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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막 봄꽃 축제

3막 1장

by 김은정

<봄꽃 축제>


해설: 바람과 들꽃이 사는 곳은 봄꽃 마을이었다. 이 마을은 기나긴 겨울을 무사히 보낸 것에 감사하며 해마다 4월이면 봄꽃 축제를 열었다. 봄이 되면 이곳은 정말 희귀한 야생화와 직접 재배한 꽃들이 만발하여 향기가 온 마을을 뒤덮고 하였다. 축제가 열릴 때면 먼 외국에서도 찾아온 이들로 마을이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분주하였다. 그러나 이 축제에 참가하려면 한 쌍을 이루어야만 입장할 수 있었다. 바람은 풀잎을 잊어본 적이 없었다.


들꽃: 바람님, 다음 달이면 저희 마을에서 봄꽃 축제가 열려요.

바람: 제가 이 마을에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축제군요.

들꽃: 바람님, 봄꽃 축제에서 저의 짝이 되어 주세요.

바람: 풀잎, 오! 내 사랑 그대는 아직 살아있쇼? (풀잎, 축제가 지나면 기나긴 망각의 강도 녹아서 뗏목을 타고 그대를 만나러 갈 수 있을 거요. 그때까지 죽지 말고 살아 있어야 하오.)

들꽃: 바람님.

바람: 그래요. 그런데 우리의 축제 의상은?

들꽃: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예복을 만들게요. 제 바느질 솜씨는 마을에서도 알아주거든요.

바람: 봄꽃 축제가 기다려지는군요.


해설: 마을에서는 들꽃에게 멋진 남자가 나타나서 기뻐하였다. 그들은 참으로 잘 어울렸다. 빵 가게 주인은 들꽃에게 행운을 가득 담아서 항상 빵을 곁들여서 담아 주었다. 들꽃은 축제 의상을 만들기 위해서 옷감 가게를 찾아갔다. 축제까지는 한 달 정도 남았기에 밤낮으로 분주하게 재봉틀이 돌아가는 소리가 온 마을에 울려 퍼졌다. 이곳 마을의 아녀자들은 집 안에서 꼼짝하지 않았고, 남편들은 오히려 유유자적하게 낮술을 마시면서 친구들과 담화를 나누었다. 밖은 배경 환경을 설치하느라 해가 저문 오후에도 망치질 소리, 톱질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런 반면에 죽음의 그림자는 풀잎을 매 순간 바라보고 있었다.


죽음의 그림자: 사랑하는 풀잎, 내게 입맞춤을 해 주오. 얼음의 마법이 풀리면 난 그대와 영원히 살 수 있소!

풀잎: (잠든 채) 바람님, 그대의 따스함은 어디 갔나요? 나의 심장은 점점 식어가고 차가움으로 젖어드는 것은 내 사랑이 떠나가고 있기 때문인가요. 냉혹 같은 죽음이 자꾸만 제게 밀려들어요. 차가운 이 사랑은 무슨 소리일까? 나의 발가락이 꿈틀거려요.


해설: 바람과 죽음의 그림자의 풀잎에 대한 사랑은 냉전과 열정을 서로 겨주듯 하였다. 끈기 있는 이들의 사랑은 모두 당해낼자가 없었다. 죽음의 그림자는 어찌 보면 나르시시즘에 빠진 것처럼 거울을 들여다보고 자신과 대화하는 것 같았다. 검은 천으로 가려져 있지만, 마른 몸에 늙지 않는 젊음을 지닌 육체, 눈은 아주 부드럽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아주 차가웠다. 그리고 그는 잘생긴 얼굴이었다. 늘 어둠에 가려진 채 우울한 모습이 멋있었다. 그러나 바람은 생기가 넘치는 젊은 혈기고 키가 아주 컸으며 지나친 부드러움으로 얼음도 그 앞에서는 모두 녹아 났다. 그의 부드러운 음성 앞에서 사랑은 비켜 갈 수 없었다.


바람: 따스한 이 봄날, 내 가슴이 왜 이토록 시린 걸까? 그 무엇이 나의 심장을 깨우는 것일까?

풀잎: 바람님, 제 심장은 움직일 수는 없지만, 꿈속에서 그대가 보여요. 어디에 계세요? 제 곁을 결코 떠나지 않는다고 깊은 언약을 맺었던 것을 잊으셨나요? 제가 눈이 멀었나요. 아니면 잠든 건가요. 아무것도 보이지는 않지만 차가운 심장 소리만 들려요. 그대는 누구죠?


해설: 죽음의 그림자는 단 한 번도 잠들지 않고 계속 풀잎의 곁을 지켜왔던 것이었다. 그의 작은 걸음과 말소리가 얼어붙은 풀잎의 심장을 깨우고 있었던 것이다. 같은 시각, 바람의 심장에서 들려오는 풀잎의 음성 또한 바람을 일깨우고 있었다. 바람은 잠시 눈을 감으며 사랑을 추억해 보았다.


바람: 난 이 축제를 끝내고 풀잎을 찾으러 떠나야 하오!

들꽃: 아, 슬프도다! 바람님이 제 곁에 있는 동안 행복했어요. 그런데 만나자마자 이별이라니. (쓰라린 가슴을 안으며)

바람: 그대와의 짧은 인연은 내게도 행복이었지만, 나의 전 존재를 찾아 떠나야 하오.

들꽃: 길고도 얼어붙은 긴 강은 녹았겠죠. 어떻게 건너가실 건가요?

바람: 뗏목을 밤새워서 만들어야겠소. 내 사랑이 부르는 소리가 들려요.


해설: 드디어 봄꽃 축제를 벌였다. 마을의 모든 사람이 갖가지의 의상을 차려입고 한 쌍을 이루며 나타났다. 들꽃은 가슴이 움푹 팬 하얀 드레스 왼쪽 가슴에 붉은 장미를 달았다. 바람은 검은색 슈트 오른쪽 가슴에 백합을 달았다. 그들은 마치 부부가 입장하는 것처럼 보였고 참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제각기 딸기잼, 사과잼, 와플, 모닝 빵, 스파게티, 치즈, 와인, 베이컨 등을 들고 와 마을 축제를 풍성하게 만들었고 악기 연주가들은 아코디언과 바이올린 연주로 흥을 북돋아 주었다. 서로 포크 댄스로 친교의 인사를 나누었다. 이웃 마을 사람들은 바람을 아주 친절히 맞이해 주었고 좋아했다. 남자들은 함께 숙성된 와인으로 축배의 잔을 들었다. 이어서 봄꽃 축제에 한 쌍씩 등장할 때는 바람과 들꽃의 흑백 의상이 유독 눈에 띄었다.


죽음의 그림자: 사랑하는 풀잎이여, 눈을 떠 보오. 바람은 그대를 잊었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오. 그대의 심장을 깨우지 못하는 이 연약함을 인정하오. 어느새 여러 해가 흘렀소. 그대는 아는지. 작은 물방울도 아주 작지만, 지속해서 바위에 떨어지면 큰 바위도 쪼갤 수 있다는 것을...... 난 풀잎 그대를 놓아줄 수 없소. 바람이 그대와 나를 결코 갈라놓을 수는 없을 것이오!


해설: 죽음의 그림자가 마법을 풀기 위해서는 풀잎의 눈물이 필요하였다. 어느새 죽음도 풀잎 앞에서는 사랑이 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빛은 조금도 없고 어둠밖에 없는 마법 속에도 빛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이때쯤 바람은 뗏목을 만들 재목들을 찾으러 숲으로 향했다. 바람은 해가 저물 때까지 여러 그루의 나무를 자르고 못질을 하고 긴 시간을 항해할 수 있을지 측정하면서 인생의 마지막 열정을 다하듯 땀을 쏟았다.

들꽃: (간식을 품에 안고서) 뗏목을 만들 재목들은 잘 고르셨나요?

바람: (이마의 땀방울을 닦으며) 거친 물살을 떠올리며 신중하게 작업을 하고 있소.

들꽃: 허기지시죠? 뜨스한 커피와 갓 구운 빵 좀 드셔요.

바람: (기운이 소진한 듯 긴 호흡을 내쉬며) 으음, 달콤한 커피여!


해설: 그들은 잠시 나무 그늘에 앉아서 간식을 먹으며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지난번 봄꽃 축제에 관한 얘기를 나누었다.


들꽃: 바람님은 봄꽃 축제에서 어느 한 쌍이 가장 기억에 남으세요?

바람: 붉은 장미와 백합의 향기가 어우러진 들꽃이라 보오.

들꽃: (붉어져 가는 얼굴을 감추듯) 하늘이 참 맑아요.

바람: 이제 뗏목을 띄워 보려는데, 좀 도와주오.

들꽃: 어머! 아주 작은 뗏목인데 세찬 파도가 밀려오면 부서지지 않겠어요?

바람: 큰 뗏목보다 작은 뗏목이 더 튼튼하오. 항해에는...... 풍향을 알아야 하니, 흰 돛을 가져와 보오.


해설: 바람은 헌 천 조각을 꼬깃꼬깃 모아 들꽃에게 열흘 넘도록 정성을 들여서 재봉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오색 색동으로 꾸며진 돛은 화려했다. 돛을 달자 곧 항해를 하여도 무리가 없어 보였다. 그날은 뗏목 완성의 축하와 이별을 위한 저녁 만찬이 숲속에서 준비되었다. 들꽃의 눈동자에 살며시 고인 눈물이 넘쳐나려고 했다. 해가 저물자 숲속 한가운데는 모닥불이 지펴졌다. 들꽃이 준비해 오 바비큐는 바람의 손으로 지글지글 익혀지고 있었다. 20년산 포도주가 적당히 담긴 유리잔을 보며 바람과 들꽃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바람은 바비큐의 잘 익은 살점을 뜯어서 가지런히 접시에 담아 들꽃에게 건넸다.


바람: 고기가 제법 잘 익었으니 먹어 보오.

들꽃: 바람님도 같이 먹어요. 우리 함께 와인 한 잔 어때요?

바람: (와인잔을 부딪치며 지난날을 잠시 회상한다) 들꽃을 만난 지도 어언 1년이 넘었을까? 혹독한 날씨에 동상에 걸린 나의 몸, 죽지도 못하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난 잠시 세상과 어우르다 떠나려 하오. 떠나려고 해도 떠나고 싶지 않음은 안주함이오. 내 심장의 일부분에 갓 피어난 들꽃은 살아서 숨을 쉴 것이오. 우린 이렇게 벗이 되어 곧 길을 떠나야 하는 슬픔의 눈물을 삼키려 하오.

들꽃: 내 벗이여! 그대를 내 품 안에 두고 길이길이 사랑하며 살고 싶어요. 그러나 보잘것없는 제게는 사치라는 생각이 드네요. 지금의 아픔은 영원한 생명의 길이라 믿으며, 그대를 그리워하며......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한다)


해설: 바람과 들꽃은 영원한 벗의 약속을 기리며 침묵한다. 이들은 이렇게 숲속에서 모닥불의 심지가 꺼져 가는 것도 잊은 채로 잠들었다. 붉은 태양이 떠오르자 이른 새벽이 밝았다. 드디어 바람은 짐을 챙겨서 풀잎을 찾으러 뗏목에 오른다.


들꽃: 내 벗이여! 안녕! 사랑하는 임을 꼭 찾기를 바랄게요.

바람: 내 사랑이여! 그대를 영원토록 기억하리다.


해설: 바람은 녹은 긴 강을 따라 미지의 세계로 닻을 올리며 길을 떠난다. 풀잎은 어디선가 사랑이 움직이는 것일까 하며 심장이 서서히 깨어난다. 죽음의 그림자는 365일 동안 누워서 잠든 적이 없었다. 풀잎을 지키느라 그의 온몸은 더욱더 검게 변했지만, 그의 눈동자만은 항상 푸른색을 유지했다.


죽음의 그림자: 풀잎이여! 그대는 죽었는가, 살았는가? 왜 아무런 말이 없는가? 심장은 쉬는지...... 왜 나를 거부하오?

풀잎: 제가 비록 연약한 풀잎이지만 어찌 사랑의 언약을 한 내 임을 저버릴 수 있으리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임은 항상 그곳에 있지요. 제가 그대에게 눈을 돌이킨다면 주검과 같으니 딴생각은 품지 마세요. 분명히 바람은 저를 찾아올 거예요.

바람: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너는 시간은 처음이자 마지막을 알리는 나의 전부요. 그대가 분명 살아 숨 쉰다면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소.


해설: 바람은 온 힘을 다해 노를 젓는다. 멀리서 희미하게 작은 섬이 보인다. 섬 주위로 수백 마리의 까마귀들이 날아다닌다. 신비의 섬으로 불리는 구름 섬은 어둑한 하늘빛에 짙은 먹구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리고 그름 섬에 들어간 사람은 그 누구도 살아서 돌아온 자가 없었다.


바람: 아! 들꽃이여! 내 사랑아! 그대를 만나러 이 험한 길에 들어섰소. 그대와 나, 운명의 사랑을 어찌 막을 수 있겠소.


해설: 바람은 세찬 파도에 허우적거리며 뗏목을 궁전 같은 섬 모퉁이에 정박한다. 그리고 가파르게 깎인 바위를 타고 성문의 입구를 찾는다. 하늘은 이슬비를 내리니, 앞은 짙은 안개로 바람의 갈 길을 막는다.


죽음의 그림자: 고요한 하늘에서 이슬비가 내린다. 하가운 나의 심장조차 적시는 그 누군가의 발소리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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