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난 30대 아니야
인터넷이라는 심해를 유영하다 보면 온갖 부유물과 마주치기 마련이다. 대부분은 그저 별 의미 없이 떠다니는 유기물일 뿐, 흘려보내면 그만이다. 하지만 아주 가끔, 예상치 못한 심연에서 쩍 아가리를 벌린 채 나를 향해 정면으로 돌진하는 무언가를 마주하게 되기도 한다.
어젯밤이 바로 그런 예상치 못한 이벤트가 벌어지는 날 중 하나였다. 늦은 시각. 침대에 모로 누워 영혼 없이 스크롤을 내리던 나를 그대로 삼켜버린 문장이 있었으니, '30대 초에 당연히 1억 쯤 모아 놨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뉘앙스의 질문성 게시글과 그 아래 달린 다수의 동조성 댓글들이었다.
희한한 일이었다. 그저 픽셀 쪼가리에 불과한 글자 몇 개에서 질량이 느껴졌다. 그건 관념이 아니라 실재實在였다. 왜냐고? 아니, 진짜 읽자마자 묵직한 둔기로 뒤통수를 후드려 맞은 통각이 느껴졌다니까.
그렇다.
나는 제대로 긁힌 것이다.
다음 순간, 정해진 수순이라도 되듯 그간 애써 흐린 눈으로 외면해 오던 통장 잔고가 홀로그램처럼 눈앞에 떠올라 일렁거렸다. 곧 익숙한 절망감이 나를 덮쳤다. 쏟아지는 물줄기 세례 속에 흩어진 플래시백은 짧고 강렬했다. 그리 대단할 거 없던 지난 내 인생. 평범하지도 않은 데다(negative) 실속까지 없었음이 새삼 뼈 아프게 자각되는 순간이었다.
아야. 그냥 가만히 누워 있던 사람은 갑자기 왜 때리고 그래요.
얼얼한 뒤통수를 만지작 거리며 살짝 억울해하는데, 저 멀리서 무언가 내게 떼를 지어 달려드는 것이 보였다. X 됐음을 본능적으로 감지했지만 이미 늦었다. 놈들은 절망의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아낸 'What if(만약에)'라는 피라미 떼였다. 이제 남은 일은 녀석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물어 뜯기는 일이었다.
만약, 정규직으로 입사한 대기업에서 끝까지 존버했다면? 어떤 더러운 꼴을 봤어도 정해진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계속 커리어를 쌓았다면?
만약, 조금만 더 빨리 내가 ADHD 환자라는 걸 알았더라면?
만약, 여행이나 취미 따위의 사치를 언감생심 꿈도 꾸지 않았더라면?
만약, ‘나만의 길’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 아래 프리랜서라는 도박판에 내 인생을 걸지 않았다면?
만약, 내가 나를 너무 믿지 않았더라면?
그러나 안타깝게도 과거의 나는 그 모든 ‘만약’의 정반대에 서 있었다. 나는 고삐가 아니라 뇌에 나사가 빠진 망아지였다. 흙수저라는 본분도 잊은 채 청춘의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지우겠다고 난리 난리 쌩 난리를 피워댔으니 말이다. 노후 대책은커녕 당장 내일의 대책도 없이 자기 객관화에 실패한 채 당시 유행했던 YOLO라는 사이비틱한 구절에 심취했던 대가는 참혹했다. 뭐라도 되겠지, 라던 막연했던 자신감은 한낱 싸구려 마취제에 불과했다. 나는 그렇게 대단히 뛰어난 재능 있는 인간도, 인복이 좋은 인간도, 특히 운빨이 좋은 인간도 아닌, 자기 객관화가 덜 된, 멍청하리만큼 순진한 인간일 뿐이었다. 내가 듣고 싶은 말로만 내 두 귀를 틀어막으며 어떻게든 현실 도피를 하려던 한심한 종자에 불과했다.
'... 눈물 나네, 이거.'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라 더 눈물겨웠다.
젊은 날에 가장 남는 장사는 경험에 투자하는 거라고?
웃기는 소리.
근데 왜 내 인생 경험치(EXP)는 통장에 마이너스로만 찍힌 건데?
어쩐지 튜토리얼부터 X망겜 스멜이 나더라니.
허탈감에 젖어 베개에 파묻었던 고개를 들자, 시야에 들어온 것은 현재 내가 머물고 있는 정거장의 입간판이었다. 그 위엔 누군가 성의 없이 휘갈겨 쓴 듯한 글씨체로 역 이름이 적혀 있었다.
자기혐오.
그 아래는 보험 약관의 부가 조항처럼, 조막만 한 몇 글자가 더 박혀 있었다.
죄책감.
그렇게 인생 X 됐음을 곱씹으며 텅 빈 선로를 멍하니 바라보던 그때, 옆자리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허, 너무 걱정하지 말게."
"아 씨, 깜짝이야."
놀란 가슴 쓸어내리며 돌아보자 한 사내가 벤치에 덩그러니 홀로 앉아 있는 게 보였다. 무릎엔 흉기로 써도 무방할 두께의 책 두 권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래서 더 수상해 보였다.
"뭐 그럴 수도 있지."
"..... 예에?"
"너무 자책하지 말란 소리네. 쓸데없이 리소스 낭비하지 말고."
.... 낭비?
내가 뭔 컴퓨터도 아니고.
“… 누구세요?”
"날세."
"나 누구요."
"나."
... 미친놈인가?
수상한 눈초리로 사내의 무릎 위의 책 제목을 흘긋 훑어보니, 『행동(Behave)』과 『Determined』이라 쓰여있는 게 보였다. 잠깐만. 저 책 제목들... 설마. 스탠퍼드 대학교의 신경생물학자, 로버트 새폴스키 교수?
"... 진짜예요?"
"진짜."
"뭐 일단 그렇다고 치고... 근데 여긴 왜?"
깊은 불신을 담은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며 묻자, 기다렸다는 듯이 답이 들려왔다.
"지금 자네 꼴이 말이 아닌 게 꼭 자네 탓은 아니라는 걸 알려주려고 왔네. 애당초 인간에겐 자유 의지가 없으니까."
이어진 것은 새폴스키 교수의 설명이었다.
최대한 내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주는 것 같았다.
긴 설명을 대충 짧게 요약하자면, 내 인생이라는 재판의 증거자료는 사실 내가 선택한 적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내가 선택한 적 없는 유전자,
엄마 뱃속에서의 환경,
유년기의 경험,
나를 둘러싼 사회 구조,
그리고 그날그날의 내 뇌 컨디션까지.
나를 둘러싼 조건들과 운, 생물학적 사회적 환경,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지금의 ‘나’라는 결과를 ‘결정’했을 뿐, 그 과정에 ‘내 의지’는 없었다는 게 골자였다.
"우리는 그저 생물학적, 환격적 우연의 누적일 뿐일세. (We are nothing more or less than the cumulative biological and environmental luck.)."
"인간의 인생이 운빨 게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요?"
내가 어이가 없다는 듯 되묻자 그는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다네."
"서른 살 넘도록 1억 도 못 모은 것도 그냥 운빨이 안 붙어줘서 그런 거라고요?"
내 질문에 새폴스키 교수는 질문으로 대신했다.
"그럼 자네는 왜 서른이 넘도록 키가 아직도 160cm 대 인가? 180cm도 못 넘었군?"
뭔 소린가 싶어 나는 잠시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일단 대한민국에서 여자 키가 180cm가 왜 넘어야 하는 것이며-. 아니, 애당초 그런저런 걸 다 떠나서 그걸 내가 마음먹는다고 되는 일이냐고.
"그게 제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겁니까?"
"아니지."
"?"
"자네가 지금까지 1억을 못 모은 것도 똑같네."
이게 뭔 개쌉소린가 싶어 멀거머니 그를 바라보면.
"개소리네."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그가 먼저 내뱉었다.
"가난하게 태어난 것은 네 탓이 아니지만, 가난하게 죽는 건 네 탓이다(=It's not your fault if you are born poor, but it's your fault if you die poor)라는 말 자체가 개소리란 말일세."
그는 갑자기 내 멱살뿐만이 아니라 K-성공 신화의 멱살까지 쥐고 짤짤 흔들어 대기 시작했다.
"그건 또 왜요."
"노력이라는 행위조차도 유전과 환경이 받쳐줘야 제대로 발현되는 걸세."
잔인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노력할 수 있는 능력' 조차 타고나는 거라니.
아침 일찍 일어나 밤늦게까지 일에 몰두할 수 있는 기질,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는 회복탄력성,
이 모든 것은 뇌의 신경화학적 작용에 불과하다고?
"그럼 인간의 자유 의지가 1도 없다고요?"
"그렇다네."
어떤 사람은 도파민 시스템이 보상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태어나 성취 지향적인 반면, 다른 사람은 불안에 더 민감한 편도체를 가지고 태어났을 수 있다고 그가 무심히 덧붙였다.
"태어날 때 가지고 태어난 '생물학적 카드 패'가 구리면 어쩌라고요."
"뭐, 어쩔 수 없지."
"....사이비 아녜요?"
"스탠퍼드 대학교의 신경생물학자 일세만."
왜 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는 내 편에 서서 나를 위로해 주려 노력(?)하고 있었다. 내가 30대가 되도록 1억을 모으지 못한 것은, 과거의 내가 저질렀던 수많은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그것은 애당초 내가 선택할 수 없었던 수많은 조건이 빚어낸 필연에 가깝다면서.
"자네, 저축할 능력은 어디서 온다고 생각하나?"
"개인의 의지력, 성실함, 현명함... 같은 거요."
"멍청하군."
"네?"
"치명적인 착각일세. 1억은 의지를 낸다고 아무나 모을 수 있는 줄 아나?"
"....."
그는 '멍청한' 나를 위해 인간이 1억을 모으기 위해 필요로 하는 능력들을 하나하나 인수분해하기 시작했다.
"첫째."
그는 굵직한 손가락을 하나 접었다.
“충동 억제 및 장기 계획 능력. 이건 뇌의 전두엽 피질 기능에 좌우되지. 그리고 이 전두엽의 발달 상태는 유전, 태아기 환경, 유년기 스트레스 수준에 따라 이미 사람마다 세팅 값이 다르다네.”
"대충 뇌 문제라는 거네요."
"둘째."
그의 손가락 하나가 더 접혔다.
“만성 스트레스와 경제적 불안. 이건 인간의 인지를 마비시킨다네. 만성적인 스트레스 환경에 노출된 사람들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영향으로 전두엽 피질의 기능이 저하되니까. 당장 다음 달 월세 걱정에 뇌가 타들어가는데, 어떻게 10년 뒤를 위한 장기 적금을 설계하겠나? 생존 모드에 돌입한 뇌는 시야가 극도로 좁아져 단기적인 해결책에만 매달리게 되지. 이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뇌의 작동 방식일세.”
“그러니까, 가난이 멍청함을 만든다?”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충동을 억제하는 뇌의 ‘하드웨어’ 자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거라고 볼 수 있다네."
환경과 상황에 따라 생물학적 족쇄가 발동된다라.
곰곰이 말을 곱씹는 사이.
그의 세 번째 손가락이 접혔다.
"게다가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안정적인 직업을 갖는 것은 지능, 교육 수준, 사회적 네트워크, 그리고 결정적으로 ‘운’에 달려 있다네."
"또 운 타령하시네요."
교수는 내 말을 무시한 채 말을 이어갔다.
"자네가 만약 부모에게서 기본적인 금융 교육을 받고, 안정적인 주거 환경에서 자랐으며, 실패해도 돌아갈 집이 있다는 안전망을 가진 채 사회생활을 시작했다면 어땠을까? 같은 월급을 받아도, 누군가는 월세와 학자금 대출로 허덕이고 누군가는 그 돈을 고스란히 시드머니로 굴리지. 이건 개인의 현명함이 아니라, 그냥 출발선이 다른 게임일 뿐일세.”
결론적으로 “30대엔 1억쯤은 모아 놨어야 한다”는 말은 무의미한 도덕적 잣대에 불과하며, 이 말은 한 사람의 인생을 구성하는 수십억 개의 생물학적, 환경적, 사회적, 우연적 변수들을 모두 무시하고, 존재하지도 않는 ‘자유 의지’라는 허상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행위라며 그는 눈을 찡긋거렸다. 그게 웃는 건지 화를 내는 건진 알 수 없었다.
그때, 저 멀리서 희미한 불빛과 함께 열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행선지를 알 수 없는 열차였다.
탁탁-. 그는 책 두 권을 옆구리에 낀 채, 무심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나는 멍하니 그를 올려다봤다.
"자네의 통장 잔고는 자네의 의지박약이나 도덕적 결함을 증명하는 성적표가 아닐세. 그건 그냥 결과 보고서일 뿐일세. 자네가 선택하지 않은 수많은 변수들이 만들어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열차가 쉭,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그는 내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묵묵히 열차에 올라탔다.
나는 닫히는 문을 향해 악을 쓰듯 외쳤다.
“잠깐만요! 그럼 운빨 좆망 인생 게임이면 어쩌라고요! 답은 주고 가야죠!”
문이 거의 닫혔을 때, 그 틈으로 나직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받아들이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희미한 웃음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했다.
“받아들이라고…? 그게 뭔-."
열차는 소리 없이 미끄러지듯 플랫폼을 떠났다.
"저걸 지금 답이라고...."
겁나 무책임하네.
뒤에 말을 속으로 삼키며 나는 한참 동안 그가 사라진 텅 빈 선로를 바라보았다.
이제 더 이상 오가는 인파는 없었다.
역사는 쥐새끼 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조용했지만, 어쩐지 내내 시끄럽게 굴러가던 머리가 좀 차갑게 식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떠오른 것은-.
'레몬.'
그래, 레몬이었다.
정확히는 닳고 닳은 그 옛 격언과도 같은 말.
'세상이 네게 레몬을 주었으면, 레몬 에이드를 만들어라.'
하지만 이 격언은 가장 중요한 사실을 빼먹고 있다.
레모네이드를 만들려면, 레몬 말고도 설탕과 물과 짜낼 힘이 필요하다는 것.
그 설탕은 누가 주는데?
레모네이드를 팔 수 있는 가판대는 또 누가 지원해 주고?
"....."
나는 어느새인가 내 손에 들려 있는 레몬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새폴스키가 말한 ‘받아들임’이란, 없는 설탕을 탓하며 좌절하거나, 억지로 달콤한 척하는 기만이 아닐 터.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해야만 하는 것은 하나뿐이다.
그냥, 이 빌어먹을 레몬을 껍질째 씹어 삼키는 것.
시고, 쓰고, 쌉쌀학까지 한 그 맛을, 온전히 느끼는 것.
와득.
나는 입에 배어 문 레몬을 씹으며 걸음을 옮겼다.
"으... 더럽게 시네."
나는 찌르르한 통각에 가까운 시큼함을 느끼며 눈가에 맺힌 눈물을 슥 훔쳤다.
내 발걸음은 어느새 '자기혐오'라 휘갈겨 쓴 입간판을 지나치고 있었고, 살을 스치는 바람결은 전보다 조금은 시원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