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랑종' 해석
☆
한줄평: 서스페리아 존잼.
길게 말하고 싶지 않지만 제일 핫한 영화고 이걸로 어그로 끌어서 조회수가 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씁니다.
스포있음.
소문난 잔칫집에 먹을 거 없다고 했던가. 그 말을 영상화한다면 이 영화가 아닐까 싶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곡성2, 비꼬자면 모든 게 중간이라서 영제가 미디엄인가 싶고, 비난하자면 젠더이슈에 관심도 없고 여성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을 가진 동양남성 두 명이 만나 영화를 찍으면 이렇게 되는구나 싶다. 서사도 없고 납득도 없고 맥거핀으로 진행되는 게으른 작품.
1. 플롯과 서사
플롯은 있는데 서사가 없다. 개판이다.
플롯을 요약하자면 작품의 배경은 토속신앙에 대한 믿음이 강하고, 피(영혼)로 인한 알 수 없는 기현상이 빈번히 발생하는 지역이다. '님'은 모계로 내려오는 세습무당이고, 언니인 '노이'는 본디 무당이 되었어야 하나 끝까지 거부하다 이후 불운한 가족사를 지닌 남편과 결혼해 자식을 낳고 산다.
노이의 자식들은 하나같이 집안에 내려오는 저주를 피하지 못하는데, 아들 '맥'은 죽고 딸 '밍'은 신병에 시달린다. 이후 밍이 신병이 아닌, 악귀에 빙의되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퇴마를 준비한다는 게 영화의 플롯이다.
페이크다큐가 아니라 명확한 주인공을 지정하고 서사를 탄탄히 쌓아갔더라면 영화에 대한 아쉬움이 덜하지 않았을까 싶다. 다큐멘터리 형식이라서 다른 영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본디 존재하던 서사를 드러내거나 반대로 서사를 쌓아가는 과정이 부족할 수 밖에 없는데, 문제는 시점이 자주 변동된다는 점에 있다.
초반에는 인터뷰 연출이나 불쾌하긴하지만 관음적 시점을 의도적으로 연출해 페이크다큐 느낌을 잘 살렸는데, 후반부로 갈 수록 페이크다큐였다가 영화였다가 정체성을 완전히 잃어버린다. 밍의 방에서 퇴마를 시도하는 장면을 기점으로 페이크다큐 연출이 거의 상실되는데 이후에 장기자랑 장면에서 야간촬영하는 카메라를 보고나서야 "아 이거 페이크 다큐였지......" 하고 뒤늦게 카메라맨의 존재가 떠오른다.
이런식으로 애매모호하게 연출할거면 주인공을 확실하게 내세우거나 서사라도 확실하게 드러내는 게 나았을텐데. 그것도 아니라면 어떠한 설명도 없이 그냥 악귀에게 잘못 걸려들었고 거대한 존재에게 굴복되어가는 인간군상을 그려내는게 좋지 않았을까.
부계로 내려오는 저주와 모계로 내려오는 무당. 대를 이어 물려받는 억압적인 운명이라는 매력적인 소재로 이렇게나 애매하게 스토리를 진행할 수 있다니. 이것도 참 대단하다.
2. 해석
그래도 착즙해석을 해보자면......
영화에서 계란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점괘의 한 요소이자 맥거핀으로 활용된다. 이 계란이 영화 속 믿음의 겉과 안의 경계를 표현하는 상징이 아닐까 싶다. 겉보이겐 멀쩡하지만 그 속에 담긴 점괘를 파악하려는 님의 모습처럼, 영화 속 인물들은 겉보다는 안에 담긴 진실이 중요하고 그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님은 밍의 빙의를 잘못 판단한 채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는 답을 듣고자 약 한 달동안 계란을 깨뜨리는 행위를 했고, 겉도 안도 잘못됐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영화는 믿음으로 생성되는 경계가 얼마나 유약한지를 보여준다. 믿음으로 인해 무존재가 존재로 바뀔 수도 있고 반대로 존재에서 무존재로 무너져내릴 수도 있다는 것을 드러내며 무엇이 진실인지, 누구를 믿어야할지 모르는 지경에 이르게 한다.
이 유약한 경계는 껍데기와 알맹이를 대하는 모호한 시선으로 이어진다. 이산 지역 사람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통해 어떤 존재의 경계를 껍데기(진실)와 알맹이(미신)로 분리한다.
대표적으로 악귀를 막기 위한 빨간옷 미신, 빨간 차라고 붙여놓는 문구, 마지막으로 밍인척 꾸민 노이를 통해 지역 주민들이 가지는 믿음으로 생성되는 경계가 드러난다. 이 경계는 님에게도 적용되어, 노이인척 꾸민 님에게 신병이 옮겨가는 모습 또한 보인다.
그러나 이 믿음은 허울 뿐이다. 주민들 스스로도 진실로 믿는 것이 아닌,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미신따위로 여길 뿐이다.퇴마사인 '싼 티'가 어떻게 퇴마할 지를 설명하면서 자신의 행위를 마닛의 차에 비유하는데 여기서 주민들이 가진 믿음이 얼마나 나약한지를 절실히 보여준다.
마닛의 차는 까만색인데 미신적 믿음때문에 빨간 차로 바꾸고자 하지만(태국 특유의 미신이라고 한다) 금전적 문제로 '이 차는 빨간 차입니다'라는 문구를 단다. 싼 티는 노이를 밍으로 꾸미고 의식을 진행하는게 마닛의 행동과 똑같다고 말한다.
의식을 진행하는 싼 티조차 자신의 행위에 대한 믿음이 존재하지 않으며, 밍의 가족들 또한 노이가 대신 의식을 치른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오로지 의식을 위해 생성된 임시적 믿음은 쉽게 깨져버리고 마닛의 부인이 문을 열게 되면서 의식은 실패하고 모두가 죽게 되는 비극으로 치닫는다. 마닛의 아내만 잘못한 것은 아니다. 마닛 또한 의식이 다 끝나지 않았음에도 노이의 이름을 부르고 그를 걱정한다.
싼 티가 보여주는 유약한 믿음은 님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난다. 노이는 님에게 반얀 신을 본적이 있냐며 님의 신실함을 뒤흔드는데, 님은 반얀 신이 느껴지기에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형상에 불과한 반얀 신 석상이 잘려나가자 곧바로 믿음을 상실한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과연 반얀 신은 하나의 존재인가? 밍에게 빙의된 존재는 악귀가 정말 맞는가?
님의 나레이션에서 알 수 있듯, 반얀 신은 조상신이자 마을주민을 보호하는 수호신 격의 존재다. 님은 그 반얀 신을 대대로 모계전승하여 모셔온 무당이다.
반얀과 랑종은 '대를 잇는다'는 동일한 특성을 가진다. 반얀은 좁게는 님 가족의 선대, 넓게는 마을주민 전체의 선대가 될 수 있다. 어느 집안의 조상이 죽어 반얀이 되었다라는 명확한 역사가 존재하지 않으며, 무당을 매개체로 하여 온 마을 주민을 돌보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 반얀은 특정 존재가 아닌 마을 안에서 순환되는 죽음과 탄생 그자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반얀 신은 님뿐만 아니라 여러 매개체 속에 존재할 수 있지만 그 힘이 각자 다르다. 노이의 몸에 든 존재도 반얀 신일 수 있고, 밍에게 빙의된 존재도 반얀 신일 가능성을 무시할 순 없다.
다만 님의 죽음을 통해 반얀 신 또한 죽었다고 추론할 수 있기에, 이들 몸에 든 존재는 반얀을 흉내내는 또는 죽은 뒤 오랜 시간이 흘러버리는 바람에 본인이 반얀이라고 착각하게 된 잡귀일 가능성이 크다.
님의 죽음이 반얀 신의 죽음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님의 죽음은 모계전승이 끝났음을 의미하고, 밍의 오빠 맥의 죽음은 부계전승이 끝났음을 의미한다. 더이상 물려받을 자손이 없으니 조상은 자신의 역할을 물려줄 매개체를 상실한 것이다.
다만 님의 죽음은 원인이 명확하지가 않다. 밍의 예지몽대로라면 반얀신이 죽었기에 더이상 보호받지 못한 것일 수도 있고, 혹은 불신에 대한 대가나 마지막 안배로 신이 데려간 걸 수도 있다.
나는 전자에 무게를 두고 싶다. 반얀 신은 자신의 후손을 지키기 위해 밍에게 예지몽을 꾸게 하지만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반얀 신의 능력으로 해결 가능한 범위를 넘어서 버린다. 이후 소멸되는 과정에서 자신의 매개체인 님을 함께 거두어 간 것이 아닐까 싶다.
3. 비판
영화를 향한 비판을 찾아보면 관음적 시선이라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 처음엔 이해해보려고 했다. 페이크 다큐니까, 공포영화다 보니 야간 촬영이 필요하겠지 하는 생각에 합리화해보려 노력했지만 도저히 가능하지가 않았다. 영화 내내 관찰카메라라는 허울 좋은 핑계로 촬영되는 불법촬영을 보고 있는 기분이었고, 특히나 밍의 빙의를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 비정상적인 성관계 장면은 정말 불필요했다.
곡성에서도 성관계 장면이 반응이 갈리는 요소 중 하나였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인듯 하다. 빙의현상 중 하나가 외설적 행위나 본능적 행위가 있다고는 하나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굳이 불법촬영 구도와 지나치게 긴 성관계 연출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노출과 성관계가 예술이던 시대는 지났다. 성적 요소 없이 완성되지 않는 예술이라면 개인의 능력부족일 뿐이다.
더불어 맥거핀이 지나치다 못해 감독이 게으르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님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강조하기 위한 연출이겠지만 밍이 사라진 뒤 한 달 내내 계란이나 깨다가 겨우 점괘 받고 찾는 곳이 밍 가족네 공장이라니. 너무나도 뻔하고 게으른 연출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는 하지만 한 달동안 사람 하나 못 찾냐며 경찰에게 윽박지를 시간에 부계전승으로 내려오는 저주와 폐허가 된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는게 맞을텐데 일부러 답답하게 연출하는 건지 관객이 납득할만한 스토리를 짜지 못해서 대충 해결한 건지 모르겠다.
밍을 향한 관음적 시선과 성적대상화가 과하다. 밍이 누워있거나 잠든 장면을 촬영할 때 종종 앵글을 밍의 배 부근으로 잡는데, 치마나 짧은 바지를 입은 밍을 그렇게 잡고 있으니 불쾌한 서비스컷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말 많던 화장실에서 피를 닦는 장면은 생각보다 불쾌하진 않았고, 어느정도는 필요한 연출이었다고 본다. 문제는 밍이 촬영을 눈치채고 다가올때 헉! 하고 놀라는 인물의 목소리 연출이다. 그것 하나로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불법촬영으로 장르가 바뀐다.
초반부에선 밍을 몰래 촬영하다 중반부에선 밍이 화장실에서 쓰러지자 화장실 안으로 뛰어 들어가 밍을 부축한다. 대체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그럴 거면 처음부터 밍의 피를 보고 병원에 데려가거나 걱정해주면 되는 거 아닌가? 그리고 여러 사람이 지적했지만 피가 그렇게 많이 나오면 생리가 아니라 출혈이다. 아프면 불법촬영을 하지말고 병원에 가라.
4. 아쉬운 점
영화가 여혐이라는 반응이 많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생각한다. 여자에게만 신병과 무당이 세습된다는 게 여혐이라는 말이 있는데, 토속신앙은 모계전승인 곳이 많다. 좋게 해석을 해주자면 싼 티가 퇴마를 실패한 것과 퇴마 전 잘못된 신내림을 내려준 무당이 남성으로 등장하는 이유는 박수무당이 가지는 불완전함(모계전통을 따르지 않은)을 나타내는 걸 수도 있다. 랑종의 여혐적 요소는 여성에게 신병세습되는 스토리가 아니라, 여성이 신병에 시달리는 과정을 관음적이고 여성파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영화에게 아쉬운 건, 차라리 서사를 강조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나홍진 감독의 특징이 선과 악의 불분명함과 방관하는 신이다 보니 서사로 가는 게 힘들다는 건 안다. 그리고 신은 최대한 인간사에 개입을 덜하는 것도 맞다.
내 개인적 취향을 더해 스토리를 써본다면 밍에게 내려온 게 반얀 신이고 악행을 저지르고 신을 거부한 노이네 가족을 처벌한다는 결말이었거나 또는 노이와 밍에게 반얀 신이 동시에 내려왔지만 서로 간의 힘의 차이가 존재했고 노이가 밍에게 잡아먹힌다는 결말이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그랬다면 거대한 운명에 굴복당하는 한 가족의 불행이 먹먹하게 와닿았을텐데. 딸에게 제발 돌아오라는 어머니의 애원섞인 신파와 패륜으로 끝나서 굉장히 실망스럽다. 신파 멈춰.
5. 결론
무섭긴 무섭다. 공포영화라고만 생각하고 보면 괜찮은 편. 한 8천원 즘에 봤으면 좋았을텐데 1만 4천원은 아깝다. 오컬트+고어물이 보고싶다면 서스페리아가 더 완성도 높다.
#랑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