전 산행 일정 중에 갑자기 어떤 남대생이 내 곁으로 다가와 불쑥 말을 걸었다. 이러저러한 스몰 토크로 말을 트기 시작하더니 어젯밤 내가 풀었던 경험에 대한 감상으로까지 얘기가 거슬러 올라갔다.



“얘기 듣는데 미래의 배우자 분이 걱정되더라구요.”



“네?”



“이렇게 돌아다니시는 거 좋아하고 어디 멀리 떠나는 거 좋아하니까 남편분이 마음고생 할 거 같아서요.”



‘……x발 뭐야?”


(※ 위의 대화는 100%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했음을 밝혀드립니다.)



하늘에 맹세코 그 당시 나와 비슷한 또래로 추정되는 남대생에게 대뜸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나의 결혼 생활과 관련된 오지랖을 들었다.





“언니는 몸만 여자이지 타고난 사주팔자는 남자 같다~ 이거야. 활개 치고 돌아다니는 거 좋아하잖아. 어디 가서 주인공 아니면 심드러엉~ 한 데다가, 남들이 뭐라하건 제 고집이면 지옥 불길이라도 걸어갈 사람이라고. 말 한마디를 안 지고, 또박또박 대들고 따지는 거 좋아하는 데다가 남자를 제 아래로 깔보고... 이래서 어디 남편이 기를 펴고 살겠어?”



“…아니, 근데 말씀 중에 죄송한데…”



‘아니’와 ‘근데’가 없으면 말문을 못 여는 나였다.



“또.. 또…”


벌써 몇 차례 나에게 말 허리 자르기를 당한 무속인은 질린다는 표정으로 나를 건너다보았다.



“제가 왜 남의 기까지 세워주며 살아야 하죠? 지가 알아서 차리고 들어오면 되는 일 아닌가?”



“이거 봐, 이거 봐. 이러는 게 문제라는 거야.”



“아니, 근데…”



“아, 이렇게 자기 얘기만 할 거면 뭐하러 여기 왔어! 시간 다 됐으니까 그만 나가!!”



나는 순간 물음표 살인마로 둔갑하고 싶은 맹렬한 충동에 사로잡혔지만, 무속인이 지끈지끈 머리를 짚으며 나가라고 하는 바람에 친구와 쫓겨나듯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직 물을 말이 한 트럭이나 쌓여 있는데……. 친구는 나보고 100분 토론하러 자기 따라 온 거냐고 타박을 했다. 아, 이 복채 값이면 치킨이 두 마리인데…… 내 눈앞으로는 교촌 상표가 영화 엔딩 크레딧처럼 잔잔하고 아련하게 올라가고 있었다. 아니, 근데 왜 내 말 끝까지 안 들어 주냐고!


‘남 기를 세워 주라’는 말에 난색을 표하긴 했지만 인간관계에서 적당히 서로를 맞춰주는 스킬이 어느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입장이긴 하다. 트로이 전쟁에서 희랍군 진영의 맹주였던 인간의 왕 아가멤논도 아킬레우스의 눈치를 살피고, 하다 못해 현실 속 배달 어플에서도 고객의 리뷰 하나하나에 업주가 꼬박 정성스러운 덧글을 남기며 재구매 유도 및 신규 고객 유치를 위해 마케팅을 펼치지 않던가. ‘인간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타인으로부터 받는 방식으로만 손에 넣을 수 있다’라는 레비스트로의 증여와 답례 구조도 이와 같은 인간 커뮤니케이션 본성에 근거를 두고 있지 않은가? 굳이 여기서 레비스트로스를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잘 정리된 아이디어를 가져다 쓸 때는 이름 정도는 함께 적어주는 것이 예의인 데다가 근사한 이름을 내 주장 옆에 적어 놓으면 묘하게 신뢰감이 올라가고 덩달아 구색까지 갖춰 보이니 지면을 할애하여 밝힐 가치가 충분하다. 귀여운 엘리.




어쩌면 공적인 관계에서 서로 적당한 경계를 지키는 것이 더 쉬울 수도 있다. 연애나 결혼 같은 사적인 영역으로 옮겨가는 순간 감정적 득실 관계를 따지게 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인지 부조화를 맞닥뜨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평소에 이성적이고 똑똑하다고 소문난 인간일수록 더욱 그런 인지부조화를 겪게 될 확률이 높다. 공적인 영역에서 타인의 신뢰를 얻는 것과 사적인 영역에서 사랑을 받는 것에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전자는 개인의 능력과 노력으로 얻어질 수 있지만, 후자는 시시각각 변모하는 상대방의 비위와 조건에 지속해서 부합해야 관심과 사랑을 유지할 수 있다. 최소한 미운 정이라도 쌓여야 한다. 결혼한 상대가 사랑에 빠졌던 대상은 어쩌면 20대 모습의 ‘당신’이지 아이 둘을 출산한 ‘애 엄마’는 아닐 수 있으므로. 우리 모두 한낱 인간인지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속성이 자연스럽게 변하기 마련이고 그로 인한 취향과 기호에는 에누리가 없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관계를 유지하고 싶을 때 타인의 마음과 눈을 붙잡아 두기 위해 ‘안 하던 행동’을 시도하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네가 예전에 사랑에 빠지게 된 내 모습이 어떤 면이었는지 말해주면 좋겠다. 내가 그때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라는 뉘앙스의 노래 가사는 위와 같은 상황에서 느끼는 심리 묘사를 아주 적절하게 담아낸 케이스다.


사실 뭐, 칭찬을 해주거나 힘이 되는 말을 해주는 역할까지야 내 에너지가 고갈되지 않는 한 기꺼운 마음으로 해줄 수 있다고 쳐도 만약 내가 자아실현을 위해 추구하는 삶의 방향과 ‘사랑 받는 아내’가 제시하는 삶의 역할 및 방향이 극적으로 달라지는 분기점에 서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연애도 결혼도 돈벌이도 결국 내 인생이 행복하자고 시간과 노력, 에너지를 들여하는 일인데 그것이 언제부터인가 나의 행복이 아닌 남의 행복을 위한 비위 맞추는 일이 된다면 이것이야 말로 본말전도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겠냐는 말이다. 내가 공들인 시간의 탑이 다른 누군가의 쾌적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면 극구 사양일 세다.


내가 천성적으로 떠나고 싶어하는 기질이 있는 데 어째? 어느 한 곳에 얽매이고 싶어하지 않고, 새로운 환경에 스스로를 노출 시키는 것이 얼마나 재밌는데. 가장 가방의 무게가 가벼운 사람이 가장 멀리까지 여행할 수 있다는 말처럼 나는 내가 짊어져야 하는 타인의 무게를 가장 가볍게 하는 것도 나쁜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떠나고 싶을 때마다 언제나 어디로든 홀홀 떠날 수 있게 말이다.

새로운 감상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내가 다시 설렐 수 있게.


그에 대해 남들이 불편하다며 오지랖을 떨고 미주알고주알 참견하고 든다면 돌려줄 말은 다음 세 음절 밖에는 없다.


“남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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