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다 해야한다는 강박과 똥고집을 버려야 눈이 떠진다
처음 맡게 된 분석 업무인지라 잘하고자 하는 마음만 앞서 있었다.
결론적으로, 난 기한 내에 그 작업을 끝내지 못했다.
전날 새벽 팀장님한테 전화에서 지질하게 울면서
"못하겠다"고 실토했다.
빗나간 열정과 그 정도는 혼자 할 수 있다는 쓸데없는 자존심과 오만, 똥고집이 빚어낸 결과였다.
중간 보고 하나 없이 혼자 일을 끙끙 싸매다가 결국 프로젝트 하나를 통째로 날리게 된 것이다.
내가 만약 추출업무를 내가 하지 않고 추출팀에 요청했다면,
설령 데이터를 받아보는 시간이 늦어지더라도, 정당한 사유로 일정을 더 벌어볼 수 있었을 것이고,
코드 에러문을 보며 서투르게 이유를 찾아보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좀 더 본질적으로 "매출 인상의 방안"을 더 고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부끄러운 흑역사에 대한 나름의 포스트모텀을 거치고 나서
나는 일을 혼자 싸매고 있지 않으려 노력한다.
내가 생각하는 일의 프로세스가 효율적이라고 단정짓지 않고 나보다 노련한 사람한테 한번 물어본다.
완전하지 않아도 러프하고 부끄러운 중간본을 팀에 공유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도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으면 위임한다.
남의 리소스를 활용할 줄 아는 융통성은 중요하다.
내가 쓸 수 있는 유한한 자원을 더 중요한 일에 투자할 수도 있고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다.
나는 이미 우선순위를 상정하고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 얼마나 전략적인지 알고 있었다.
분업이나 아웃소싱을 하는 것이 얼마나 효율적인지 자본주의를 통해 체득했다.
--> 말은 쉽다.
무언가 스스로 해 내야만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스스로 해 내지 못하면, 남의 손을 빌리면
무능력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혹은 더 큰 대가를 치루고 갚아야 하는 빚이나 책임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신과 타인에 대한 본능적인 불신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혼자 공부를 했고
모든 과목의 성적을 챙겼으며,
조별과제를 해도 다 조사부터 장표 제작 발표까지 다 했고
스스로 학비나 생활비를 해결했고,
영상 편집을 타인의 손에 맡겨선 안되며
빚은 지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그리고 한 때는 이런 독립성에 대한 묘한 자부심도 있었다.
스스로 모든걸 다 하려하는 이 아집이
활용할 수 있는 수많은 자원과 기회를 일정부분 포기하는 거라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채.
이걸 깨닫고선
내 시간과 리소스를 더 소중하게 쓰기 위해서
타인의 리소스를 활용하는 방법을 생각한다.
회사에서 그리 하듯,
아끼기 위해 내가 직접 오래걸리는 일을 붙잡고 있는 건 아닌지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건 아닌지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됐다.
빌려쓰는 것도 능력이고 용기라는 것,
내가 다 해야한다는 강박과 똥고집을 버려야 눈이 떠진다는 것.
서른 즈음에 내가 깨달은 가장 중요한 사실이었다.
epilogue: 자동차 할부
가장 와닿았던 건
역시 돈이었다.₩₩₩
빚도 자산이다.
레버리지를 활용해야한다.
빚투로 주식과 코인에 걸어보는게 어느정도 MZ세대의 커먼센스가 된 요즘
인생 처음으로 빚을 졌다.
자동차를 할부로 땡기게 된 것이다.
사실 자동차 구매시 파이낸셜 서비스를 이용해야 할인을 해준다고 해서 얼떨결에 지게된 빚이긴 했지만
현금이 있어도 현금 몇천을 이체하기 싫었다.
할부로 내는 이자보다 내가 그 돈을 운용하면서 얻는 수익금이 더 컸기 때문이다.
(파이낸셜 서비스 의무 유지기간 종료 후, 일반 오토론으로 전환하려 했더니 신용 실적이 없어서 결국엔 어쩔 수 없이 현급완납하고 빚쟁이에서 자유로워 지기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