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중심적 시각으로 서술되는 평가를 독자들은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남성의 시선이라면 이 작품은 충분히 로맨틱하며 아름다운 한 청년의 비극적 삶을 담은 이야기로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여성의 시선으로 본다면 결코 이에 동의할 수 없다.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러니함으로 가득 차 있다. 시대상에 맞지 않는 비독립적인 여성상, 사랑이라 하기엔 이기적인 남성의 모습, 어느 쪽을 택하더라도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존중 받지 못하는 여성. 의도적으로 느껴질 만큼 여성의 모습은 부정적이며, 남성을 타락시키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러한 흐름의 내용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독자는 여성등장인물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가지게 된다. 더구나 작품 중간 중간마다 화자인 닉이 자신의 서술이 진실적임을 호소하는 문장을 통해 이러한 평가는 더욱 확실하게 다가온다. 강의 중 진행되었던 토론에서 겪었던 것처럼, 대부분의 학우들, 특히 남학우들은 개츠비의 로맨틱함, 맹목적인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감탄하였다. 그들의 평가에는 여성이 존재하지 않았다. 개츠비의 이야기였고, 개츠비에 대한 평가였다. 본 작품의 ‘열쇠’라고 할 수 있는 데이지와 머틀은 고작 불쌍하다는 간략한 평뿐이었다. 작품에는 남성의 수만큼이나 여성이 등장한다. 그리고 남성만큼 대사를 내뱉는다. 그들에게 입이 없는 것처럼, 그들에게 어떠한 대사도 없었던 것처럼, 왜 우리는 오로지 개츠비에 관한 이야기만 했던 걸까?
그 비밀은 작품의 구성에 있다. 이 이야기는 남성에 의해 남성화자의 목소리로 남성의 이야기를 자아내고 있다. 과연 독자는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여도 좋은 걸까? 이것에 대한 나의 주장은 ‘아니다.’이다. 그렇기에 닉이라는 화자를 믿을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 역시 ‘아니다’가 된다. 닉이라는 인물만 놓고 본다면 화자로써 충분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독자에게 신뢰성 높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없는 것은 화자로써 닉이 가진 가장 치명적인 약점인 편견과 몸에 배인 관습 때문이다. 닉은 이 두 가지 약점을 피하기 위해 아버지에게서 배운 판단을 유보하는 습관과 남녀 불문하고 최대한 있는 그대로를 묘사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이끌어간다. 타인에 대한 그의 평가는 대체로 냉정하며 비관적인 면이 강한데, 특히나 톰과 울프심을 비롯해 고압적인 자세와 부당한 방법으로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캐릭터들에 대해서는 비아냥대는 듯한 평가를 내리는 모습 또한 볼 수 있다.
이러한 닉의 모습은 여성캐릭터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여기서 한 가지 문제점이 생긴다. 닉이 묘사하는 여성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톰과 울프심을 묘사하는 것과 비슷하게 비관적인 시선에 더 기울어져 있다. 그들을 묘사하는 것을 보면 마치 여성캐릭터들이 울프심과 같은 방법으로 자신의 사리사욕을 챙기기 위해 살인, 범죄마저도 저지른 듯한 평가를 내린다. 데이지의 뺑소니 사건이나 조던의 승부조작 사건을 생각해 본다면 이러한 평가가 정당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비슷한 평가를 받는 남성캐릭터들을 보면 여성들에게 내려지는 평가가 남성에 비해 과하게 내려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등장인물에 대한 닉의 평가는 물질적, 목표적인 부분에서는 비판, 비관적 시선이 강하지만 감정과 욕망, 특히 톰과 데이지의 불륜에 대해서는 어떠한 비판을 남기지 않는다. 그저 자신을 이용하거나 시간을 빼앗는 행위에 대해서 오만하다, 불편하다 정도의 내적 잔소리만을 읊조리며 그들에겐 어떠한 불평도 내뱉지 않고 그저 분위기에 휩쓸리다 어느 순간 자리를 피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다 보니 작품에서 말하는 의의는 물질적, 외적인 요소에 대한 것보다 정신적, 내적인 요소에 치우치게 된다. 이러한 상황으로 혜택을 본 것이 개츠비다. 물질적인 요소로 평가를 내리면 개츠비는 울프심과 비슷하게, 그리고 톰보다 더 비판을 받았어야 할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닉은 자신을 이용하는 개츠비에게 짜증 정도에 불과한 평가를 내리다 마지막엔 그를 옹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동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단지 개츠비에겐 정신적인 요소가 있다는 이유 하나뿐이었다. 그 이유 하나로 개츠비라는 인물의 악행은 상당히 희석된다. 그가 물질적 요소를 쌓기 위해 해온 일들이 묘사 되어있지만 은유적으로 언급되다 마지막에서야 개츠비가 어떤 것들로 부를 쌓았는지를 보여주지만 이미 닉은 개츠비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상황이었고 그러한 내용을 알았음에도 불과하고 닉의 머릿속엔 개츠비를 외면하는 냉정한 타인들에 대한 불만만이 가득했다. 작품 후반의 그는 화자로써의 중립적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채 그저 개츠비의 옹호자이며 개츠비라는 인물의 일대기를 남기는 사관에 불과했다. 앞서 내내 스스로가 이야기해온 중립적이고 판단을 유보하는, 화자의 역할에 걸맞다며 주장해온 모습과는 전혀 맞지 않는 행동을 보인다.
닉의 분노는 자연스럽게 개츠비의 죽음을 초래한 대상인 톰에게 향한다. 줄곧 비관적인 시선으로 톰을 바라본 그이지만 톰을 대할 때는 전혀 티를 내지 않고 속내를 감춰온 것과는 달리 이성을 잃고 자신의 속내를 그대로 들춰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닉의 분노는 데이지에게도 향할 듯 했지만 어째선지 그녀에 대한 언급은 최대한 하지 않으려 하는 모습을 보인다. 마치 비판을 받을 만한 자격조차 되지 않는 듯하다는 것처럼 그저 실망과 포기만이 가득했다. 왜 닉은 데이지에게 분노하지 않는 걸까?
책의 26페이지로 돌아가보면 이미 부정적인 묘사로 데이지의 등장을 알리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데이지가 귓속말을 하는 행동에 대해 추가적인 설명을 덧붙이는 장면에서 그녀가 그러한 행동에 어떠한 목적이 있는 것이라는 험담에 대해 언급을 하는데 이것에서부터 닉은 데이지의 행동 하나하나를 부정적인 면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품이 진행될수록 더욱 직설적으로 돈으로 가득 찬 목소리, 꾸민듯한 목소리 등의 묘사로 데이지의 행동이 작위적이며 의도가 있다는 시선으로 그녀를 평가하고 있으며 반대로 개츠비에 대한 평가는 안타까움, 답답함 정도의 불만만을 토해내는 평가이다. 물질을 추구하는 데이지와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물질을 추구 중인 개츠비, 이 두 사람에 대한 평가를 내림에 있어 닉은 데이지를 좀 더 비관적이며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 점에서 나는 닉을 화자로써 믿을 수가 없다.
톰의 불륜을 알게 되고 개츠비가 인연이 생긴 닉은 개츠비의 부탁을 받아 데이지와의 만남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톰의 불륜을 막지 못함에 대한 죄책감일 수도 있고, 개츠비라는 사람에 대한 호의일 수도 있다. 그러나 둘 중 어느 하나여도 왜 그것에 대한 답이 데이지의 불륜인지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 이것에 대한 이유가 전자라면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 데이지의 의견, 생각에 대해 전혀 궁금해 하지도, 물어보지도 않은 채 그녀를 속였고, 누군가의 욕망을 채우는 것을 도와준 것이다. 닉이 정말로 중립적 스탠스를 유지하는 화자였다면 그녀에게 의견을 듣고 권유했어야 했다. 닉의 행동엔 데이지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이러한 간단한 행동조차도 타인의 의사를 묵살하고 자신의 의지를 우선시하는 사람이 화자로써 누군가를 묘사하고 표현하는 것을 정상적으로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될 수 없다. 그에 대한 예시가 조던이 된다. 한 명의 사람으로써, 아무 이유 없이 조던을 싫어할 수 있다. 더군다나 그녀에 대한 소문을 들은 상태인 만큼 그녀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인 면으로 쏠릴 순 있다. 허나 톰, 울프심, 개츠비 등의 인물들과 비교해보면 억울할 만큼 조던에 대한 평가가 지나치게 비난적이다. 조던에 대한 소문 부분을 빼고 본다면 그녀가 사람 여러 명이라도 죽인 범죄자마냥 묘사되는 점이 가관이다. 마음 속으로는 그렇게나 신랄하게 그녀를 비난하면서 한편으론 자신의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그녀를 이용하는 닉의 모습이 톰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는 톰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닉은 자신이 화자로써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작품의 후반에 톰은 개츠비와 데이지의 불륜을 알게 되고 그들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데이지는 개츠비가 아닌 톰을 택했고 개츠비의 과거에 대한 집착을 부담스러워 한다. 모든 순간에 그들과 함께 했고, 사건의 발화점과도 같은 닉은 데이지의 거부를 눈으로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개츠비를 동정하는 쪽을 택한다. 그렇다고 해서 닉이 줄곧 개츠비를 옹호했던 것은 아니다. 데이지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지적하였고, 데이지와 톰이 음모를 꾸미고 있는 와중에도 혹여 데이지가 폭력을 당하지 않을까 안절부절하던 그를 비아냥댔던 것도 닉이었다. 닉은 자신의 입으로 개츠비가 데이지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고 너무 많은 것을 바란다며 비판했지만 자신 또한 데이지의 의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개츠비의 욕망을 우선시 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듯하다. 웨스트에그, 이방인, 낮은 신분, 전우, 닉과 개츠비 사이의 여러가지 우정의 요소들이 있지만 그보다 더 강하고 어느 누구도 뛰어 넘을 수 없는 것이 존재하기에 닉은 화자로써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채 개츠비를 옹호했다고 본다. 그 요소는 바로 남성이라는 젠더에서 오는 동질감과 유대감이다. 이외의 모든 것을 본다면 닉은 화자로써의 역할에 충실하였고, 충실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이 하나의 요소로 그는 자신의 모든 노력을 한 순간에 무너뜨리게 했다. 이 젠더적 요소 하나로 그의 모든 평가들이 편파적으로 내려졌고 그 결과 남성의 악행에 대한 평가보다 여성의 악행에 대한 평가가 훨씬 더 부정적으로 내려졌다. 과연 이러한 닉의 행동에 대해 독자는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이 책의 제목을 떠올려본다면 그럴 수도 있을지 모른다. 개츠비의, 개츠비에 대한, 개츠비를 위한 책이며 개츠비 한 사람을 위한 사관으로써의 닉이라면 그는 훌륭하게 자신의 역할을 해내었다. 그러나 단지 그것뿐이다. 그는 그것을 넘을 수 없다.
#위대한개츠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