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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 Aug 02. 2022

별일이긴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것들이 있다. 3.11 동일본대지진 때의 기록

아버지가 이런 것을 찾았다며 가족 단톡방에 웬 긴 글을 하나 올려주셨다. 

뭔가 했더니 십여 년 전 내가 일본에서 썼던 기록이었다.





2시 56분 내게 한 전화가 안 되어서 걱정한 뒤 조셉이 여기저기 전화를 하려고 온갖 사람들에게 누르며 애쓴 결과 3시 25분 최초 음성 통화 후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의 기록.



막다른 골목을 여덟 번 갔고, 10킬로가 넘는 거리를 사람들과 함께 걸었다. 

도착은 8시 이후.


아래는 기억나는 것과 휴대폰에 남은 기록을 보고 5시 40분 쯤에 적은 것들이다.


이케부쿠로 BIG CAMERA 본점에서 휴대폰에 끼워 쓸 메모리 카드를 사 1층 입구 쪽으로 나오는 중이었다.

2:51분, 몸이 느낄 수 있는 흔들림. 한 3도 정도이지 않았을까?

약 10초 간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흔들리다 말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고 나도 그랬고.

10초 넘도록 지나도록 진동이 계속되고, 갈수록 진동이 심해지는 느낌이 듦.

주변에서 “これ長いね”, “なげーな”, 좀 이상하다는 느낌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 이후부터 확연하게 진동이 심해지기 시작. 머리 위 광고 패널이 흔들리고 물건이 떨어지기 시작함.

“やばくない?”, ”怖い” 점점 불안해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진동이 멈추지 않자 직원들이 순식간에 손님들을 유도해 밖으로 대피시킴. 당황하거나 서두르지 않고 유도대로 이동.

나온 뒤로도 약 30~40초간 큰 진동과 작은 진동이 반복.

버스 및 모든 승용교통 운임이 잠시 정지.

이케부 교차로 횡단보도에 사람들이 모여 경과를 기다림.

자잘한 진동이 끊이지 않음. 자주 생기고, 금방 멎음.

2시 54분 쯤 어머니에게 상황이 이상해서 우선 뛰쳐나왔다고 통화. 그쯤 완전히 진동이 멈춘 듯.

가장 가까이 있던 건물이 18층짜리 건물이었는데 물결처럼 출렁이고 있었다.

직원들과 주변 가게들이 침착하게 손님들을 안내, 사람들도 별 말 없이 따름. 불안해하는 목소리가 많이 들렸는데 비명을 지르거나 뛰쳐나가는 사람들은 없음.

2시 50분대부터 4시 반까지 하늘이 어둑하고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하늘에 새들이 자꾸 떼지어 날아다닌다.

3시 쯤 이케부쿠로 역 남쪽 출구 부근으로 이동.

여진 상태를 살피기 위해 일부 보행자 및 대중교통 전면 정지.

이때 쯤 속보로 상황 확인. 그때는 속보 약 5도强(5.8)의 지진이라 함. 소프트뱅크 시스템이 다운되어 전화통화를 할 수 없다고 함.

3시 10~15분 사이 건물과 높은 곳 물건이 소리나게 흔들릴 정도의 2차 진동 재발생. 2시 50분 쯤 겪었던 것보다 훨씬 강하고 이때는 비명소리도 들림.

왔던 길로 돌아나와 동쪽 출구로. 일부 구역에 비상 경계선이 쳐짐. 가까운 유니클로에서 두꺼운 옷과 가방을 나누어주고 있는 것을 봄.


간판이 뒤틀린 돈키호테와 건물 밖으로 쏟아져나온 사람들.

동쪽 출구 앞 돈키호테 간판이 휘어져 떨어져나감. 선샤인시티 쪽은 교통 통제로 갈 수 없음.

4시 쯤 정부대책본부가 섰다는 소식 들음.

JR 히가시니혼 전선全線 노선 재개를 위해 준비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확한 개시 시각은 미정. 지상 대중교통 재운임 준비.

5시 전 3층 이상의 건물은 비상폐점. 5시 이후로는 7할 정도 폐점.


JR 야마노테 선 메지로 역에서 히가시니혼 전면운행 중지 공지를 확인.

5시 10~15분 일부 대중교통 재개. 재개라는데 다니는 버스가 안 보임.

그때부터 집까지 도보. 8시 넘어 나카노의 집에 도착.

집 안에 떨어진 물건은 세제 정도. 그릇은 멀쩡했다.

잠이 깰 정도의 진동이 밤새도록 반복되고(3~4 안팎) TV에서 경보음이 울려 거의 잠을 설침.

인터넷도 전화도 불통.


그 때는 아마 내 생에 처음으로 재난이라는 것을 체감한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나 태어나고 산 곳은 내륙인데다 큰 비도, 큰 눈도 없고 이래저래 자연재해가 없기로 이름난 곳이라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천재의 변을 직접 겪어본 적이 없었다. 

개강이 한 달 미루어졌고, 그 한 달 동안 제대로 잠을 잔 날이 없었다. 낮밤을 가리지 않고 크고 작은 여진이 계속되었고, 지진경보가 울릴 때마다 가슴이 뛰었다. 


물과 보존식을 사러 갔다가 기가 막혀서 찍어놓았던 마트 풍경.


대형마트의 먹을 것은 진작에 다 털렸더랬다. 그나마 신라면은 꽤 많이 남아있었던 게 정말로 웃지 못할 일. 조용해도 도란도란하니 사람들이 자주 오가던 동네는 정말로 사람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원자력발전소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듣지 못하고 있었는데, 한 4월 말 경부터 TV에서 관련된 이야기를 종종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알고 지내던 유학생 선배들 중 일부는 귀국을 결심했고, 학위 심사가 얼마 남지 않거나 하여 학업을 계속하려는 선배들은 남겠다고 했다. 부모님은 내게 선택을 맡기겠다고 했다.

지금 그만두면 한국에서는 다시 수학능력시험을 쳐야 한다. (이수 학점이 모자라기 때문에 편입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이수 학점을 채우기 위해 남아있기엔…….


고민은 사흘 쯤 했다.




있지도 않은데 있는 것

한국으로 돌아오는 표는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자필로 쓴 자퇴신청서를 내고 휴대전화와 집 계약을 해지하고, 짐을 싸고……. 보름 동안 무슨 정신으로 지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급하게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오면서 난생 처음으로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보았다. ‘집에 간다.’는 안도감 덕분인지 좌석에 등을 대고 비행기가 일본 땅을 완전히 뜨는 순간부터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기절하듯이 잠을 잤다. 

그래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비즈니스 클래스에 대한 기억은, 자는 동안 누군가 담요를 덮어준 희미한 기억이 전부다. 


귀국하고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했고(엘리베이터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진동 때문에 불안감이 심했다.), 집안에서 별안간 진동이 오는 듯한 환상을 느꼈다. 

아파트가 흔들리는 것 같은 착각 때문에 새벽에 네다섯 번씩 깨는 일은 그해 바로 수학능력시험을 치는 날까지 계속됐다.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간혹 근처 오피스에서 큰 짐을 옮기거나, 자취방 위층에서 누군가가 발을 울리면 불안감을 느낀다. 책상을 끌다가 드르륵 바닥이 울리면 섬뜩해진다. 불규칙적으로 흔들리는 어두운 공간에서 사람들이 불안감에 떠는 장면이 나오는 작품은 영화도, 소설도 볼 수 없다. 


이제는 대체로 괜찮지만, 이따금씩 그 불안감이 되살아날 때가 있다.

어쩌다 그날 이야기를 하게 되면 “제가 있는 곳은 별일 없었어요.” 한다. 

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도 새삼, 별일이긴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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