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던 과거를 그린다는 것, 그를 버린다는 것

어른이 된 나, 예전보다 빛나지 않는다는 위기감이 든다면

by Ellie

Trigger : 왜, 빛나던 과거를 버려야 하지?


"엘리님은... 버려야 해요. 처음 면접볼 때도 제가 말씀 드렸었는데 여전히 같아요. 버려야 해요."

(그래 내가 좀 못버리긴 하지) "무엇을 버려야 할까요?"



... 지난 날에 이뤘던 것들을 버려야 해요







2020년이 시작한 지 1주일이 채 지나지 않았던 그 날의 대화가 여전히 선명하다.

나의 정곡을 유달리 잘 찌르는 그 선배와의 대화 뒤에는 원래, 항상 여운이 남곤 했는데,

지난 날의 성취를 버리라던 그 날은 유독 짙은 여운이 남았다.


무엇을: 지난 날의 성취를
왜: null


왜 지난 날에 이뤘던 것을 굳이 버려야 하는지,
그리고 왜 난 반발심을 느끼는 지
곱씹어 봤다.





지난 날이 주는 양가적 감정


새해가 되어 새로운 목표를 세우기 앞서,

나는 지난 날을 먼저 돌아보는 편이다.

어쩌면, 경험상 대개 지켜지지 못해온 아득한 목표보다

과거에 대한 기록을 정리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더 의미있다고 느낀 까닭이다.


2019년 1월 1일부터 매일 일기를 거르지 않고,

사진을 찍는 것도, 찍히는 것도 좋아한다는 것이

내가 지난 날을 얼마나 소중히 하는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랄까.


그러나, 그렇게 소중한 지난 날은 지금의 내게

아픔이기도 하다.

구글 포토에 만발한 나의 대학시절 사진이나, 조각 글, 결과물을 살펴보자면

어쩐지 찬란하다. 빛난다.

그에 비해

지금의 나는 바랜 느낌이 든다.


지금의 내가 꼭 불만족 스러운 것도 아닌데,

난 지금도 충분히 나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고

적당히 좋은 회사에서 성숙한 삶을 찾고 있는데

대학시절의 나를 정면으로 마주한 이후에는

어쩐지 지금의 내가 초라해지는 느낌이 든다.

그 시절의 나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든다.


빛났던 내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겠지만

지난 날이 빛났던 만큼
지금 나는 그만큼 어두워졌다.




과거를 사는 정혁, 미래를 사는 세리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과거 / 미래
사람의 경험에 따라 누구나 어느 한 쪽으로 추가 살짝 기울어진 삶을 줄타기하며 살지 않을까.


미래를 그릴 희망이 희미해지면 과거에 살고

현재의 삶이 불안하다면 미래로 두지 않을까.


드라마에서 리정혁(현빈)은 삶의 주춧돌이었던 형의 죽음으로
본인의 꿈이던 피아노까지 함께 떠나보내면서 더 이상 미래에 대한 기대를 걸지 않는다.

윤세리(손예진)는 사랑받아야 할 가족들에게 버림받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으로 인해
현재에 정착하기보다 미래의 일에 인생을 건다.


과거 중심과 미래 중심은 거리감이 있다.
각자가 가장 지키고픈 삶의 이유가 정 반대의 대척점에 있기 때문에
때때로 내가 가장 중시하는 삶의 이유가 상대방에게는 쓸모없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미래를 사는 사람에게 현재의 삶을 즐기라고 하는 것이

과거를 사는 사람에게 이제 벗어나라고 등을 떠미는 것이

잘 섞이지 않는 이유다.


드라마에서는 이 간극을 관계성으로 좁힌다.

과거를 살아온 정혁과, 미래를 살아온 세리가 서로의 존재로 인해

그 간 경험하지 못했던 - 미래에 대한 기대와 추억할 만한 이유가 생긴 것처럼.


어쩌면, 정말 이해가 안가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와 나의 삶의 추가 어디에 있는 지 성찰해보면 답을 알 수도 있지 않을까.





차라리 옛날 폴더는 없애는 게 나아요


회사에서 공유 폴더를 정리할 때의 일이다.

프로덕트의 유구한 역사(?) 만큼
어디에 박혀있는지도 모를 유물들을 건져내는 재미가 적당히 쏠쏠했다.


그러나 공유 폴더의 용량을 꾸역꾸역 버텨내고 있는 파일 더미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그 때에도 내게 "버림"의 조언을 내어준 선배 왈,


옛날 파일은 그냥 없애는 게 나을지도 몰라요.
그게 있으면 의식적으로 따라하게 되잖아요.
그럼 새로운 것을 만들 수가 없죠.



훗날 내 컴퓨터에 있던
4년간의 대학생활, 2년간의 취준생활이 모두 날라간 적이 있었다.

몇 년에 한번 어쩌다 볼까 말까 한 파일인데도 불구하고

괜히 나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만 같은 아픔에

시름시름 앓고 있었는데


새로운 것을 맞이하기 위한 재물이라는 논리는
그 아픔을 기회(?)로 승화 시키는 데 아주 좋은 논리였다고 한다.



그는 미래를 사는 사람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받고 싶을 만큼 성취지향적이고

행동력도 빠르다.



아마 내게 빛났던 과거를 버려야 한다는 의미도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여유를 만들기 위함일 것이다.





미래를 산다는 착각


사실, 미래에 산다고 착각했던 것 같다.

내일을 오늘보다 나아지게 만드는 것이 인생의 과업이라고 믿었고

그 때문에 현재의 욕망같은 것쯤은 절제하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동기부여를 찾고자 안간힘을 쏟는 내가

미래를 그릴 수 있을 지 확신이 희미해졌고

희미해진 확신을 세우고자

조금 날이 섰지만 많이 특별했던

그 시절의 빛나던 나를 끌어왔는 지도 모르겠다.


지난 날의 나의 성취를 버려야 한다는 이유는
지금 내가 세우고 있는 성취를 스스로 하찮게 여기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지난 날의 나의 성취를 버려야 한다는 조언에 반발심이 생긴 이유는
그가 없다면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까봐 불안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The Best is Yet to Come
리즈는 아직 오지 않았다


아직 서른도 안된 내가

벌써 바랜 기분을 느낀다는 것은

그만큼 치열하게 삶을 버티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이해하지 못할 것들을 마주하며 갈등할 때는

부디 내가 그들을 이해할 수 있기를, 사회에 타협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기도 했다.


3년차가 된 지금,

나는 한 때 간절히 바라던 대로

예전보다 둥글거리는, 내 뜻대로 되지 않아도 이해하고 넘길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있다.


이렇게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지금의 내가, 지금의 삶이

무언가 시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

"지금도 여전히 빛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여전히"라는 워딩에서 느껴지는 합리화의 느낌을 지울 수 없달까.


"그 때는 그 때대로, 지금은 지금대로 빛나게 만들자."
과거로 기울었던 추를 현재로 돌린다는 다짐을 해본다.


브런치 채널을 판 것도

유투브 채널을 판 것도

280만원짜리 아이맥을 사고

미국주식을 2년째 굴리는 것도

150짜리 카메라와 20만원짜리 마이크를 살 것도

다 새로운 역사의 일환이 아니겠는가

><



두려워 말자.
빛나던 과거를 비운다고 해서
빛나던 추억이 없어지지 않고
지금의 내가 초라해지지 않는다.


추억을 파는 프로덕트 팀에 종사하면서

빛나던 성취를 비워내는 일이 약간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