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밀하게 들어서 있는 물건과 부신 조명의 어그러진 조화
"빨리 살 것만 사서 나가자. 죽을 거 같아."
평수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탁 트인 넓은 지대.
부시도록 환한 인공적 조명.
틈 없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물건들.
아슬아슬하게 비껴가며 카트를 모든 사람 떼.
시끄러운 음악소리.
대화 소리...
대형 마트에 갈 때마다 나는 이곳이야 말로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현대판 생지옥이라는 생각을 한다.
팔리고자 하는 욕망과 꾸역꾸역 카트 속으로 하나라도 더 욱여넣으려고 하는 소유의 욕망으로 점철된 장소.
답답하다.
도망치고 싶다.
인간은 고작 백 년도 채 살지 못하면서 뭐가 이다지도 많이 필요할까.
땅이라도 울려 집기와 선반 위에 진열된 물건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모습을 그려본다.
카트를 밀고 사이사이를 개미떼처럼 몰려다니던 사람들이 상품에 깔려 질식하는 그런 상상.
삑ㅡ.
삑ㅡ.
인간들의 머리통이 터질 때마다 울리는 것은 기계적인 바코드 음이다.
순간,
탁!
트이는 조명.
아무도 없는 대형 마트 안.
홀로 카트를 끌고 걸어가며 쏟아지는 눈초리를 받아내는 것은,
바로, 나.
상품들이 나란히 열을 맞춰 선 채 나를 향해 소리친다.
너도 나를 욕망하잖아.
너도 나를 가지고 싶지?
너도 나를 욱여넣고 싶지?
너도 나를 소비하고 싶지?
빨리 나를 잡아.
빨리 내게 대가를 지불해.
빨리.
빨리.
빨리
삑.
삑.
삑.
삐
삑
.
.
.
환자 모니터링 장비에 띄워진 맥박 그래프가 뛴다.
바코드가 조금 더 길게 읽히며 심정지가 온다.
삑!
삑!
결제가 완료되었다는 기계음을 뒤로하고 도망치듯 대형 마트를 빠져나간다.
바깥공기를 마시며 달리고 또 달린다.
맥박이 제 자리를 찾을 때까지.
숨을 들이마시고 또 내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