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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Jun 23. 2021

4년차 판교의 잘 안나가는 비개발자의 솔직한 고백

Prologue: 난 아무것도 모른다

나는 판교에 위치한 어떤 게임 회사에서 일하는 4년차 풀스택 비개발자다.


게임? 안 좋아한다. 자소서부터 면접까지 이런 내 모습을 숨긴 적이 없다. 운이 좋았다.

과금? 2년은 어거지로 하다가 지금은 안한다.

직무? 컨텐츠 애널리스트라고 명함에는 써 있다. 연막이다. 오늘은 영상 편집하고 쿼리짜다가 밤 시에 퇴근했다.


한 3년 전 나라면 잘 모르면서 온갖 수식어를 붙이면서 '나는 잘 나가는 트렌디한 마케터이자 데이터 리터러시도 있는 밸런스 캐릭이라굿 후훗' 하면서 회사원으로서의 나의 정체성과 브랜딩을 포장하려고 애썼을 것이다.

그런데 이 바닥에서 3년 쯤 짬밥만 차다보니 선명하게 알게 된 유일한 사실은,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라는 거다.


나는 게임업계도, IT업계도, 우리 회사도, 혹은 내가 담당하는 게임도 섣불리 대변할 수 있는 대표성을 갖고 있지 않다. 

우리 회사는 왜 그런 게임을 내는지, 앞으로 뭐가 출시 될 지, 우리 게임은 어떻게 그런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지, 그래서 주식을 사야하는지. 대충 면접보듯이 입으로 털자면 털 수 있다. 그런데 속빈 입으로 내뱉은 말에 양심이 찔린다. 

슬슬 이직을 생각할 시기가 오기도 했고 가끔 링크드인으로 관심이 갈만한 떡밥이 아른거리기도 하는데... 슈퍼맨을 기다리는 그 공고에서 나는 굳이 포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만큼 갈리면서 가스라이팅을 당한건지 열정이 사그라든건지 뭔지.


신입 지원 자소서에 아마 5번 항목쯤 이었지 아마.

N년 뒤 이 회사에서 당신은 어떤 모습일까요?


'아니 오늘 저녁에도 뭘 먹을지 모르겠구만 어찌 몇년 뒤를 그리란 말인지' 투덜대며 그렸던 때가 어느새 지금이 됐다. 어디던 붙길 바랬던 간절한 취준생은 열정 터지던 신입 시절을 지나 어느덧 배가 부른 직장인E가 됐다.


직장에 열심이면 바보가 된 것 같은 세상이다.

나 또한 그리 생각한다.

유튜브 편집을 하고 피아노와 노래를 하고 앱기획을 하고 테슬라를 산다.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하루 24시간 중 판교에 족히 12시간은 넘게 존재할, 나라는 평범한 비개발자는 많은 시간을 공허하게 보내고 있다. 혼란스럽다.


커리어인으로서의 나와, 성과모를 N잡러로서의 나 사이의 혼란.

그 혼란을 좀 정리하기 위해,

사실은, 나같은 사람들과 답을 좀 만들고 싶어서

잘 안나가는 판교의 비개발자의 흔한 삶을 조명해보고 싶었다.


아니, 뭐.

판교에 잘나가는 개발자만 있나?

같이 입사한 동기랑 나랑 어? 연봉 차이가 어?

(주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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