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소통
인물
최고나 (여, 45세) 이신고의 조카
김세지 (여, 65세) 고나의 외숙모
박희지 (여, 28세) 콜센터의 동기
고객 1 (여, 40세) 음성통화
이수호 (남, 34세) 김세지의 아들
이신고 (남, 67세) 김세지의 남편
최선수 (남, 50세) 신경 정신과 의사
사랑이 (수컷, 2세) 웰시코기
제1막
제1장
공간
콜센터 사무실
고나, 영양식품 교육장 책상에 앉아서 머리를 숙이고 있다. 옆 사무실은 웅성대며 각자의 자리에서 컴퓨터를 켜고 있다. 교육의 과로로 밤잠을 설치다가 일어난 고나의 짧은 컷의 머리카락은 삐죽삐죽 곤두서 있다. 그리고 립스틱을 재빠르고 둥글게 입술에다 오렌지색으로 뭉텅하게 바른다. 잠시 멈추고 커피 알갱이를 종이컵에 왕창 쏟아붓고는 뜨거운 물을 가득 채운다. 40대지만 30대처럼 보이는 동안의 얼굴엔 굵고 검은 테의 안경을 쓰고 있다. 그녀는 커피를 마시며 그동안 메모해 온 일지를 한 장씩 한 장씩 넘겨 본다. 그때 희지가 교육장으로 들어온다.
고나 좋은 아침!
희지 안녕하세요. 우산도 없이 걸어오는데 소나기가 퍼붓네요.
고나 (안쓰러운 표정으로) 우선 이 손수건으로 머리와 얼굴 좀 닦아. 날씨도 쌀쌀한데 감기 조심하고.
희지 고마워요. 언니.
고나 (긴장된 눈빛으로) 어제 카톡으로 보내온 우수 콜 들어 봤어? 원콜 오케이 계약 말이야.
희지 아-, 네-. 어제 그 원콜 계약 건요. 고객이 반론을 제기하는 순간 등골이 오싹한데도 잘 이끌어 갔죠. 선배들처럼 우리도 잘할 수 있을지 걱정돼요. 지금 당장은 앞이 안 보이니깐 불안한 거 있죠.
고나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지! 누구든 마찬가지 아닐까.
이런 상황을 앞두고 우리는 시간을 투자해야잖아.
작은 물방울이 바윗돌을 쪼갠다는 말 들어봤어?
그들은 교육장 밖으로 나간다.
긴 책상이 가로로 길쭉하게 놓여있다. 그 위에는 헤드셋과 전화기 두 대와 스크립트가 가지런히 펼쳐져 있다.
고나는 영양식품 설계사 역할을 맡고 희지는 고객이 되어서 연습한다. 고나는 희지에게 전화를 건다.
따르릉 전화벨이 울린다.
희지 여보세요?
고나 안녕하세요.
희지 고객님 되시죠. 최근 출시된 상품으로 해피 바이러스를 안내해 드리고자 전화를 드렸어요.
희지 해피 바이러스요? 그게 뭔데요.
고나 하루에 단 한 알만 드셔보세요.
피로로 축 처지거나 짜증이 심하게 올라올 때, 몸에서 갑작스러운 열이 발생할 때,
스트레스로 어디론 가 뛰쳐나가고 싶을 때, 호르몬을 조절해 주거든요. 우울하실 때 있잖아요.
그런데 이 한 알을 하루에 매일 한 번만 드셔보세요.
온 세상이 환해지면서 마음도 밝아지면서 세상이 달라 보여요.
희지 아, 예-
고나 정말 건강에 좋은 상품이거든요.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시고 바로 주문하셔요.
희지 아, 근데 저는 피로를 회복하는 비타민제를 복용하고 있거든요.
고나 아, 그렇지요. 요즘 사람들은 기본으로 그렇게 드시잖아요.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거죠.
좀 더 보완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희지 그럼 해피 바이러스 먹고 좋아진 사례가 있으면 말해 주실래요?
고나 (잠시 머뭇거리며) 아, 그건 아, 예- 아 그건.
갑자기 전화기가 ‘뚜-뚜-뚜’라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희지 고나 언니. 괜찮아요?
고나 (말을 더듬으며) 아—니. 지금 정신이 멍해. 고객이 만약 뭐라고 묻잖아.
그럼,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 식은땀만 나고.
희지 언니, 이건 실전을 위한 단지 연습일 뿐이에요.
우리가 이렇게 하면서 내가 부족한 부분이 뭐가 있는지를 파악하고 다듬어 가는 거잖아요.
고나 (한숨 쉬며) 복잡해. 난 좀 쉬고 싶어.
(고나, 희지 퇴장)
제2막
제1장
창 너머 서쪽으로 일곱 무지개가 뜬다.
무대엔 문이 서 있다. 문 안쪽으로는 소파가 있고 다른 쪽에는 식탁이 놓여있다.
고나 외숙모인 세지가 소파에 앉아서 문을 향해 얼굴을 돌린다.
남향으로 세지 방에는 침대와 화장대가 보인다.
고나 (현관문을 열며) 외숙모! 저 왔어요.
세지 (화가 난 듯 양팔을 접고) 뭐야. 왜. 이렇게 늦게 다녀.
고나 (눈치챈 듯) 최근에 얻은 직업이라서 바로 칼퇴근을 못하겠더라고요.
조금 익숙해지면 일찍 다니도록 할게요. 어머, 벌써 저녁 일곱 시네요.
외숙모, 배가 엄청 고프시죠? 제가 얼른 저녁 식사 준비할게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세지 (못마땅하듯) 네가 하는 꼴들이 다 그렇지 뭐. 제대로 하는 게 있어야지. 오늘 얼마 벌었어?
고나 (힘없는 목소리로) 아--직, 빵원요.
세지 (코웃음을 치며) 고나. 네가 우리 집에 입양되어 온 이후로 집구석이 제대로 안 돌아간다.
그건 알고 있지. 오늘 당장 밥하고 화장실 청소도 하고 이불 세탁도 해 둬라.
고나 (똑바른 목소리로) 삼촌이랑 외숙모에게는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저의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후 그때는 제가 세 살이었죠.
아는 친척이라고는 단지 외삼촌밖에 없었잖아요.
외숙모가 받아주지 않았으면 저는 아마도 고아원에 버려졌겠죠.
세나 (한쪽 눈을 추켜올리며) 얘가 왜 이리 말이 많아?
외삼촌도 집을 비우고 코빼기도 안 보이고 소식도 없고. 집구석이 개판이잖아.
내가 너를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 줬는데 양심이 있다면 네가 나에게 이 정도를 해도 부족해.
고나는 말없이 주방으로 건너간다. 한쪽 방에는 세지 화장대가 보인다. 그 위에는 신경안정제 약이 올려져 있고 화장대 거울은 날카로운 것으로 긁혀 있다.
고나 (무표정으로) 우선 저녁 식사부터 준비한 후 방청소와 이불 세탁해 둘게요.
세나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너는 외삼촌이 요즘 왜 집에 안 들어오는지 알고 있지.
외삼촌이랑 서로 연락하면서 나만 모르게 빼뒀지?
고나 (가슴을 치며) 외삼촌과 조카인 저는 신뢰하는 사이예요.
어떻게 조카를 의심할 수가 있어요. 외숙모는 제가 눈에 가시는 아니라는 걸 알아요.
외숙모 제가 밥 짓는 동안 잠깐 좀 주무세요. 그럼, 마음이 편안해질 거예요.
세지는 고나가 세 살 때 양녀로 데리고 왔다. 세지 남편의 끈질긴 부탁으로 받아들여졌다. 세지는 외동아들 수호가 있다. 이신고는 아들 수호보다 양녀인 세지를 더 좋아했다. 무척 순하고 예뻤다. 특히 큰 눈동자는 맑았다. 세지는 이것을 바라보면서 질투가 쌓여갔다. 고나에게서 남편의 사랑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며 앙심의 칼을 품고 살아갔다. 그런데 어느 날 집 나간 후 소식이 없었던 세지 남편 이신고가 한탄강에서 투신자살했다고 경찰들이 집으로 찾아왔다. 원인불명의 사건으로 시체도 부검해 보았지만 아무런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죽은 남편을 본 세지는 정신적 충격을 받고 신경과에서 신경안정제 약을 복용 중이었다. 그날 이후 세지는 고나가 직장에서 생활하는 동안 혼자서 벽만을 바라보며 지낸다. 세지는 밤에는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죽은 남편의 혼령이 세지의 목을 졸랐고 잠들려고 하면 할수록 온몸은 차갑게 식어있었다. 새벽 비명의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그때는 새벽 1시쯤이었다. 고나는 외숙모의 몸을 크게 흔들어서 깨웠다.
고나 (방백) 외숙모가 한 달째 이승과 저승을 오가고 있어.
돌아가신 외삼촌은 과연 세지 숙모를 사랑했을까?
늘 각방을 쓰고 대화도 없이 살아온 세월을 두고 그들은 과연 부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숙모는 의부증이 너무 심해.
사실 외삼촌은 인물이 뛰어나고 여자들에게 인기가 무척 좋았던 것은 사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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