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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Dec 05. 2021

서른 끝자락에 드리워진 팀장이란 자리

헌신은 촌스러워졌고, 퇴사는 꿈이 된 요즘 세상에서 단가 안나오는 짓

회사에서의 성취라는 것에는 기대를 놓은 지 오래 됐다.

2018년 1월, 추운 겨울에도 반짝이던 총기는 어느새 독기가 됐고

색깔이 강했던 나지만, 이해 못할 일들을 타협하는 과정에서 많이 회색이 됐다.

제 아무리 내 딴에 열정을 쏟아낸 들, 내 평가는 늘 중간이었고

짝사랑을 하는 양, 혼자 회사랑 알아주지 않는 밀당을 하는 것 같았다.


요즘 것들이 왜 회사에 열정을 쏟지 않는지

2030에게 노동이란 자본앞에서 얼마나 무기력해지는지 대변하면서

취미와 사이드 프로젝트, 투자에 관심을 돌리는 삶을 살았다.

헌신은 촌스러워졌고, 퇴사는 꿈이 되었다.


단가를 맞추며, 주어진 일들에 대해 손이 가지 않게끔 깔끔하게 처리하는 것.

초년차에 쏟은 열정에 대한 배신에 대응하는 최선의 처신이었다.

정치질 같은거, 할 줄도 모르고 끼고 싶지도 않은 나같은 일개미의 생존법은 그뿐이었다.


우리팀을 떠나 더 잘나가는 팀으로 이동한 선배는

“엘리님은… 너무 일을 조용히 깔끔히 처리해서 문제에요.”라고 했다.

묵묵한 것과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관종인 나지만

회사에서 만큼은 의외로 묵묵하게 일하는 사람이 되었다.

딱히 알아주지는 않는 일이지만 꼭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 나였다.

코로나 전사 재택기간에도 회사에 남겨야 할 필수 근무자에 이름을 올리는 사람이 나였다.

내 할 일 안에서는 이 팀에서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어지기 시작했고

딱히 에이스는 아니었지만, 내게 거는 기대도 크지 않을 테니 채우는 것도 부담이 적었다.


인사 이동이니 뭐니 무튼 회사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나는 큰 관계는 없었다.

업계의 특성상 자주 신작이 출시 되고, 잘나가는 신작에 소속되게 된 운도 좋고 실력도 아마도 좋을 그들과 나는 길이 다르니까.

옆팀 누군가가 억대의 인센을 받는 걸 부러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아마도 타고난 욕망을 눌러내고 다스리는 노력을 했던 것 같다.


팀장에 대한 소식을 들은 건 지난주였다.

무튼간에 지금 팀장님이 다른 조직으로 갈 가능성이 있으니 차기 팀장으로 날 보고에 올릴테니

이 자리에서 의사를 밝히라는 내용이었다.

이 회사를 다닌지 최소한 최근 2년 동안 그런 그림은 밑그림 조차 없었다.


“눼? 제가요? 왜요?”


제 아무리 억을 준대도 절. 대 안한다고 말했던 팀장이란 자리였다.

권한은 없지만 고생은 압도적일, 그야말로 노성비가 나오지 않을 자리임을 그간의 팀장님들의 노고로 알고 있었다.

내심 무엇이던 갈망했던 변화였지만 막상 눈앞에 다가오니 너무 막막해서 아무 생각이 없어졌다.


그는 담배를 피고 오는 동안 결정해달라며 자리를 떴고

요동치는 심장을 부여잡고 내 마음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살폈다.

나는 아직 팀장같은걸 달 능력이 되지 않았다.

능력없이 욕심만으로 붙잡은 자리가 낳은 고통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언젠가는 해봐야 할 일이라곤 생각했지만

준비 없이 찾아온 기회가 독이될까 덜컥 겁이났다.


“엘리님, 결정 됐어요? 물론 이게… 쉽지는 않다는거 알아. 하기 싫은 맘이 더 클 것 같아 근데…

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존재한다면 난 엘리님이 해줬으면 좋겠어”



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존재하던가.

존재했다. 다만 지금 내가 잡기엔 두려웠을뿐.


“하고 싶은 마음은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근데 이게 제 욕심으로 해야 하는 건 아닌거잖아요”


분명 그들은 내가 어떤 부분이 부족한 지 명확하게 알고 있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에서 가장 어린, 유일한 여자인 밑바닥인 나한테까지 온 경위가 궁금했다.

명확한 설명은 되지 않았지만(적을 수도없고)

무튼간에 지금 같이 공부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답변이었다.


“할게요.”

“그럼 다음 팀장, XXX이라고 보고드려도 된다는거지?”

“뭐 위에서 싫어하실 수도 있는거잖아요. 걘 안돼 할 수도 있는거고”



4년간의 면담 중 가장 피말리는 면담을 끝내고 자리에 돌아왔다.

손목에선 안정 심박수가 120을 넘어가고 있었다.

3~4년 전, 신입 시절에 막연하게 동경했던 팀장의 모습은 명백하게 아니었다.

지금 팀장님의 뒤를 원망섞인 눈빛으로 쳐다봤다.

능력도 그렇고, 사람을 챙기는 것도 그렇고, 좋은 팀장님이셨다.

팀장님이 다른 곳을 가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멘붕인데 그 빈자리를 내가 채울 수나 있을까 싶었다.


어떤 팀장이 되어야 할까.

난 어떤 팀장이 될 수 있을까.

최소한 이런 팀장은 되지 말아야 할까.

멀지 않은 미래에 다가올 변화에 대해 심란한 마음으로 여러 날에 걸쳐 잠을 설쳤다.

약소하게 펼치고 있던 사이드 프로젝트는 잠깐 손을 놓았다.


늘 리더들이 말하곤 했던

“부족한 저를 믿고 따라준~~” 하는 소리가 입바른 소린 줄 알았는데

진심이었던 것 같다.


투입되는 노력대비 단가가 정말 나올리가 없는 팀장이라는 자리를

요즘 것들은 하래도 안한다는, 가성비 안나오는 짓을

나름 요즘 것인 내가 하게 될 것 같다.


해보지 않은 일이라서

제너럴리스트인 내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회사가 아니라 내 일을 하더라도 언젠가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서

그 언젠가라는 매를 그냥 빨리 맞아버려야 빨리 실패하고 빨리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서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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