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집 앞 마트에서 장을 봤다.팽이버섯, 소시지, 가락국수 면, 알배추, 파인애플 통조림,,,,
육아에 지친 나에게 계획적인 장보기란 계획적인 집안일 만큼이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가끔은 종이에 살 것을 적어오기도 하지만 언제나 그보다 많은 것들을 사게 된다. 말하자면 집앞 마트에 간다는 건 '식재료를 구하러 간다'기보단 '답답한데 마실이라도 나갈까?'의 의미에 가깝다. 마실 치곤 늘 돈이드는 게 문제지만.
한 바퀴 돌았을 뿐인데 이미 장바구니는 총천연색이다. 과자 3종 젤리 2종을 이미 카트에 집어넣은 막내가 아직도 과자 코너 앞에 서있었다. 사고 싶은 것들 앞에 흥분한 귀여운 볼을 보니 귀여워서 간질간질하다.
“너 오늘 과자를 너무 많이 샀어. 오늘 살 수 있는 과자는 딱 세 개까지야. 그거 살 거면 여기서 하나 빼야 해”
잔인하고 엄한 엄마를 원망스럽게 보던 막내는 한참 고민하다 쿠크다스를 놓고 참크래커를 집는다. 쿠크다스건 참크래커건 가져오면 4개가 되는데. 이렇게 슬쩍 넘기려고 하면 내가 또 넘어가주지. 귀여우니까... 설마 셋을 아직 모르는 건 아니겠지 불안하지만 설마.
그때 달려온 오빠 이성이 “내가 골라줄게!” 하더니 뒤적뒤적 과자 상자들을 헤집는다. 꼼꼼한 이 녀석은 뭐든지 유통기한을 보고 사야지 아무거나 집어넣으면 안된다고 덧붙였다.
두 아이가 시리얼 코너에 서 있었다. 코코볼 중에 마시멜로 든 걸 먹고 싶은데 없다면서 저 안쪽 상자까지 다 꺼내어 보는 중이었다.
“여기 없으면 면 없는 거야, 있는 것 중에서 골라”
이성이는 그래도 직원한테 물어보자고 했다. 물어보나 마나라니까?
“엄마. 아무리 그래도 안 물어봐서 못 찾는 거면 우리가 손해잖아. 물어보나 마나 그게 있을 확률은 똑같지만 물어보지 않으면 살 수 있는 가능성이 0 이 되는 거거든?”하며 저기요! 하고 직원을 찾아갔다.
아이들과 있다보면 '와 이런 말은 적어놔야 해', 싶은 때가 많다.내가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귀찮아서, 괜히 불편하게 하기 싫어서 삼키는 많은 말들을 아이들은 툭툭 잘도 내뱉는다. 자신과 남들의 수고로움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다. 세상의 중심이 나라는 것을 확신하지 않고서야 저런 말과 행동이 나올 리 없다. 그래서 아이들이 경이롭다. 물론 그래서 딱 그만큼 부끄러울 때도 있지만 어떠랴 부끄러움은 엄마의 몫인걸!
직원에게 확인하고 찾는 게 없음을 확인한 이성이는 아쉬워하는 기색 없이 다시 고르기에 열중한다. 마시멜로 없는 코코볼 중에서 유통기한 제일 긴 것을 골라 바구니에 넣는 것이다.
“어 근데 여기 붙은 건 뭐에요?”
“이건 유통기한 짧은 제품에 붙는 서비스야. 안 그러면 사람들이 다 유통기한 긴 것만 사니까”
“아 그럼 이걸로 바꿔야지”
“유통기한이 짧은데도??”
“3월까진 다 먹을 수 있으니까 이게 이익이지!”
오호 유통기한보다 보너스가 우선이란 말이지.
감탄해서 멍한 내 얼굴을 보고 이성이가 씨익 웃으며 한마디를 기어이 보탠다.
“엄마가 장보기를 똑똑하게 못하는 건 아마 수학을 싫어해서 그런 거 같아.
간장도 이거 봐봐, 930 미리리터짜리랑 2리터짜리를 비교하면 큰 게 더 싼데도 작은 걸 사면 손해인데 몰랐어?"
합리적인데다 꼼꼼하고 알뜰한 아들을 낳았다는 자부심에 부풀었던 기분이 빠르게 쪼그라든다. 몰랐냐고 물었으니 대답해주지. "얼른 가자 엄마 커피 고프다" 오늘이 마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