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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Mar 25. 2022

감성적인 개발자와 기록앱 개발하기

초기 기획은 엎어내야 비로소 시작된다


새해가 되어 서점에서 다이어리 한 권을 샀다.

금색 양장 제본이 예뻐서 끌려서 구매했다.

이 책의 컨셉은 5년 다이어리.

하루에 한 질문씩 일년에 365개의 대답을 쌓으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같은 질문에 대한 5년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구성이었다.

흥미로운 컨셉을 담은 예쁜 책임은 분명했다.

다만 조금 진부해질 뿐이다.

대답은 점점 짧아졌고, 주기는 점점 길어졌다.

1주일치를 밀리다 주말에 몰아쓰면 밀린 방학숙제를 하는 마냥 찝찝한 부채감이 들었고

밀려쓰는 허용치가 지나면 도대체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하고 회피하게 되었다.

그간 써온게 아까워서 억지로 채울뿐이었다.






Louisfeldt

2022년의 4분의 1이 지나가고 나서야 팀 하나를 겨우 꾸려냈다.

감성적인 프로덕트를 만들어야하니 머리는 차갑지만 본성만은 감성적인 개발진을 꾸렸다.


사회생활하면서 부쩍 아싸기질이 심해진 ENFP 기획자인 나와

산으로 갈 수 있는 프로젝트의 중심을 잡아 줄 브레인, ENFJ 개발자 R

그리고 프랑스어와 피아노를 취미로 하는 감성파 INFP 개발자 K

세명이 만났는데 어느 한명도 ST가 없다는 사실에 MBTI 과몰입러인 나는 기분이가 좋았다.


두 개발자는 처음 만나는 사이었고

철없는 나는 둘 사이에서 어색함을 무마하고자 연신 하이톤으로 웃어대며 빈 사운드를 채우기 바빴다.


"저희... 팀 이름을 뭘로 하죠? 슬랙 채널을 만들어야 해서..."

선데이토즈가 일요일에 토즈에서 만났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라는 것은 그곳에서 처음 알았다.

선데이토즈만큼이나 족보없는 이름을 짓고 싶었다.


우리는 선릉의 로네펠트에 있었다.

벽에 DP된 각종 차 이름을 읊으며 어떤 이름이 가장 그럴듯 한지 어느때보다 열심히 고민 했다.

루이보스티가 보였고

루이보스의 "루이"는 "루이14세"의 "Louis"가 됐다.

로네펠트의 "펠트"는 부직포 같았지만 그냥 "Louisfeldt"가 됐다.

이유는 없었다. 프랑스랑 독일의 족보없는 만남이 우리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초기 기획은 비로소 엎어내야 시작된다.


별로 복잡할 것도 신박할 것도 없이

하루에 한 질문씩 답하는 저 책의 디지털 버전을 구현하는 것이 우리 프로젝트의 첫 시작이었다.


매일 1개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기록한다.

작성한 내용은 공개하여 퍼블리싱 할 수 있다.

대충 글만 써도 카드뉴스 같은 이미지로 결과물이 나온다.

기본적인 UX레이아웃은 인스타그램을 차용한다.(스퀘어형 리스트, 태그, 좋아요, 팔로우 등)


아이디어는 늘 반짝인다는 착각으로 시작하다 블랙홀같은 회의감으로 소멸한다.

아니나 다를까 유사한 서비스가 몇개 있었고, 

그들을 살펴보다보니 타인의 대답은 소셜 미디어로 지속될만큼 매력적으로 만들기 어려웠다.

같은 질문이라고 해도 대답의 깊이는 천차만별이었다.

오늘의 고민에 대해 18살 고등학생과, 30살 사회초년생이

같은 피드에 섞여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이탈의 그림자가 세게 드리워졌다.

그렇다고 퀄리티 컨트롤을 위해 진입장벽을 높이면서 사용자를 제한하자니

그럴만큼 고퀄리티의 서비스를 제공할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알고리즘을 충분히 정교화 할 수 있을 만큼 다수의 사용자를 확보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구심에 대한 뚜렷한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자 미련없이 엎었다.

초기 기획 메모. 협의가 되면 화면 기획서를 쓰려했다.


쓰기 중심의 플랫폼

독자보다 작가가 더 많아져서 직업 작가의 입지가 더 모호해졌다는 이다혜 작가의 글을 본적이 있다.

디지털 공간의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습관이 생겼고 일종의 기록 강박마저 생겼다.

그냥 편히 컨텐츠를 즐기면 될 것을 왠지 독후감을 써야만 할 것 같고

언젠가 내 컨텐츠를 모아 출간을 하던 강연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위시리스트 하나쯤 안고 산다.


꾸준히 기록하고자 하는 니즈는 점점 강해지고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꾸준히 글을 쓰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의지가 부족하기도 하고, 꾸준히 글을 쓸 만큼 특별한 일상을 경험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읽혀야만 글에 생명력이 생긴다는 부담이 어쩌면 글쓰기라는 습관을 회피하게 만든다.


꼭 나같은 사람들을 위한, 쓰기 중심의 플랫폼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나를 위해 기록을 하고

혼자 쓰니 영 힘이 안생기는 보통의 사람들을 위해

글 쓸 동기를, 혹은 성취를 주는 작은 플랫폼을 만들기로 했다.


다행히도 팀원들도 이런 취지에 공감을 했고

이 서비스의 효용성이 정말 있을 지 검증하기 위해

우리끼리 작은 글쓰기 계를 시작해보기로 했다.

나는 게임마스터가 되어 본업의 경험을 살려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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