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llie Apr 30. 2022

아이디어에서 확신을 보는 방법

프로젝트 기획 전, 우리끼리 실험한 작은 글쓰기 게임

아이디어가 거기서 그치는 이유

처음에는 "와 이거 대박이다" 반짝이다가 금새 시들어지는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있다.

대부분의 아이디어는 현실로 탄생하지 못한다.  

알고보니 비슷한 프로젝트가 이미 있어서 김빠지는 게 가장 흔한 이유이고,

누가 먼저 발 들이지 정말 새로운 아이디어라면, 이미 세상에 없을만한 이유가 있다.


"그거? 비슷한거 많지 않나?"

"어우 그거 이미 레드오션인데, 되겠어?"

"그걸 누가 돈주고 사"

"그걸 어떻게 해?"


세상에 태어나지 못한 아이디어의 99%는 냉엄한 판단과 엄두없음 하에 쉽게 소멸한다.
그러다 훗날 누군가가 현실화한 아이디어를 보고 쉽게 판단해버린다.

"아 저거 내가 N년 전에 생각했던건데!"

나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며 역시 난 머리가 좋다고 정신승리하면서 타인의 성공을 쉽게 격하한다.


아이디어가 얼마나 쉽게 자멸하는 지 깨닫고 난 뒤에는

그가 얼마나 세상에 없던 것인지, 놀라운 것인지를 성공의 판단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아이디어가 될놈인지 아닌지는 해봐야만 안다.

근데 그걸 누가 몰라?

어떻게 다 해보고 살아?


그러니, 아이디어의 잠재력을 검증하기 위한 모델링이 필요하다.

사람을 뽑을 때 과제를 주고 포트폴리오를 받는 것마냥

아이디어의 잠재력을 알아보기 위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우리가 시작한 사이드 프로젝트는 "이게 될 것 같다"라는 확신에서 시작하지 않았다.

"이걸 하고 싶다" 정도에 머물렀던 주관적인 생각이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뭐하는데?" 라고 물을 때 확신에 가득찬 어조로 말하지도 못했다.


"하루 한 번, 질문을 받고 글을 쓴다. 이를 앱화 했으면 좋겠다"라는 단순한 시작에서 시작했던 아이디어

찾다보니 비슷한 서비스들이 조금 있다는 것을 알아챘고, 에이 관둘까 하기도 했다.

딱 들었을 때 브릴리언트한 아이디어는 아니니까.


그런데 이 생각을 실현시키고자 팀을 꾸릴 때

의외로 내가 제안한 크루들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듣자마자 김빠지는 소리를 할 수도 있었을텐데

여찌 저찌 올해 안에 출시를 해보자는 목표를 세웠고

먹힐만한 아이디언지, 어떻게 먹히게 만들지에 대해 고민해보고자

우리만의 작은 글쓰기 모임을 만들었다.



별 기대 없이 시작했던 글쓰기 게임, 프리데이지 시즌1

하루에 한번씩 글을 쓴다는 개념으로 시작한 우리 서비스의 코드네임은 dayz. (a.k.a 데이지)

데이지를 미리 체험하는 작은 글쓰기 모임,
pre-dayz 슬랙 채널이 오픈되었다.



하루에 한 개씩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해 글을 쓰는 퀘스트를 부여했다.
일주일동안 "나에게 일"이라는 주제로 매일 글을 쓰도록 가이드했고
일주일동안 본인이 글을 썼다는 사실을 인증한다는 규칙 말고는 별다른 규칙없이 자율에 맡겼다.


남들에게 보여지기 위해 유려한 글을 쓰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글을 매개체로 내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제 1목적이었기 때문에 글의 공개 여부또한 자율에 맡겼다.

모티베이션에 대한 차원을 위해 먼저 돈을 걷고 시작할까 했지만,

쫓기는 느낌으로 만들기는 싫어서 패널티는 부여하지 않았다.



게임마스터, 장미

우리의 글쓰기가 게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게임회사에 다녔기 때문에 그것이 익숙하기도 했고.)


프리데이지를 진행하는 동안 나는

매일 사람들에게 일에 대해 생각해볼 질문을 남기고

하루를 충만하게 채워줄 수 있도록 가이드해주는 게임마스터 장미로 컨셉질을 했다.


그냥 질문만 띡하고 던지는 것은 네이버 블로그씨와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다운 냄새가 퀘스트에 묻어나도록 질문을 던졌다.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배경을 설명하기도 했고,

질문이 덜 추상적일 수 있도록 생각의 방향성을 어느정도 제시해줬다.

함께 글을 쓰는 참가자로서, 퀘스트를 수행하며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도 함께 적었다.

평소에 책을 읽으며 저장해둔 인용구를 "장미의 한마디" 섹션을 두어 마지막에 적어내는 것으로

하루의 퀘스트를 마무리했다.


7일 중 5일은 일에 대해 연관된 질문을 남겼고, 마지막 2일인 주말은

지난 글을 모아서 보고 퇴고하는 시간을 주며 다시 한 번 정리하는 시간을 주었고,

모바일 작성에 대한 경험을 확인하기 위해 하루는 모바일로 글을 남기도록 제한을 두었다.


회사일이 바쁜 와중에 하루에 한 편 씩 글 한바닥을 써야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매일 질문을 내고 리드하는 것도 수월하지 않았다.

늦게까지 회식을 한 날도 "내일은 어떤 질문을 하지" 하고 생각을 하며 잠에 들었고,

출근 길 버스에서 퀘스트를 날렸다.


질문만 던지고 끝내지 않았다.

중간 중간 팀원들의 참여율을 랭킹화 해서 "그니까 싸게싸게 씁시다" 재촉하기도 했고

공개된 글에 대해서는 댓글을 달아 반응을 표현했다.


장미의 컨셉질은 결론적으로 아주 체질에 맞았다.

회사에서 눌려있는 나의 내적 관종력을 제한없이 표출했다고나 할까.

내가 낸 질문에 대해 생각보다 훨씬 성실하게 답변해주는 크루들이 어찌나 감사했던지.



생각보다 먹힐 것 같아

꾸준히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것은 나만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보통의 경우, 우리는 글을 쓰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영화 한편 풀로 보기도 시간이 아까워서 대신 요약 영상 한편 보고 마는게 요즘 세상이니까.


내 뇌피셜과 다르게 의외로 4명의 크루들은

내가 던지는 미션에 놀라울 정도로 진지하게 임했다.

한 단락만 글을 써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했는데

매일같이 너다섯 단락은 글을 써주는 크루들을 보며 
생각을 풀어내는 일에 누군가는 어떤 갈증을 느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시간을 내어 나에 대해 생각하는 글을 쓰는 게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
모티베이션은 벌금을 내는 패널티보다 자율적인 어드밴티지에서 가장 강력하게 느낀다는 것
같은 질문을 생각하는 타인의 글이 몰입도가 높다는 것
캐릭터성을 드러낸 화자가 훨씬 매력적이라는 것


프리데이즈 시즌1에 대한 내용을 주변 지인 몇명한테 보여줬더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시즌2에 본인이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시즌1을 진행하며 발견된 Pain Point를 개선하는 방식으로

우리끼리 다시 시즌2를 진행하고,
추후에 지인들을 대상으로 참여자를 확대해서 시즌3를 CBT로 운영하기로 했다.


확신이 넘치는 아이디어의 시작은 아니었지만,

작게 시작해본 모델링 테스트에서 잠재력을 확인한 후,

우리의 경험을 어떻게 하면 서비스적 관점에서 풀어내고 확장할 수 있을까 더 적극적으로 고민하게 되었다.

이제야 막연하고 추상적이었던 아이디어에 불과했던 작은 씨앗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아이디어에 대한 확신을 만드는 것은 현실적인 수준으로 작게 시작하는 것이다.

작게라도 시작해보면 이게 해볼만한 놈인지 아닌지는 감이 올 것이다.

돈이 될지 안될지를 가를 수는 없지만, 최소한 내가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알게될 것이다.


만약 엄두가 안 날 수준의 아이디어라면 시작할 수 없을 것이고

(내가 일론머스크 마냥 위성 날릴 수는 없을테니)

시작하지 않는다면 그 일에 대한 확신을 갖기 어려울 것이다.

아이디어가 넘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함께할 동료를 찾는 것. 그리고 일단 해볼 것.

스케일 업은 그 다음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것 말곤 없을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감성적인 개발자와 기록앱 개발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