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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싸가 되는데 실패했다 (2)

그럴 싸해지느라 노잼 인간이 되어버린 건에 대하여

by Ell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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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끈했던 우정의 균열에 거창하게 이름 붙이자면, ‘우리가 쓰레기를 그만둔 날’쯤 될까. 그러니까, 서로가 짜쳐 보이는 걸 꺼려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뭔가 있어 보이려 하는 체면치레가 시작되면서부터.


그 시작은 고등학교라는 울타리를 졸업한 순간부터였다. 학생 때는 성적이 달라도 같은 반, 같은 교실, 바로 옆자리일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은 아니었다. 내신과 수능이라는 숫자들이 우리를 물리적으로 갈라놓았고,
거기서부터 무언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변화는 서로의 겉모습에서도 생기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다이어트를 하고 꾸미기에 열을 올리며 이성을 만나는 데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직도 학생 티를 못 벗은 다른 친구에게는 "너도 좀 꾸미고 다녀라"는 식의 충고를 했다. 그래야 너도 모쏠 딱지 떼지 않겠어?라는 식의 안타까움을 담아서.

우리가 언제부터 남자를 많이 만나고 다니는 것에 대해서, 얼마나 선호되는 가 그 척도에 따라서 묘한 우월감을 전시했더라? "남자들에게 이만큼이나 관심받고 사랑받는 나"가 언제부터 자존감의 근거가 되었지? 시간이 갈수록 친구와 나를 비교할 거리가 하나, 둘 새롭게 늘어가고 있었다.


누가 어느 대학 어느 과를 갔더라, 누가 더 예뻐졌더라, 새로 사귄 남자친구가 잘해준다더라, 앞으로 취직 준비는 어떻게 해야겠더라....


십 대에서 이 십 대로 변하며 대화 주제가 바뀌는 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이가 드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일지 몰랐다. 하지만 그런 변화 속에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우리는 같은 '쓰레기'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점점 더 ‘갖춰야 할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같은 쓰레기’였던 우리는 서로의 수준을 가늠하기 시작했다.


청춘에 걸려 비틀거리며 휘청거리는 모습은 더 이상 웃기지 않았다. 한심해 보였다. 반짝반짝 빛 나는 건 지금 이 순간이 아니라 아직 도달하지 않은 미래였다. 어설픈 현재는 미완성의, 골조만 선 건물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인생에서 점점 더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쓰모의 모임 횟수는 점점 뜸해져 갔다. 계속 '우리'라고 묶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어쩌면 가장 먼저 변하기 시작한 건 나일지도 몰랐다. 이제 다 같이 어리숙해도 괜찮은 시기는 끝나버렸다고, 이제는 무언가를 증명해 보이기 시작해야 할 때라고 조급함을 느꼈을지 모른다.


이제 와 솔직히 말하지만, 무리 내에서 우월감이라는 걸 느껴보고 싶었던 것 같다.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그냥 가만히 있어도 나한테 먼저 연락이 오는 거, 내가 굳이 웃기지 않아도 사람들이 먼저 웃어주는 분위기, 누군가의 이야기보다 내 얘기를 먼저 듣고 싶어 하는 틈 같은 것들. ‘쓰레기’이기를 포기하자 그런 사소한 것들에 연연하게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도 자꾸 뭔가를 그럴싸해 보이는 것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게 진짜 내 자존감을 채우는 건지, 그저 뭘 덮으려는 건지, 솔직히 잘 알지도 못하는 채로. 다만 그렇게 하고 있으면 잠깐은 나도 괜찮은 사람 같았으니, 그걸로 족했다. 그건 일종의 증명이기도 했다. 찌질했던 과거를 농담처럼 흘려보내게 되었다는, 이제는 조금 더 위에서 내려다보는 위치에 섰다는 일종의 착각과 같은 것.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점점 많아졌다. 모임은 뜸해졌고, 가끔 겨우 시간을 맞춰 만났을 때도 예전 같은 분위기는 쉬이 재현되지 않았다. 말이 어긋나는 건 아니었다. 다만, 공기가 전과 미묘하게 달랐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 특정한 누구의 탓만은 아니었다. 그냥, 시간이 흘렀고, 우리는 조금씩 남들 눈에 그럴듯해 보이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을 뿐이었다.


시시껄렁한 남자 이야기로 술자리가 흘러가던 어느 저녁. 서로의 손에 들린 술잔은 미지근해지고, 말들은 둥글게 돌았다가 흐려질 때 즈음. 흘긋, 무심코 뒤를 돌아본 내 시야에 옷장이 하나 보였다. 그 안쪽, 잘 닫히지 않는 문틈 사이로 교복 한 벌이 걸린 게 보였다. 그 옆에 무언가 더 있었다. 그건 얼굴이었다. 어딘지 어수룩하지만 그런 만큼 솔직했던, 꾸미지 않아도 괜찮고, 부족한 채로도 충분했던 앳된 얼굴들.







시간은 계속 흘렀다. 나는 대학생에서 취준생으로, 그리고 직장인이 되었다. 쓰모와는 멀어졌지만, 내 연락처 속 번호는 전보다 더 빽빽하게 늘어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을 터놓고 지낼 수 있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었다. 관계는 늘어났지만, 그중 대부분이 얇았다. 가볍고, 무난하고, 결례는 없지만 감정의 교환도 없는 그런 종류의 연결. 나는 점점 더, 있는 그대로의 나를 꺼내 보이는 대신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나의 모습을 전시하는 데 능숙해졌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도 적당히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느 상황에서도 적당한 말, 무해한 말들을 주고 받을 수 있었다. 실수하지 않는 선에서 웃고, 너무 깊이 들어가지 않는 선에서 공감했다.


사회 생활은 학창 시절과 어느 정도 닮은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딜 가든 쓰모 같은 관계를 만들기 쉽지 않았다.


왜일까?

답은 명확했다.

시작부터 우리는 서로에게 '그럴싸해야' 했으니까.


누가 먼저 그렇게 만들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나 역시, 어쩌면 내가 먼저 앞장 서서 그랬다는 사실이다. 부족한 건 감추고, 찌질한 건 덮고, 무난하고 괜찮아 보이는 버전만 조심스럽게 꺼내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그렇게 쌓인 관계는 큰 재미도, 감동도 없었다.


적당한 호의, 적당한 침묵, 적당한 관심.


무난하다는 말은 좋기도 하고, 동시에 슬프기도 했다.


이상한 일이다.


날것 그대로의 나를 드러낼 용기, 그거 하나 잊어버렸을 뿐인데.

왜 이렇게 세상과 어색한 사이가 되어버린 건지.


더 그럴싸한 내가 되면, 주변이 더 북적북적 해지리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적막하기만 한 건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내가 정말 실패한 건 인싸가 되는 것이 아니라 '별 거 아닌 나'를, 타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아니었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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