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드 셜록 시즌2 1화 "벨그라비아 스캔들" 페이퍼
“BBC TV 시리즈 《셜록》(Sherlock) 벨그라비아 스캔들(The scandal in belgravia)에 나타난 젠더 수행성 읽기”
1. 서론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는 보수적 성관념이 지배적이던 빅토리아 시기의 작품으로, 출간된 당시의 동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마찬가지로 BBC TV 시리즈 《셜록》(Sherlock)은 원전을 현대 시점으로 각색한 스핀오프(spin-off) 작품으로, 작품이 방영된 시기의 동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각색 과정에서 《셜록》은 스토리 상의 사건과 캐릭터 구성을 원전에 가까운 구성으로 가져오되, 현대 시점에 맞추어 직업과 상황적 요소에 변화를 준다.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셜록》은 오랜 팬덤 역사를 지니는 작품인 만큼, 팬덤과 관객의 요구를 수용하고 소통을 시도한다. 블로그와 트위터봇 등의 SNS 문화를 이용하여 고전의 트릭과 사건을 현대적으로 연출하고, 동시에 드라마 방영 시간 외에도 SNS를 통해 관객과의 소통을 시도함으로써 관객을 작품에 몰입하게 한다. 동시대 문화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연출은 고전 속에 존재하던 홈즈와 왓슨이 실존한 인물처럼 느껴지게끔 만들며, 관객으로 하여금 드라마의 연출적 요소-- SNS--를 기반으로한 참여문화를 유도한다.
각색을 거치는 과정에서 《셜록》은 원전이 가지는 시대적 한계인 성역할의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시도를 보인다. 각본가 마크 게이티스와 스티브 모팻은 여성 캐릭터의 비중과 역할을 높이고, 퀴어와 BDSM 등의 변화된 성문화를 작품에 반영한다. 원전에 나타난 사랑이 이성애 중심의 연인관계와 무성애적 성향을 지닌 캐릭터라는 한정적 모습을 보였다면, 《셜록》은 특정 인물의 신체적 성과 성적 취향에 변화를 주어 다양한 사랑의 형태를 반영한다. 또한 여성의 역할이 집주인, 의뢰인, 의뢰 대상자, 연애상대 정도에 그쳤던 기존의 원전과 달리, 현대로 배경을 옮겨오며 여성 캐릭터는 스파이, 암살자, BDSM 플레이 제공자, 전문직 연구원 등의 다양한 직업과 행동양식을 보여준다. 소재거리, 주변화되었던 여성 캐릭터는 조력자의 역할과 남성 인물과의 유대감을 지닌 인물로 등장한다. 이를 통해 여성 인물은 등장 인물들 간의 관계성과 인간성을 돋보이게 하는 존재로 역할을 수행한다.
그럼에도 《셜록》은 여성 캐릭터의 소비 방식에 있어 비판(미주1)받는다. 여성 인물의 역할과 비중이 크게 증가하였지만, 작품 속 여성 캐릭터들은 여성에 관한 고정관념적 이미지와 성역할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인다. 대표적 인물로는 아이린 애들러와 몰리 후퍼가 존재한다. 애들러는 원전에서 그는 홈즈에게 패배를 안긴 인물이자, 홈즈가 가진 여성차별적 사고를 깨뜨린 인간으로 등장한다. 《셜록》에선 여성과 남성영웅의 구원서사를 따르며, 성적 매력이 돋보이는 위협자의 이미지로 등장한다. 후퍼는 《셜록》 시리즈의 오리지널 캐릭터로, 원전이 가지는 문제인 여성조력자의 부재를 채운다. 동시에 애들러가 지닌 이미지인 성적매력을 지닌 유혹자와 대조되는 이미지, 조력자와 헌신적 여성의 이미지를 수행하는 캐릭터다. 이들 두 캐릭터는 홈즈에게 이성애적 감정으로 다가간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이 과정에서 두 캐릭터의 행동은 고정관념적인 성역할을 수행하고 전통이고 이분법적인 여성성의 대립--성녀와 악녀--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본 글은 《셜록》의 에피소드인 〈벨그라비아 스캔들〉에 나타난 젠더 수행성을 연구하고자 한다. 〈벨그라비아 스캔들〉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인 아이린 애들러, 몰리 후퍼가 수행하는 고정관념적인 여성의 모습과 성역할을 중심으로 하여 작품을 분석할 것이다. 이를 위해 버틀러의 젠더 수행성을 바탕으로 하여 분석을 시도할 것이다. 작품 내에서 두 인물이 보여주는 언어와 행동, 외형적 요인에서 나타나는 젠더 수행성을 보며 이들에게 기대되는 여성 캐릭터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볼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보여주는 젠더 수행성이 남성 인물의 이미지 형성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를 다룰 것이다. 또한 작품 내에서 트릭을 해결하는 요소로 여성의 육체가 사용되는 점을 지적할 것이다. 여성의 육체를 연출적 도구로 소비하는 장면에 담긴 이상화된 여성상과 젠더 수행성을 다룰 것이다.
이 작업을 위해 이들이 수행하는 고정관념적인 여성캐릭터가 무엇에서 비롯되는 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에 접근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는 방법은 이하와 같다. 첫 번째로 원전과 드라마 간의 비교를 통해 여성 캐릭터가 수행하는 젠더 수행성과 성역할을 차이를 본다. 원전과 드라마에 모두 존재하는 캐릭터인 아이린 애들러가 이 방법에 해당될 수 있다. 두 번째로 두 여성인물, 아이린 애들러와 몰리 후퍼 캐릭터를 비교하며 두 캐릭터가 보이는 성역할과 젠더 수행성을 본다. 서로 대조되는 전통적 여성성--성녀와 악녀의 이분법적 대립--을 지니는 두 캐릭터의 비교를 통해 각 인물에게 주어지는 역할에 젠더 수행성과 성역할이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분석할 것이다. 세 번째로 드라마 속 아이린 애들러의 육체를 소비하는 방식과 셜록 홈즈의 젠더 수행성에 대해 다룰 것이다. 특히 세 번째의 경우, 애들러가 지니는 복합적 이미지와 수행성을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애들러와 홈즈의 육체 소비가 어떤 차이점을 지니며, 이 점이 애들러와 홈즈의 이미지 설립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를 다룰 것이다.
2. 본론
2-1. 원전과 드라마 속 아이린 애들러 비교
아이린 애들러는 원전과 드라마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인물이다. 원전 〈보헤미아 왕국의 추문〉에서 애들러는 미국 출신의 오페라 가수로, 과거 연인관계였던 보헤미아 대공의 결혼을 방해하고자 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는 자신의 영리함을 통해 홈즈를 따돌린 후 남편과 도주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 홈즈는 자신이 가진 여성차별적 사고, “여성의 현명함을 웃음거리 따위로 삼는(비웃는)”(Doyle 29) 행동을 그만두게 되며, 경애심을 담아 ‘그 여자(The woman)’라는 말로 애들러를 기린다.
동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 특성을 고려했을 때, 원전의 시대적 배경을 볼 필요가 있다. 〈벨그라비아 스캔들〉의 원전인 〈보헤미아 왕국의 추문〉은 1891년 7월 경 스트랜드 매거진에서 발표된 작품이다. 이 시기는 빅토리아 여왕 통치 후반으로, 영국의 부흥기이자 급격한 사회적 변화와 안정을 반복하던 때이다. 아일랜드 독립운동이 격렬하게 전개되었으며, 기혼 여성의 재산권 소유와 여성의 대학 입학 허용이 이루어지는 등 여성 권리가 조금씩 상승하던 시기이다. 문학에서는 소설의 유행과 번영이 이루어졌다. 동시에 빅토리아 통치 시기를 관통하는 청교도적 도덕관과 금욕주의적 분위기는 여전했고, 여성의 역할에는 한계가 존재했다.
이런 시대적 배경을 고려했을 때, 아이린 애들러는 당시 문학 작품에서 소비되던 전통적 여성 캐릭터와 확연한 차이점을 보인다. 위기를 자신의 힘으로 극복하고 운명을 개척하는 것은 기존 문학에서 남성 캐릭터가 전유하던 서사였다. 사실주의와 낭만주의 문학에서 다루어지는 대다수의 여성 캐릭터는 숭배적 대상, 명확한 사회적 한계에 의해 좌절을 겪는 인물, 연애와 결혼에 의존해 신분 변화를 이루는 인물로 그려진다. 이러한 여성캐릭터의 이미지와 보수적이고 가부장적 성역할이 강조되던 빅토리아 시기의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한다면 〈보헤미아 왕국의 추문〉 속 아이린 애들러는 진보적이고 페미니즘적인 인물로 여겨질 수 있다. 결혼을 통한 신분상승을 꿈꾸지 않고 자신이 선택한 남성과 새로운 사랑을 이루었으며, 남성--보헤미아 왕--을 협박한 이유가 자신을 부당대우, 희롱한 것에 대한 복수였다는 점이다. 애들러는 이 두 가지 요소를 통해 자신의 지위와 운명을 결정하는 인물이 된다.
여성 캐릭터가 스스로의 운명을 쟁취하는 서사가 전무한 것은 아니다.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여성 캐릭터, 특히 브론테 자매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면 극복하기 어려운 운명에도 불구하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여성 캐릭터를 발견할 수 있다. 아이린 애들러가 이들과 구별되는 점은 기존 여성 캐릭터들이 가지게 되는 전형적 이미지인 성녀와 악녀의 이분법적 구조, 미약한 존재감을 지니며 남성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는 한정적 역할에서 벗어난다는 점이다. 주체적 여성 캐릭터를 볼 수 있는 작품인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와 윌리엄 새커리의 〈배니티 페어〉에서는 여성 인물들이 명확하게 성녀와 악녀의 구분된 역할을 고수한다. 또한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그대로 유지한 채, 그 이미지가 크게 변하지 않거나 이미지에 정해진 스토리 구조를 따른다. 예컨대 성녀의 이미지를 가지는 제인 에어는 그의 선함과 여성의 도리를 따랐음에 대한 보상--유산--을 받고, 더 나아가 과거의 연인인 로체스터에게 되돌아가 동등한 위치의 동반자가 되고자 하는 자애로움을 보인다. 악녀의 이미지를 가지는 베키 샤프는 악행의 반복과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파멸로 치닫는 상황을 겪는다. 결국은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며 과거의 행동을 회개하고자 한다.
이와 달리 애들러는 성녀와 악녀, 무엇으로도 규정지을 수 없는 복합적인 캐릭터성을 가진다. 의뢰인인 보헤미아 왕의 서술에 따르면, 애들러는 왕을 파멸시키고자 협박을 시도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작품의 후반부에서 애들러의 편지를 통해 진실이 드러난다. 악녀, 위협자의 이미지가 자신의 안전을 위해 보험을 들고자 했던 현명한 여성의 이미지로 뒤바뀐다. 작중 남성 인물들은 애들러의 상황에 수긍하며 그의 행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사건의 의뢰자인 보헤미아 왕은 애들러에게 지혜로움에 연신 감탄하고, 이야기는 애들러의 퇴장을 끝으로 조용히 마무리 된다. 애들러를 대하는 홈즈의 태도 또한 눈여겨 볼만하다. 성애적 대상이나 타자로서의 여성이 아닌, 경애의 대상이자 한 때 자신의 맞수였던 인물로 그를 기억한다.
홈즈의 특성인 무성애적 성향을 고려하더라도, 이는 여성 캐릭터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내린 유의미한 장면으로 볼 수 있다. 애들러에 대한 평가가 변하는 과정이 외부적 요소, 상황의 변화나 타인에 의한 것이 아닌 애들러의 목소리--편지--에서 결정된다는 점이다. 애들러는 스스로를 변호함으로써 자신에게 주어진 악녀의 이미지를 거부한다. 이 과정을 통해 애들러는 남성에 의해 자신의 의도와 역할이 읽혀지고 해석되는 타자가 아닌, 스스로 자신의 상황과 입장을 설명하는 서술자가 된다.
이러한 점을 보았을 때, 애들러는 여성 캐릭터에게 기대되는 성역할을 따르지 않는다. 1)남성에게 구원받고 지위가 결정되어야 할 타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않고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운명을 결정짓는다. 2)여성 캐릭터가 가지는 전형적 역할인 성녀와 악녀의 이미지에서 벗어난다. 3)여성 캐릭터의 소비 방식인 성애적 대상, 유혹자의 이미지가 아닌 남성 캐릭터의 대적자, 맞수, 존중받는 이미지로 존재한다. 애들러가 홈즈를 속이는 장면에서 여성 캐릭터에게 기대되는 젠더 수행성을 거부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애들러를 묘사하는 내용에 따르면 애들러는 전직 오페라 가수이자 왕의 연인이었으며, 빼어난 외모를 지닌 여성이다. 이러한 이미지를 가지는 여성 캐릭터들은 대게 남성을 유혹하거나 여성적 매력을 활용하여 위기를 벗어나거나 상황을 바꿀 것이라는 기대를 가진다. 애들러는 유혹자라는 젠더 수행성을 거부하기 위해 남성의 옷을 입고 남성을 흉내냄으로써 위기에서 벗어난다. 또한 왕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여성의 주된 방법으로 기대되는 유혹과 합의가 아닌 협박과 도주를 선택한다.
여기서 의문을 제시할 수 있다. 애들러가 남성을 흉내낸 것은 위기에서 벗어난 것은 남성의 젠더를 수행하거나 젠더 퍼포먼스를 시도한 것인가? 버틀러는 표면화된 젠더를 설명하기 위해 드래그를 제시한다. 그는 “드래그가 여성에 관한 통일된 하나의 이미지를 창조한다”(Butler 175)는 것과 “드래그가 젠더를 모방하면서 젠더 자체가 가진 우연성 뿐 아니라 모방적인 구조를 보여준다”(Butler 175)고 주장한다. 원전의 막바지에서 애들러는 자신의 트릭을 설명한다.
“……당신도 알다시피, 전 연기 수업을 받은 적이 있답니다. 남장을 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죠. 종종 그 방법을 활용 하기도 했고요.“(Doyle 28)
-The Adventure of Sherlock Holmes
애들러의 설명에 따르면 그는 남성의 젠더 퍼포먼스를 흉내내는 경험이 있는 인물이다. 버틀러가 언급한 드래그가 남성에 의한 과장된 여성성의 표현이라면, 애들러가 보여주는 남성성의 흉내는 탐정인 홈즈조차 구분하기 어려운, 남성과 동일한 모습이다. 작중 묘사에서 애들러는 여성의 젠더 수행성을 기대하기 쉬운 여성적 이미지로 그려진다. 그럼에도 애들러가 남성의 옷을 입고 드래깅을 하는 행위를 통해 그가 가진 여성성은 감춰지고 그가 가진 여성의 젠더를 발견할 수 없게 된다.
애들러의 행동은 표면화된 젠더가 허구임을 보여준다. 남성의 옷을 걸치고 연기 수업에 따른 행동을 한 것만으로도 진짜 남성인 홈즈가 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그 점이 드러난다. 원전에서 애들러는 남성과 결혼을 하는 이성애자이자 여성의 젠더를 지니는 인물이다. 그가 남성의 옷을 입고 남성성을 흉내내는 것은 애들러의 편지에서 드러나듯, 그 방법이 주는 자유와 혜택을 추구하기 위함일 뿐, 자신에게 내제된 남성의 젠더를 표출하는 것이 아니다.
현대 시점으로 배경을 옮겨오며 애들러는 성적 매력과 여성성이 강조된 인물로 등장한다. 애들러의 직업 또한 특이 성적취향을 지닌 고객을 대상으로 BDSM 플레이를 제공하는 윤락업종으로 바뀐다. 과거 여성 배우와 가수가 귀족 및 유산계급의 정부, 고급창부의 역할을 한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이 같은 각색은 현대적 시점으로 이동한 것을 고려한다면 나름의 설득력을 지니는 듯 하다.
애들러는 첫 등장에서부터 젠더 수행성을 보여준다. 얼굴이나 자아, 성격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 여성의 육체를 보여주고 그 뒤에 그가 가진 직업, BDSM 플레이 판매자라는 특성을 드러낸다. 유혹자의 이미지를 지닌 여성 캐릭터에게 기대되는 젠더 수행성인 육체적 요소, 성적 매력을 강조한 이미지를 통해 그 캐릭터가 가지는 사연이나 서사, 감정은 가려진다. 성적 매력과 여성성이 강조되면서, 애들러의 캐릭터성은 여성의 젠더 수행성을 적극적으로 따르는 모습을 보인다.
죽음을 가장한 후 베이커가에 잠입한 장면을 제외한다면, 애들러는 작중 내내 완벽한 메이크업과 여성적 이미지를 지니는 의상을 고수한다. 걸음걸이와 행동, 목소리 또한 전통적 여성성을 수행한다. 애들러의 외모적 젠더 수행성은 드래그가 창조하는 통일된 여성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지나치게 완벽에 가까운 여성적 이미지를 구현해내고, 그의 행동과 스토리 흐름 또한 여성캐릭터에게 기대되는 요소를 따른다. 애들러는 여성 캐릭터에게 기대되는 젠더 수행성을 철저히 수행함으로써 통일된 여성의 이미지, 전통적이고 전형화된 여성성을 표현한다.
원전의 애들러가 홈즈를 속이기 위해 남성을 흉내내고 여성에게 기대대는 유혹자의 젠더 수행성을 거부했다면, 드라마의 애들러는 그와 반대로 유혹자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수행한다. 원전의 애들러가 남성을 흉내내고 남성의 젠더 퍼포먼스를 사용하지만 그럼에도 애들러는 여성의 젠더를 지니고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한다. 이는 그가 지닌 육체적 성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며, 자신의 육체와 정신적 성을 여성으로 통일화 한다. 일시적으로 남성의 젠더를 흉내내는 것은 애들러의 젠더 정체성에 어떠한 영향도, 위협도 주지 않는다. 반면 드라마의 애들러는 자신의 여성성을 확인받기라도 하듯 젠더 수행성을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남성으로 오해받거나, 자신의 여성적 정체성이 위협받는 상황이 전무함에도 그는 자신의 젠더와 성적 정체성이 여성임을 증명하기 위해 여성적 의상과 메이크업을 고수한다.
버틀러는 “성별화된 몸은 젠더와 강제적인 성적 체계가 작용되는 토대인가”(Butler 164)에 대한 의문을 가진다. 또한 “몸 자체가 몸을 성의 표식으로 경계를 짓고 구성하고자 하는 전략적인 관점을 지닌 정치적 권력에 의해 형성되는가”(Butler 164)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버틀러의 질문에 따르면 드라마의 애들러는 젠더 수행성을 따름으로써 몸을 통해 자신의 젠더를 여성으로 규정짓고자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던질 수 있는 의문으로, 드라마의 애들러는 젠더 수행성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여성으로서의 젠더가 보장되지 않는가가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애들러는 드래그의 행동에 가까울 정도로 전형화되고 통일화된 여성의 이미지를 구성한다. 이를 위해 여성 캐릭터가 수행할 수 있는 젠더 수행성을 철저히, 최대한 많이 가져오고 자주 수행한다.
젠더 수행성이 이루어 진다는 것은 두 개의 가설을 제시할 수 있다. 첫 번째로 젠더가 안정적이지 못하거나 그 안정성에 위협을 받는 것, 두 번째로는 수동적 매개로써의 몸, “몸에 외적인 요소로 비유되는 문화적 근원이 각인되어 의미화된 매개체”(Butler 164)로 다루어지는 몸에 따름이다. 버틀러는 몸을 성의 표식으로 경계짓는 현상에 대해 “섹스 / 젠더의 구분과 성의 범주 그 자체는 성별화된 몸의 의미를 획득하는 것 이전에 존재하는 몸을 일반화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Butler 164)이라 주장한다.
그렇다면 드라마 속 애들러의 젠더 수행성은 어떤 의미를 지니며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가? 첫 번째로 제시한 가설인 안정적이지 못한 젠더는 해당되기 어렵다. 드라마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따르면 애들러는 성을 판매하는 직종을 가진 성소수자(양성애자로 추측되는) 여성이다. 제공된 정보와 스토리에서는 여성을 제외한 다른 성적, 젠더적 특성을 찾아볼 수 없다. 첫 번째 가설이 해당되려면, 드라마 속에서 애들러가 여성 외의 젠더나 성적 특성을 지닌 사실이 언급되어야 한다. 예컨대 애들러가 남성적 의상과 행동양식을 따르는 부치 레즈비언의 정체성을 지니거나, 트랜스젠더나 크로스드레서 또는 드래거라는 사실이 존재한다면 애들러가 가지는 여성으로서의 젠더는 안정적이지 못하거나 위협받을 가능성이 있다. 하나 드라마에서 이러한 상황은 부재한다. 애들러는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위협받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여성성을 상품화--성매매--하는 입장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지닌 여성성을 공고히 하고자 젠더 수행성을 철저히 따른다.
여기서 버틀러가 주장한 문화적 근원이 각인된 매개체를 제시할 수 있다. 글의 서문에서 원전이 가지는 문제로 성역할의 문제와 여성 캐릭터의 낮은 비중과 한정적 역할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원전의 애들러는 강렬한 캐릭터성과 존재감, 주체성을 지니며 타자로서의 대상이 아닌 홈즈에 필적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문제는 애들러가 여성인물 중 거의 유일하게 이러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이다. 반면 드라마는 현대적 시점으로 각색을 거치면서 여성 캐릭터가 추가되고 그 비중이 크게 증가한다. 그에 따라 애들러의 캐릭터성인 ‘특성과 영향력을 지니는 유일한 여성 인물’이 흔들리게 된다. 그에 따라 각본가는 애들러의 캐릭터성, 더 나아가 작품 내에 등장하는 여성 인물들의 캐릭터성을 강화하고 차이점을 둘 필요성을 느낀다.
그에 대한 방법으로써 각본가는 사회, 문화 속에서 이상화되고 전형화된 여성의 모습을 애들러와 후퍼에게 담는다. 그 결과 애들러는 지나치게 여성적 요소가 돋보이는 캐릭터가 되고, 문화적 근원 속에서 여성이 가지는 젠더 수행성을 수행하는 인물이 된다. 그렇기에 애들러는 자신의 젠더나 정체성의 위기가 부재함에도 끊임없이 젠더 수행성을 반복하는 행동을 보인다. 자신의 젠더를 확인받을 필요가 없고, 여성임이 확실한 상황에서도 오직 캐릭터성의 차이를 위해 젠더 수행성이 이용된다.
또한 애들러는 여성 캐릭터가 수행할 수 있는 특성과 정체성을 모두 보여준다. 홈즈에게 사랑을 느끼는 이성애적 면모와 동성 파트너와의 성적 긴장감, 사랑에 의해 패배를 겪게 되는 감정적인 여성의 모습을 담는다. 글의 초반부에서, 《셜록》이 SNS를 통한 관객과의 소통을 시도함으로써 홈즈와 왓슨을 실존한 인물처럼 느껴지게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동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 특성과 SNS를 통한 관객 참여 및 소통의 시도에 따른다면 애들러 또한 다른 남성 인물들처럼 실존하는 것처럼 느껴져야 한다. 하지만 애들러의 경우 지나친 젠더 수행성이 이루어지게 되면서 현실성을 상실하고 한계를 지닌다. 대조적 이미지를 지니는 몰리 후퍼가 실존하는 느낌을 지니는 것과 달리, 애들러는 젠더 수행성으로 구성된 극적 인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애들러가 가지는 또 다른 문제는 각색이 애들러의 직업과 상황에만 국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각색을 거치는 과정에서 애들러의 서사도 대폭 수정된다. 홈즈에게 패배를 안겨주고 자신의 남편과 함께 홀연히 사라졌던 원전의 애들러와 달리, 드라마의 애들러는 홈즈에게 패배를 당하고 그에 의해 목숨을 부지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애들러의 등장과 퇴장 장면이 서로 대조되는 외모 이미지로 구현된다.
애들러의 등장 장면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여성적 요소를 강조한 육체 이미지로 나타난다. 그에 따라 애들러가 가지는 사연, 역사, 자아는 잠시 감춰지고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서서히 밝혀지게 된다. 반면 퇴장 장면에서 애들러는 반복적으로 노출을 보여주던 이전 모습과 달리, 차도르로 온 몸을 감싼 채 처형을 기다린다. 이 장면에서 애들러의 젠더 수행성을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홈즈에 의한 구원서사로 이어짐으로써 애들러의 젠더 수행성이 다시 진행된다는 것이다. 외형적으로 이루어지던 젠더 수행성은 멈췄지만 남성과 여성의 관계, 영웅과 피구원자의 서사를 따름으로써 애들러는 전형적 여성 캐릭터에게 기대되는 젠더 수행성이 이루어진다. 더불어 이 과정은 애들러가 홈즈에게 이성적 감정을 느낀 것에서 비롯된다. 애들러가 사랑을 느낌으로써 홈즈에게 패배했고, 그로인해 애들러의 서사는 위기와 구원을 겪게 된다. 애들러에게 닥치는 위기와 구원은 인물이 처하게 되는 운명적 위기가 아닌, 여성이 겪는 감정적 문제와 그에 따른 결과가 된다.
2-2. 몰리 후퍼
각본가는 원전이 가지는 문제인 여성조력자의 부재를 채우기 위해 다양한 여성 인물을 추가한다. 그 중 하나가 오리지널 캐릭터인 몰리 후퍼로, 홈즈의 연구와 추리를 돕는 조력자이자 동시에 홈즈의 인간성을 보여주는 장치로 등장한다. 후퍼의 캐릭터성은 애들러와 대조된다. 남성을 유혹하며 더 나아가 성적 매력을 상품화하는 애들러와 달리, 후퍼는 전형적 성녀이자 순애보적 성향을 지닌 캐릭터로 등장한다. 또한 그의 주된 역할인 조력자의 역할을 수행할 때에 옅은 메이크업과 전문적인 의상을 갖춤으로써 여성 캐릭터에게 기대되는 젠더 수행성을 따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후퍼의 경우 홈즈에게 이성애적 감정을 지닌다는 것에서 문제를 가진다. 후퍼가 가지는 이성애적 감정은 그 감정 자체에 집중되기보다, 홈즈가 지니는 캐릭터성인 무성애자, 반사회성을 드러내는 연출로 작용한다. 홈즈의 냉정한 행동에도 후퍼는 지속적으로 그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고,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자 메이크업과 드레스를 입음으로써 여성적 이미지를 수행한다.
이 장면에서 후퍼는 애들러와 동일한 여성의 이미지와 젠더 수행성을 따른다. 그동안 그가 가져온 이미지인 조력자, 전문가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홈즈에게 연정을 품은 유혹자의 이미지만 남는다. 후퍼의 젠더 수행성은 젠더의 모방적 구조를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그에게 부여된 젠더 수행성과 캐릭터성이 존재하고, 그것이 애들러와 대조되는 이미지를 지님에도 홈즈를 유혹하려는 목적에선 애들러와 동일한 이미지, 젠더 수행성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이성애적 감정으로 인해 후퍼는 조력자로서 온전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후퍼는 조력자이면서도 이성애적 역할로 수행되는 대상이다. 남성 조력자인 레스트라드, 왓슨과 비교한다면 이 점이 두드러진다. 레스트라드와 왓슨은 그들이 가지는 젠더를 증명하기 일은 물론이고 젠더 수행성을 따르는 장면 또한 없다. 더불어 성적으로 소비되거나 홈즈에 의해 도구로 활용되는 장면 또한 부재한다. 이들에게 있어 감정은 홈즈와의 관계에서 별개의 영역으로 다루어진다. 이들이 홈즈에게 호의적 감정을 품는 건 사실이나, 그것으로 인해 홈즈에게 이용되거나 소비되는 상황이 없으며, 더 나아가 그들의 감정이 드라마의 연출적 요소나 스토리의 흐름에 활용되지 않는다.
여성 조력자인 후퍼만이 등장과 스토리의 흐름에 있어 감정이 개입된다. 후퍼가 홈즈를 돕는 목적은 두 남성인물인 왓슨과 레스트라드처럼 홈즈를 향한 호의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후퍼의 감정은 극의 흐름을 원활히 하고 사건을 만드는데에 투입된다. 애들러가 사라진 후 다시 나타나는 장면에서 후퍼의 감정이 사용된다. 애들러가 죽음을 가장한 채 사라지자 홈즈는 실의에 빠지고, 그를 위해 크리스마스 파티를 연 상황에서 후퍼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자 여성적 이미지로 자신을 꾸민 채 등장한다.
이 장면을 통해 홈즈의 무성애적 성향이 표현되고 후퍼를 향해 비아냥대는 언행이 이루어지면서 홈즈의 비인간적 면모와 후퍼의 감정에 극의 중심이 맞춰지는 것처럼 흘러간다. 하나 후퍼가 자신의 호의를 표현하기 위해 준비해온 선물이 사실은 애들러가 보낸 물건--휴대 전화--임이 밝혀지면서 후퍼의 감정은 순식간에 존재감을 상실한다.
〈벨그라비아 스캔들〉 뿐만 아니라, 《셜록》 시즌 내내 후퍼의 감정은 스토리의 진행과 사건을 원활히 생성해내는 요소로서 존재한다. 애들러가 지니는 한계성이 지나친 젠더 수행성이었다면, 후퍼는 그 존재만으로 작품 속 여성 캐릭터의 한계를 느끼게 한다. 후퍼가 가지는 한계는 이하와 같다. 첫 번째로 여성캐릭터는 명확한 목적과 비전이 아닌, 감정을 중심으로 하여 서사가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 점은 애들러의 경우에서도 비슷하게 드러난다. 캐릭터가 가진 상황이나 서사, 과거는 다루어지지않고 현재 그들이 가진 감정이 남성캐릭터와 인물 간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며, 또 이들의 감정이 사건의 발생에 어떤 역할을 하는가로 소비된다. 두 번째로 여성 캐릭터는 완전한 동료, 대상이 아닌 인물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또한 애들러의 문제에서 지적한 바와 같다. 다만 애들러의 경우, 원전과의 차이점이 존재하지만 후퍼는 오리지널 캐릭터이기에 그 한계성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애들러는 원전에서 홈즈의 맞수이자 그에게 패배를 안겨주었다는 사실이 존재하지만, 후퍼는 내내 홈즈에게 이용되며, 조력자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동료로 완전하게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시즌 3의 1화 〈빈 영구차〉에서 밝혀진 것처럼, 후퍼는 홈즈의 죽음을 가장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한다. 후퍼의 도움으로 홈즈는 위기에서 벗어나고 그에게 감사를 표현하지만 그 과정이 레스트라드와 왓슨에게 표하는 방식과 차이를 둔다. 홈즈는 후퍼에게 짤막한 키스를 남긴 후 곧바로 건물을 빠져나온다. 또한 〈벨그라비아 스캔들〉에서 후퍼에게 무례를 범했음을 인정하며 사과하는 장면에서도 키스로서 그에게 미안함을 표현한다. 홈즈와 깊은 관계성을 지닌 왓슨과 비교해본다면 이 방식이 더욱 위화감을 안겨준다. 왓슨을 속이고 그에게 무례를 범했을 때 왓슨이 자신을 이해하게끔 상황을 설명하고 왓슨과의 우정에 의존한다. 그러나 후퍼와의 관계에서는 대가성에 가까운 행위인 키스를 사용하고 그와 감정적 공유와 이해의 과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과정을 통해 후퍼는 완전한 조력자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며, 여성 캐릭터에게 기대되는 젠더 수행성인 감정에 휘둘리는 여성의 이미지를 수행하게 된다. 자신이 홈즈를 돕고자 하는 목적성과 반복적으로 홈즈에게 거부와 상처를 받았음에도 그를 향한 조력을 그치지 않는 것이 모두 감정에서 비롯되고 설명된다. 감정이 이용되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홈즈가 후퍼의 감정을 진정성있게 받아들이고 교류하는 것이 아닌 대가성의 목적으로 스킨십을 한다는 점에서 후퍼는 대상으로 소비된다.
2-3 애들러와 홈즈의 육체
성적 매력과 여성적 요소가 돋보이는 애들러와 달리, 홈즈는 무성애자의 특성을 지닌 캐릭터이자 The virgin, junior 등의 대사를 통해 성적으로 미숙한 상태임을 암시한다. 작중 내내 홈즈와 애들러가 같은 상황을 겪는 모습을 대치하며 이야기를 더욱 극적으로 이끌어 나간다. 하지만 그 연출을 통해 애들러와 홈즈가 수행하는 젠더 수행성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애들러와 홈즈가 같은 상황을 겪는 장면으로 두 사람의 신체가 노출되는 것과 전투 의상을 입는 장면이 존재한다. 이 장면은 비슷한 상황과 같은 신체적 노출이라는 상태를 공유함에도 그 의도와 분위기가 다르다.
애들러의 노출은 유혹적 이미지로 등장한다. 또한 홈즈와의 성적 긴장감이 흐르는 분위기를 자아내기까지 한다. 반면 홈즈의 노출은 갑작스럽게 끌려온 그의 상황을 설명하는 요소이자 희극적 장면의 연출, 수치스러움을 표현하는 요소로 사용된다. 두 인물의 노출 범위와 행동 또한 차이를 둔다. 애들러는 전신을 노출한 상태이며, 남성 인물이 자신의 육체를 보아도 부끄러움이나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다.
카메라 구도 또한 다양한 방향에서 애들러의 육체를 비춘다. 애들러는 오히려 자신의 육체를 감상할 시간을 내어준다. 애들러는 유혹자로 표현되는 여성 캐릭터에게 기대하게 되는 젠더 수행성을 수행한다. 자신이 가진 여성의 육체를 노출하는 것에 더해 유혹자의 제스처를 취한다. 반면 홈즈는 침대 시트로 몸을 감싼 상황이지만 노출된 몸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상황으로 이어지며, 그의 행동이 장소와 어울리지 않음을 지적하는 마이크로프트의 대사로 이어진다.
버틀러는 몸의 표면에 생산된 의미와 정체성의 원천을 주장한다. 여기에 “그 의미가 해석되는 행위, 제스처, 실행은 수행적”(Butler 173)이라고 주장한다. 애들러는 버틀러의 주장처럼 자신이 지닌 여성으로서의 젠더를 몸의 표면에 생산하고 제스처와 행위를 통해 젠더를 수행한다. 그가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젠더 수행성은 노출을 보여주는 장면을 통해 정점을 찌른다.
또한 애들러의 노출은 작품에서 트릭을 제공하는 방법이자 사건 전개에 중요한 요소로 사용된다. 애들러의 노출은 신체 사이즈를 이용해 비밀번호를 설정하고 이를 홈즈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연출로 사용된다. 또한 애들러의 몸은 그의 죽음을 조작하는 장면에서 홈즈를 속이기 위한 트릭으로도 사용된다. 이 장면에서 후퍼의 감정이 다시금 등장한다. 후퍼는 얼굴이 훼손된 시체를 홈즈에게 보여주며 알아보기 힘들거라 걱정하지만, 홈즈는 신체사이즈를 통해 애들러의 시체임을 추측한다. 후퍼는 이를 통해 감정적 동요를 느끼고 홈즈와 애들러 간의 관계에 무언가가 있음을 느낀다.
애들러의 신체 사이즈가 비밀 번호로 활용되는 장면은 여성의 육체를 트릭에 활용하는 의미도 있지만, 더 나아가 애들러가 이상화된 여성성을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드라마에서 언급된 애들러의 신체 사이즈는 32-24-34로, 이상적인 여성의 바디쉐이프로 여겨지는 사이즈이다. 즉, 애들러는 자신의 외모와 역할, 제스처에서 있어 젠더 수행성을 철저히 따르는 인물이며, 자신의 육체가 연출적 요소로 활용되는 장면에서도 이상적 여성의 젠더 역할을 수행하도록 요구된다. 애들러의 신체 사이즈는 단순히 비밀번호, 트릭의 연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애들러가 보여주는 이상적인 여성의 모습, 젠더 수행성과 연관 짓는다면 애들러의 모든 행동과 모습이 여성성의 전형으로 여겨지게 유도한다. 이것이 신체 사이즈를 키 코드로 사용하는 장면에서 애들러의 캐릭터성이 젠더 수행성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배틀 드레스를 입는 장면에서도 홈즈와 애들러의 차이점이 드러난다. 애들러는 신체가 노출된 슬립온을 입고 의상을 고르지만, 셜록은 온몸을 감싸는 코스튬을 번갈아가며 입는 장면을 보여주는 동안 그의 신체는 노출되지 않는다. 여성의 신체 노출은 비교적 자연스럽고, 남성은 옷을 갈아입는 장면에서조차 신체가 노출되지 않는 것을 통해 두 인물이 수행하는 젠더 수행성에 여성과 남성의 소비 방법이 다름을 발견 할 수 있다.
2-4. 퀴어와 이성애
〈벨그라비아 스캔들〉 속 성애적 형태는 애들러의 레즈비언 성관계에서 애들러와 비서의 성적 긴장감이 오가는 장면(배틀 드레스를 입는 장면), 홈즈를 향한 후퍼의 이성애적 감정 표출, 홈즈를 향한 애들러의 이성애적 감정으로 이어진다. 이 구조는 세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첫 번째로 초반의 레즈비언 퀴어는 애들러의 성정체성인 성소수자, 양성애자의 정보를 제공한다. 두 번째로 남성 관객과 팬덤을 위한 욕망적, 판타지적 요소로 여성이 소비되는 것이다. 특히 애들러가 왕실 여성의 성적 취향을 만족시켜주는 초반 장면은 남성으로 하여금 고위층 계급의 여성이 특이 성적취향을 가졌다는 치부적 소재를 제공함으로써, 고위층 계급의 여성이 추락하거나 민망한 상황을 겪는 것에 패티시즘을 느끼는 것을 만족시키게 해준다. 세 번째로 성적으로 미숙한 홈즈에게 남성적 매력을 부여하면서 동시에 영웅적 요소를 제공한다. 후퍼와 애들러가 같은 감정을 지닌 채 홈즈를 대하는 것과, 이 과정에서 후퍼가 홈즈와 애들러의 사이를 오해하는 것에서 홈즈의 남성적 매력이 부각된다.
또한 왓슨과 애들러가 벌이는 대담 장면에서 애들러는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고백하고 동시에 왓슨에게 왓슨과 홈즈에게도 미묘한 성적 긴장감이 있지 않느냐며 농담을 던진다. 일련의 장면을 통해 홈즈는 미성숙한 성적 매력을 지니던 캐릭터에서 두 명의 여성에게 매력을 느끼게 하는 캐릭터로 바뀐다. 또한 그 여성 인물들이 전형적 여성 캐릭터에게 부여되는 성녀와 악녀의 이미지, 이상적 여성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홈즈 캐릭터에게 해석되기 어려운 매력이 존재함을 암시한다.
3. 결론
〈벨그라비아 스캔들〉에 나타난 인물의 젠더 수행성을 분석하면서 작품에 존재하는 고정적 성역할과 캐릭터성을 보았다. 많은 인기를 끈 시즌인 만큼, 셜록 시즌 2는 여성 캐릭터의 소비 문제와 성역할 논란이 있었다. 이 논란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원전과 각색된 작품을 비교하고, 현대로 각색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변화가 이루어졌는지, 차이는 얼마나 존재하는지를 알아보았다.
고전을 현대로 각색하면서 각본가는 시대적 한계인 여성캐릭터의 역할과 분량 문제를 해결하고자 여성 인물을 추가하고 비중을 늘렸다. 그 과정에서 애들러와 후퍼가 큰 역할을 하였고, 스토리의 흐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럼에도 이들 두 사람이 지니는 전통적 여성 캐릭터로 인해, 《셜록》은 또 다른 여성 문제를 가지게 된다. 원전이 애들러를 제외하면 여성을 대상화, 지나가는 인물 정도로 여기는 한계성을 지니지만, 드라마는 여성의 신체를 연출의 도구, 이상화, 젠더 수행성으로 구성된 존재로 활용하는 문제를 가진다.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성 캐릭터는 전형화된 이미지와 역할에서 벗어날 수 없는가? 셜록의 현대적 재해석을 통해 작품 속 여성 캐릭터의 한계성과 소비방식에 대해 연구할 수 있는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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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1) 《셜록》의 여성 인물 소비 방식을 다룬 아티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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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0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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