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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린 Apr 29. 2021

화녀; 욕망과 상실은 어디로 가는가

영화 "화녀" 리뷰



윤여정 배우의 아카데미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딸랑딸랑)

기회주의자 김태린, 착실하게 주류에 편승해보겠습니다.



    영화 화녀는 김기영 감독의 대표작들인 하녀, 화녀, 충녀 세 시리즈 중 두 번째 작품이자 컬러로 상영된 영화이며, 전작인 하녀와 거의 같은 플롯을 지니고 있다. 음악을 하는 남편과 사업을 하는 아내로 이루어진 중산층 가정에 어린 하녀가 들어오게 되면서 모두가 파국을 맞이한다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데, 하녀의 스토리를 좀 더 다듬고 시대 흐름을 반영한게 화녀인듯 하다.


    1971년 작품이라 큰 기대를 가지지 않고 주류에 편승하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관람하였는데, 웬걸. 너무나도 세련된 미쟝센과 연출, 준수한 플롯이 매력적이었다.

    또한 시대적인 면이 양가적 감정을 들게하는데, 시대가 시대인지라 여성이 스토리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아쉽고 시대적 한계를 느끼게 하나 또 한편으로는 당시 여성들이 처한 사회적 입지나 성 문제를 지적하며 여성이 주류가 되는 작품을 그려냈다는 점이다.

    작품을 보는 내내 서스페리아(1977)와 연출이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특히 미묘한 긴장감과 붉은 조명, 위태로운 분위기가 매우 흡사한데 화녀가 서스페리아보다 6년이나 일찍 상영된 작품이다 !! 



    화녀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시골에 살던 명자가 남성들에게 겁탈을 당할 뻔 하고, 트라우마를 앓게 된다. 이를 계기로 친구와 함께 서울로 상경한 후 하녀로 취직하게 된다.

    구조는 현재 시점->과거 회상->진행->현재 시점의 구조를 가진다. 살인사건이 발생했고 이를 취조하는 상황으로 시작해 명자의 친구인 경희가 사건을 증언하는 것으로 회상이 시작된다. 회상 과정에서 명자와 경희의 서사가 드러나고 이후 사건이 진행되는 방식으로, 무난하고 안정적인 플롯 구조를 가지고 이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 인과관계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또한 복선을 깔고 이를 회수하는게 탁월하다. 닭과 쥐약을 등장시켜 어떤 사건이 일어날 거다 하고 적당히 경고를 준 뒤 정말로 사건이 일어나고, 이후 약간의 반전이 있는 교과서적이면서도 훌륭한 흐름을 가진다.


    다만 작품에서 아쉬운 것은 모든 사건의 시작이 강간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명자가 시골을 떠나게 된 것, 가정파탄이 일어나게 된 것, 명자가 자살을 결심하고 파국에 이르게 된 것 모두가 명자가 강간을 당하거나 당할 뻔했고, 여기서 벗어나고자 노력한 결과가 파멸이라는 점이다. 

    시대적 요소를 고려한다면, 당시 여성들에게 현실적으로 일어나는 일이고 이를 충분히 반영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여성들이 직업노선에 뛰어들게 되면서 성범죄에 노출되는 일이 빈번해졌지만, 이를 해결하거나 신고하기 어려웠으며 동시에 사회적으로는 순결 이데올로기가 강한 상황이었다.

    명자 또한 순결 이데올로기에 시달린다. 취업 조건으로 급여를 받지 않고 시집을 보내달라고 요구하고, 강간을 당했음에도 이를 신고하거나 복수하는게 아닌, 그의 첩이 되었다고 인식한다. 명자가 복수를 실행하는 것은 강제로 낙태를 시켰음에도 적절한 보상이나 보살핌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강간을 자행한 남성 또한 반성을 보이지 않고 자신을 거부하는데에서 비롯된다.

    

    하녀, 화녀, 충녀 시리즈 작품들은 다양한 직군에서 일하는 여성을 노출하고, 출신이 좋지 않거나 가난한 젊은 여성이 중산층 가정에 침투하는 식의 스토리를 담아낸다. 이 과정에서 여성의 욕망과 사회적 입지 간의 충돌을 충실하게 그려낸다. 

    개인적으로 하녀, 화녀, 충녀 시리즈에서 등장하는 인물설정이 당시 현대 사회에서 선호하는 요소와 가깝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감독이 선견지명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비판하고자 했던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70년대 작품이라는 걸 고려해봤을 때 상당히 파격적인 내용이다.


    세 작품 모두 스스로 사업을 개척해 성공한 아내와 능력이 부족한 남편,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여성이 등장하고 조연들로는 공장여급, 호스티스, 가정부, 연예인 지망생 등 가난하거나 시골에서 상경해 직업노선에 뛰어든 어린 여성들이 등장한다. 

    작품에서 등장하는 성별 비중이 여성이 높고, 여성의 서사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이들이 과거 어떤 사정이 있었고, 트라우마를 앓게 되었으며, 이 트라우마가 사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로 이어지면서 여성이 스토리를 주도하게 된다. 사건이 강간을 중심으로 진행된다는게 불편하지만, 명자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면서 그가 스토리를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아니었나 싶다.


    직업노선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자신의 욕망을 깨달아가는 개인의 이야기를 그려낸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전까지 작품에서 주로 소비되던 여성 캐릭터는 대부분 현모양처나 악처, 첩, 요부가 많았을텐데 여성 캐릭터의 지평을 넓힌 작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여성이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고 이를 이루고자 시도한다는 점이 인상 깊다.

    아쉬운 점은 아내와 하녀가 한 남자를 두고 싸운다는 점, 남편이 마의 존재 마냥 여성을 계속 끌어들이고 여성으로 인해 남성이 파멸로 향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 또 한편으론 결말에서 남은 생존자들끼리 서로를 부축하며 걸어가는데 이 생존자들 또한 여성이다. 여성과 여성이 싸우고, 마지막으로 남아 함께 살아가는 것 또한 여자라는 게 오묘한 기분이 든다. 비판하려다가도 이런 점은 좋고, 또 좋다가도 이런 점은 비판하고 싶고. 참으로 묘하다.



    아무튼, 이런 사람에게 추천한다.

1) 고전 영화를 좋아하는데 여성 원탑을 보고 싶다.

2)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면서 사회비판적 요소가 담긴 걸 보고 싶다.

3) 기묘하고 서스펜스적 스토리를 좋아한다.


    이런 사람에겐 비추한다.

1) 시대를 떠나서 여성혐오적 내용은 버겁다.

2) 여성과 여성 간의 갈등 구조는 싫다.

3) 쥐, 깜놀요소 싫다.

4) 트리거 요소를 기피한다.


별점은 시대적 한계를 고려해 ★★★★★

오늘부터 내 최애 영화 삼대장은 미드소마, 서스페리아, 화녀. 정착 완.



화녀는 5월 1일 재개봉한다고 한다.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에서도 보존작품을 관람할 수 있으니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온라인에서 감상하길 바란다.




#화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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