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여성주의적 고찰
(커뮤니티에 작성했던 글을 다듬기 위하여 옮김. 차후 수정될 예정)
위대한 개츠비의 가장 큰 함정이자 큰 특징은 화자인 닉 캐러웨이의 시점을 중심으로 한다는 점이다. 닉은 데이지의 사촌이자 개츠비와 우정을 맺게 되는 인물이며, 그와 함께 평민 부르주아지 계층이 거주하는 지역에 산다. 작품 내내 닉은 상류층을 대변하는 톰 뷰캐넌을 내내 혐오하고 멸시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사촌인 데이지 또한 목소리에 허영과 돈이 담겨있다며 혐오감을 느낀다. 닉을 변호하기 위해 작가가 만들어둔 수많은 요소들이 있지만, 결국 닉은 자신이 가지는 태생적 한계인 성별을 초월하지 못한다.
다수의 독자들, 데이지를 썅년이라 부르고 개츠비에 호감을 갖는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데이지는 줏대가 없고 자신의 의견도 없으며 개츠비를 죽인 나쁜 년이라는 결과에만 도달한다. 데이지가 왜 줏대가 없는지, 왜 의견을 내세울 수 없는지, 왜 개츠비를 죽일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어떠한 과정도, 공감도 존재하지 않는다.
작품의 배경은 미국의 황금기와 로스트제너레이션이 공존하는 1920년이다. 전쟁 이후 넘쳐나는 부와 공허함에 젖어 빈부격차와 사치가 범람하던 시대였으며, 여성인권이 크게 올라갔으나 전통적인 성관념 또한 여전히 자리 잡던 시대였다. 전쟁 후 여성인권 상승의 특징은 징집된 남성들을 대신해 경제활동을 하던 워킹 클래스 여성들에게서 많이 보이는 현상이며, 데이지로 대변되는 상류층 여성에게는 물질적인 것 외에는 이러한 것이 해당되지 않는다. 이들은 직접적인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전통을 따르기 위해 가정에서 소모되는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데이지는 줏대가 없지도, 자신의 의견이 없지도 않다. 현실을 잘 알고 있고, 이미 굴복당한 기억이 있기에 누구보다도 그 현실을 지키기 위해 타협하는 인물이다. 데이지는 딸을 낳은 후 사촌인 닉과 대화하며 딸이 백치로 자랐으면 한다고 말한다. 자신이 여성으로서, 결혼 외교 따위로 소모되어야 할 상류층 여성이자 전쟁에 휩쓸린 여성으로서 자라나게 되면서 겪어야 할 것들을 정통으로 맞았기에, 차라리 피할 수 없다면 인지할 수 없기를 바란다.
데이지는 이미 결혼 전, 개츠비와의 연애를 통해 자신 혼자만의 힘으론 현실과 맞서 싸울 수 없으며, 개츠비 또한 어려운 시기에 연락이 두절되며 버림받았다는 사실에 직면한다. 데이지는 전쟁과 더불어 그저 가정의 재산 정도로 여겨지던 중상류층 계층의 여성이다.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며 톰 뷰캐넌과 결혼한 데이지는 개츠비와의 사랑은 언제가 되었든 깨어질 수밖에 없으며 비현실적임을 알게 된다. 그렇기에 개츠비가 다시 나타나 이혼하라 종용하지만 이미 과거의 개츠비는 자신을 버린 사람이며 현실과 싸울 수 없는 환상적 인물에 불과하단 것을 알기에 이혼이 아닌 톰과의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걸 선택한다. 톰과 결혼한 데이지에게 개츠비는 현실을 망가뜨리고 위협하는 과거의 환상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기에 바람을 핀 톰에게 복수하는 일개 수단이자 과거의 추억에 젖는 대상으로써 그를 이용한 것이다.
개츠비는 선하기만 한 인물이 아니며, 톰 또한 악하기만 한 인물이 아니다. 둘은 대조되는 인물이 아닌, 동전의 양면이다. 개츠비와 톰은 같은 행동으로 데이지를 대한다. 톰은 폭력성, 억압, 무시 등으로 데이지를 대하고 개츠비는 의견 강요, 강압으로 데이지를 대한다. 이 둘의 행동은 언동이 젠틀하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이지 어투, 행동, 분위기를 빼고 대사만 읽는다면 누구의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다수의 독자들이 이러한 개츠비의 행동을 로맨스 따위로 여겼지만, 개츠비의 행동은 언어적 데이트 폭력의 양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데이지가 여러 번 곤란하다는 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이혼하라고 강요하며, 남편인 톰에게까지 협박에 가까운 어휘로 종용한다. 데이지는 이들 사이에서 서브알턴의 위치에 놓이게 되며, 줏대 없는 것이 아닌 자신의 의사를 빼앗긴 상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