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장님은 내게 잘 버티고 있다고 했다
"엘리님은 그래도 잘 버티고 있네"
"엘리님은 그래도 잘 버티고 있네. 보면 잘 못버티고 나가는 사람 많잖아"
그게 <못>인가요 <안>인가요
"못인거 같던데"
실장님과 면담을 했다.
요즘 회사는 붕 뜬 상황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떠났고
또 많은 사람들이 회사에 존재했다.
나는 존재하는 1인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해소되지 않은 답답함이 있긴 했지만
복지도 좋고 보수도 괜찮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무난하고
머무를만 했다.
숨쉬는 공기마저 빨대로 들이키는 양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던 전 회사에 비하면
지금 여긴 편안했다.
버티기 어려웠던 적도 있었다.
수많은 것들이 이해되지 않았고, 이해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왜 이리 직책은 많은건지
공유는 안되는건지
보고서는 얼마나 더 이해되기 쉽고 예쁘게 써야만 하는 건지
동기부여는 고작 인센뿐인건지
한 때 쏟아부은 열정은 내 성과로 돌아올 수 없었고
성과에 대한 보상은 내 것이 될 수 없었다.
수많은 의문들을 타협하는 노력을 했다.
그것이 회사며, 그것이 사회생활이니까.
돈을 버는 것이라는 것은
그런거니까.
회사에 대한 기대감을 놓을 수록 자유로워졌고
버티기 수월해졌다.
해소되지 않은 답답함이 있었지만
실마리는 회사밖에서 찾으려했다.
투자에 몰두했고
유튜브 영상을 편집하고
만들고 싶은 서비스를 음지에서 개발하면서
버티는게 좋은 건진 잘 모르겠어요
나도 모르게 새어나와버렸다.
몰입하지 못하는 삶은 나와 맞지 않는 옷이었다.
아무리 회사밖에서 소울을 태워낸 들
하루 최소 8시간. 깨어있는 시간 중 절반 이상을 회사에 묶여있는 몸이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소위 ‘가성비’를 맞추기 위해 내 최대치의 50% 남짓을 쓰고 있었다.
어차피 성과는 정해져 있다는 경험적 가설에 의해 내린 최선의 전략이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동료들이 빛을 잃은 회사의 분위기가 묘하게 불편했다.
하루의 반 이상을 그런 환경에 나를 노출시키고 있었다.
나를 지켜야겠다.
이 환경을 변화시키거나, 이 환경에서 벗어나거나.
스마트한 결정은 분명 후자겠지만
난 늘 전자를 택하는 이상한 아집이 있었다.
유지보수보다 새로 시작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일텐데
그놈의 정이 뭔지, 깡이 뭔지.
조금 더 버텨보기로 했다.
그만두는 결단을 내리기에 아직 난 이곳이 좋은가보다.
단, 그만두어야 하는 순간이 올 때 후회가 없도록
회의주의에 나를 방치하진 않겠다.
최소한 지난 시간에 대해 부끄러움이 없도록.
버티는 것 말고 뭔가 시도한 것이 있어
실패하더라도 경험이 될 수 있도록.
내일도, 아직 출근하겠다.
“엘리님, 남은 조활비 엘리님 편한대로 써줘요”
팀장님, 편한게 어딨어요. 제일 좋은 방향으로 써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