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삶
#1 모든 것을 내려놓는 순간
6년간 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일을 했다. 49세에 자격증을 취득 후 앞 만보고 달려온 시간이었다. 정형외과에서 휠체어를 몰면서 이 일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기보다는 무조건적인 삶을 이어갔다. 하지만 하는 일은 요양보호사의 일이 더 많았다.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들의 남. 여를 가리지 않고 기저귀도 수차례 갈아가며 일했다. 쾌쾌한 냄새도 잊고서 말이다. 아파도 아프지 않은 듯 그렇게 나의 손을 잊고 여러 해를 보냈다. 결국 몇 개의 손가락이 휘어진 것을 보고 울컥했다. 이후 난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마음먹었다. 결국 퇴사를 결정했다. 잠시라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나였다.
무엇이 그토록 나를 다람쥐 쳇바퀴처럼 살게 하였는가? 순간 난 사람이라는 것을 잊고 살았다. 그 세월은 기계처럼 잘도 돌아갔다. 산업화의 물질문명 세계에 순종하며 월급을 따박따박 받아가는 아주 착한 사람으로 살아갔다. 풍부한 물질만능의 세계는 나에게 자신감을 안겨주었다. 타인에게 굴하지 않고 가슴을 펴고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가슴은 늘 텅 빈 깡통처럼 요란했다. 열심히 살면 살수록 빈수레는 덜커덩거렸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가 않다. 일상생활이 그렇다. 매일의 밥 한 끼를 채우고 더해서 두 끼를 더 채워야만 정상적인 삶이 되니깐 말이다. 밖에서 일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휴식은 없었다. 시장을 보고 식탁을 꾸며야 했으니깐 말이다. 늘 굶주린 사람처럼 허겁지겁 그렇게 하루를 채워야만 난 잘 살아온 사람으로 생각할 테니깐 말이다. 무엇을 더 해야 하고 무엇을 더 내려놓아야 하는지 잊은 채 그냥 그렇게 사계절은 돌고 돌아갔다.
그러나 이제는 힘이 다했다. 돌고 돌아도 돌아오는 것은 건강의 빨간 신호였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경제생활을 멈춰야 했다. 퇴사 후 6개월이 지났다. 요즘 좁은 공간 속에 남게 된 나. 방 한 칸에 앉아서 두 팔을 고민해 보았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쉬고 싶다. 뭐라도 해야 한다. 쉬고 싶다. 뭐라도 해야 한다. 이렇게 수천번을 반복하다가 결국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쓰게 되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열 개의 손가락이 가고 싶은 대로 나는 걷고 있다. 음악을 들으면서 함께 걸어가고 있다. 이제 매일의 밤을 이렇게 보내고자 한다.
2025년 12월도 이젠 곧 3일 남았다. 12월이면 겨울이다. 눈이 날리고 살갗은 빨갛게 얼어서 털목도리, 털모자, 털장갑을 필수항목으로 몸에 붙이고 다닌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계절은 감각을 잃었다. 어제는 겨울, 내일은 봄, 그저께는 가을, 미세먼지가 뿌연 안개로 보일 정도의 착각도 든다. 날씨도 오락가락하는데 나의 마음도 매일매일 다르다. 오늘은 평안했다가 내일은 불안하고 그저께는 멍하다가 매번 바뀐다. 하지만 이런 순간을 잡아주는 것은 단 하나의 무기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음악이다. 난 대부분 클래식 듣기를 좋아한다. 왜냐하면 감정을 뒤 흔들지 않기 때문이다. 일정하게 흐르고 깔끔하다. 군더더기가 없다.
적막한 기운이 내 주위를 맴돈다. 어둠이 어둡지 않고 온통 밝은 빛으로 나의 몸을 감싸고 있다. 이 순간 들려오는 음악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이다. 라흐마니노프는 러시아 작곡가이다. (1873~1943) 이 작곡가에게도 여러 시련이 있었다. 힘겨움을 딛고 작곡한 'S. Rachmaninoff-Piano Concerto No. 2 in c minor, Op. 18' 무겁게 내리며 장엄한 결심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다가 점점 승화된 선율은 물결처럼 바람 따라 움직인다. 복잡한 선율에도 불구하고 동요되지 않는 피아노 선율은 일체감으로 이끈다. 바이올린과 첼로의 현악기의 소리에 더해 아름다움이 더하며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더한다. 인간의 아름다움은 어디까지인가를 생각하게 하며 마음을 집중하게 한다.
#2 비울수록 쉼을 가질수록
나는 참 이상하다. 퇴직을 하면 생각을 비우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다른 이들도 그럴까? 반전이 일어난다. 머릿속은 어느 순간 자유라고 느껴질 때 폭풍이 일어난다. 한마디로 말하면 수십 개의 서랍이 즐비하게 줄지어있다. 그러면 한 개의 서랍을 살며시 열고는 무엇을 담을까 고민한다. 일상의 계획들이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지나간다. 일단 포스트잇과 라벨을 구매한다. 선명한 칼라로 뚜렷한 그 무언가를 표시하기 위해서 마음과 정신을 다듬는다. 퇴직을 했는데도 요즘은 일을 할 때나 하지 않을 때나 늘 바쁘다.
할 일은 많은데 하지 못한 일들이 더 많다. 두뇌에 맴도는 일정들로 돈을 벌지 않는데도 스트레스가 많다. 나는 80세를 향하는 노모와 같이 살고 있다. 왼쪽 고관절 수술을 하신 지 2년이 넘었다. 그래서 예전만큼 거동이 원활하지 못해서 그 이후로 함께 살고 있는 딸은 집안일을 홀로 해내야 한다. 일을 할 때는 밖의 일과 집안 일로 두 배의 일을 했다. 이제는 한동안 집안일만 신경 쓰면 된다. 혼자 사는 사람과 두 사람 이상이 모여서 살 때는 삶의 경우가 다르다. 나 자신만을 생각하며 나의 편리대로만 살아갈 수없다. 이것은 자유롭지만 이기적인 삶을 이어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늘 무의식에서도 타인을 향해 있어야 하고 신경이 쓰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무언가에 구속되고 시간에 쫓기다 보면 과한 스트레스로 언성이 높아지면서 짜증을 내기도 한다. 숨을 쉴 시간이 없다.
특히 최근에 집안일은 그렇다. 생각해 보면 줄줄이 사탕이다. 눈뜨고 나서 노모 아침식사 챙기고 나면 태양은 중천에 뜬다. 그러면 이어서 점심식사를 준비하기 전에 식료품을 가득히 구매한 후 밥을 하고 반찬은 무얼 할까를 고민한다. 반찬 걱정도 힘겨워 노모와 의견을 교환하면 냉동실에 둔 조기 다섯 마리 굽자고 한다. 사실, 생선을 대낮에 굽고 환풍기 틀고 창문을 열어 두어도 비린내는 엄청나다. 그래도 바삭하게 구운 굴비맛은 일품이다. 노모와 딸은 중간 크기의 조기를 다섯 마리 구워서 한 번에 다 먹었다. 이후 식탁을 닦고 설거지도 한다. 쉴 틈이 없다. 주부가 부엌에 한 번 들어가면 밖을 나오기가 하늘에 별따기다. 난 오늘 마음먹었다. 비울수록 쉼을 가질수록 나는 어떤 사람이 되는가?라고 부엌일을 정리하고 얼른 밖으로 나갔다.
걷고 싶었다. 1킬로미터 정도를. 공기가 신선했다. 겨울이어도 날씨는 따뜻했다. 오랜만에 오리들도 햇빛을 쐬며 풀을 뜯고 있었다. 맛이 있는지 꽥꽥 거리며 열심히 맛나게 식사 중이었다. 반대 편에서는 중백로가 외다리로 고독을 심으며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 오랜만에 산책을 나와서 인지 오리와 중백로는 살이 제법 포동포동 쪄 있었다. 겨울을 나기에 아무래도 먹을 것도 풍성하고 환경이 좋아서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여천인데 인공으로 만들어졌다. 어쩐지 오늘은 물이 맑았다. 개울물처럼 졸졸졸 흐르는 소리도 들렸다. 난 그 물 흐르는 소리에 간지러워서 웃음을 지으며 걸었다. 어디까지 걸어볼까? 어머, 겨우 300미터를 걸은 것 같은데 벌써 다리가 아프다니. 내가 불쌍하게 여겨졌다. 나도 나이가 들어가는가 보는구나. 걷다 보면 20대들은 뛰어다닌다. 10대들은 자전거를 재미나게 타기도 한다. 오후 네시쯤에 걸었는데 이렇게 상쾌하다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난 산책하기 위해서 단지 걷기 위해서 머릿속을 비우고 밖을 나왔다. 먼 산을 보기도 하고 하늘의 구름도 보고 저 먼 곳의 도서관도 보고 주변의 아파트가 새로이 도색한 것도 보고 정말 오랜만의 광경이었다. 내 서랍 속의 포스트잇과 라벨정리를 잠시 멈추고 머릿속을 비웠을 때 이토록 많은 것들이 나에게 스쳐가면서 미소와 즐거움으로 채워졌다. 비울 수 있을 때 쉼을 가지는 훈련이 나에겐 정말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멈춰보라. 오히려 모든 것을 잃을 것 같지만 더 많은 것들이 채워질 테니깐 말이다. 난 오늘 아침에 나의 청각을 홀리게 한 음악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 음악가는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다. 난 베토벤 음악가를 사랑한다. 왜냐하면 소리를 들을 수 없는데도 어쩌면 그토록 아름다운 곡들을 만들 수 있을까 해서 말이다. 그중에서도 들으면 들을수록 매력이 넘치는 곡이 있다. 힘차고 깔끔하고 쉴 틈 없이 피아노 선율이 달려가다가 다시 현악기와 관악기 연주가 들려오는데 협주곡으로 더욱 아름답다. 엄청나게 긴 곡인데 이상하게도 들으면 들을수록 마력처럼 다가온다. 비우고 쉬었다 가고 비우고 쉬었다 가고 이러한 연주곡의 장엄함을 느껴보았으면 한다.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Piano Concerto N0.5 Op.73 'Emperor'(황제)이다.
#3 나는 누구인가
황야의 벌판 모퉁이에 우두커니 서 있는 대리석 위에 죽음은 누워있다.
회색빛의 돌판은 평안했다.
주변은 노란빛을 더한 억새풀이 기울었다.
그늘을 만들지 않아도
냉기가 온몸으로 흐르지만
더욱더 따스한 열기로 착각되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현실이 중요해. 정신을 차려야지. 꿈이란 시간 낭비야.
바람이 채찍질한다.
그러나 평온함은 냉혹한 자리를 떠나 낭만을 꿈꾸고자 시간을 돌린다.
이곳은 여인의 풍만한 가슴이다.
볼록하게 부풀어서 매만지고 싶다.
손이 닿을 듯 다가가면
노랗게 바랜 잡초들이 가시처럼 돋아있다.
찬바람이 매몰찬데 그 가슴은 조용하다.
이름 모를 새들이 묻는다.
춥지 않나요. 왜 아무 대답이 없나요.
무슨 사연인지 그 새에게 이름을 붙였다.
가시나무새라고.
자기가 죽을 줄 알면서도 제일 높은 가시에 가슴을 꽂는다.
그렇게 흘러내리는 피는 대리석 뒤에서 숨을 잃은 가슴에 생명을 더한다.
그 울음의 소리는 천년에 한 번 울리는 신비의 새다.
아름다운 새소리가 울리지 않으면 그 무덤은 결코 열리지 않는다.
가시나무새가 죽지 않으면 꽃이 피지 않듯이 말이다.
나는 누구인가.
붉은 피는 푸르름으로 피어나고
회색 빛의 깃털은 대리석으로 내린다.
지금은 죽음이다.
새 생명을 피우기 위한 또 다른 소리의 잉태를 가진다.
난 어쩌면 시인인가 보다.
오늘 하루를 보내면서 의도 없이 적어 내려간 글인데 '시'가 되어 버렸네요.
시를 감상하며 Bach Air on the G String(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감상해 보아요.
#4 나는 무엇을 찾고 있는가?
2025년 을사년을 보내기 1시간 전이다. 조금만 있으면 2026년 병오년이다. 새해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잠시 모든 것을 멈추고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보려 한다.
1) 정형외과에서
작년 그때 난 나이트 근무였다.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새해에는 잘 지내보자고 인사했다. 시간이 조금씩 흐르더니 몇몇 동료들의 부친상, 모친상으로 일은 두 배로 증가되어 힘겨운 시간이었다. 결국 손가락이 휘어져 퇴사를 선택했다. 묵었던 시간들을 흘러 보내지 않으면 그 물은 썩을 수밖에 없었기에 어둠을 뚫고 나왔다. 그리고 6개월 동안 쉼을 포기하고 일을 찾아 나섰다.
난생처음 겪어본 텔레마케팅의 보험일이었다. 3개월 쉬고 9월부터 11월까지 다녔다. 보험 자격증도 취득했다. 1주일 공부하고. 급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들어오는지도 모른 채 막연하게 그 장소에서 머물렀다. 환경이 좋았기에 꿈으로만 부풀어있었다. 세상이 얼마나 냉혹했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나는 언제쯤 세상을 깨닫게 될까? 돈이 나의 손에 들어오기까지 무슨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혹독하게 겪었다. 모르는 만큼 마냥 즐겁고 행복하고 내가 꿈꾸면 다 되는 줄 착각하며 일했다. 그것도 쉬지 않고 열심히. 그런데 마음과는 다르게 나는 병들어 가고 있었다. 두 번 정도 심하게 아파서 들어 눕게 되자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퇴사하지 못하도록 보험일을 하는 상사들은 사람을 잡아서 함부로 나오기가 쉽지 않았다.
난 성인으로서 맨 정신으로 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짐을 다 싸고 바로 나와 버렸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아무도 나를 잡지 않았다. 난 그들이 정말 고마웠었다. 그리고 2학기 학업도 거의 포기상태였는데 집에 와서 기말시험공부를 했다. 오히려 직업은 간데없고 학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경제가 중요한데 돈을 벌어야 하는데 이것은 내 생각과 내 뜻대로 잘 되지 않았다. 시간은 이렇게 흐르고 흘러 어느새 12월 31일이 되었다. 문예창작학과도 편입해서 들어갔다. 그 무엇의 갈망으로 신춘문예에 도전해 보기 위해서 좀 더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마도 내가 피해 갈 수 없는 운명인지도 모를 일이다. 나의 운명 즉 팔자는 타인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에게 달려있다. 강력하게 이끌리는 그 무언가의 갈망이 말이다. 피할수록 늦어진 것이다. 이제 한 학년인 4학년 과정에 접어든다. 실제 수업 그러니깐 세미나 수업이 많기에 1년은 머물 수밖에 없었다. 학업이란 체제는 끝장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2) 되돌아보기
인간이 무언가를 목표로 세워서 경제적인 돈벌이에 집중하다 보면 타인의 모습은 잘 보일지 몰라도 자신의 고집과 아집은 못 본채 포기가 잘 되지 않는다. 저렇게 하지 말았으면, 그만 멈췄으면, 이렇게 생각을 해도 욕심으로 인한 뒷일을 생각지도 않고 마구 달려간다. 그러다 보면 주변 사람들도 다치게 되는 경우가 의외로 많은 것 같다. 그냥 멈추는 게 쉽지가 않다. 이것은 아마도 나를 건너뛰는 삶이다. 내가 없는 허상의 삶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따지면 나는 돈을 버는 일과는 잘 맞지가 않은 사람인데 그렇다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생활을 포기한다면 그 또한 죽음이지 않은가? 자살인 것이다. 어쨌든 노동력을 활용해서 돋을 벌어야 하는 압박감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엄청나다. 지금은 경제를 손에서 놓은 경우인데 참으로 평안한 상태다. 이런 시간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몰라도 지금 난 글을 쓰면서 머물고 있다.
3) 슬픈 소식
최근에 여동생이 발목의 뼈가 돌아가 버렸다. 큰 부상으로 병원에서 두 달간 입원해 있었다. 슬프고 마음이 아팠다. 본인은 얼마나 힘들까라고 생각되기도 하였다. 보험일 하는 동안 난 여동생을 위해서 일주일에 두 번은 머리를 감겨 주었다. 나름대로 치료의 효과가 있으리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여동생은 신경이 아주 예민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날카로운 반응을 했다. 난 힘들게 시간을 내서 머리를 감겨주러 갔는데도 고마운 말 한마디도 없었고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냉정하게 대했던 것이다. 난 그래도 동생은 환자인데, 이해하려고 했지 왜 저럴까라고 생각은 못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일방적으로 바보가 된 듯한 마음으로 한쪽을 보지 않고 미뤄두었던 감정과 마음은 깊은 상처로 쌓여가고 있었다. 인간은 모든 것을 말로 해야 하나. 가장 기본적으로 가족이라고 하지만 막대하는 것에 기분이 상당히 나빴다. 아무리 다리 부상으로 감정 조절이 안 된다고 하더래도 이해하기가 참 힘들었다. 동생은 언짢은 듯 목소리를 높이고 굳이 화를 낼 만큼의 상황도 아닌데 왜 저러지?라고 너무 슬펐다. 난 말을 못 하고 상처가 깊숙이 박혀버렸다. 어이가 없었다. 가족이라서 상처가 더 깊었다. 세상사람들은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참으로 다른 것 같다. 예수님이 생각하는 것과 세상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너무도 다르다. 그들은 신의 뜻을 이해하지도 못한다.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예수님은 상처가 많았을 것이다. 심장에서 붉은 피가 쏟아지기까지 침묵이다. 하느님만이 아시기 때문이다.라고 마음을 다독이며 한 해를 마무리 짓고자 한다.
4) 2026년 병오년
새해가 밝아오기 3분 전이다.
늘 그렇듯이 제야의 종이 울릴 것이다. 종은 한 해의 시작과 마침에서 친다. 하느님도 알파와 오메가이다. 시작이 있으면 항상 마침이 있기 때문이다.
새해가 어느새 밝았다.
대장막이 열리고 다사다난한 해를 잘 보내고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맞이하길 바란다.
차분한 시간을 바라며 Mozart Clarinet Concerto In A K.622- Op.2 Adagin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을 들어보자.
#5 개미와 베짱이의 삶은 과연 타당한가?
나의 어린 시절 동화에서 들려주는 교훈적 이야기가 있다. 개미와 베짱이의 이야기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 것이다. 누런 종이 교과서에 그려진 이 동화가 문득 떠오른다. 이 곤충들은 사계절을 두고 삶을 어떻게 이어 가는가를 명백히 보여준다. 몸집이 무척 작은 개미는 쉬지 않고 일을 한다. 허리는 잘록하게 들어가고 머리와 가슴으로 지탱하며 실처럼 가는 다리로 열심히 무언가를 나른다. 밭에 떨어진 쌀 한 톨을 등에 메고 힘겹게 곡식 창고로 나르는 모습이 그려진다. 개미는 가만히 있지 못하고 늘 움직여야만 하는 팔자를 타고났을까? 어떻게 지칠 줄도 모르는 걸까? 이들은 쉬어 가기는 할까? 그러면 휴식을 가질 때 무엇을 어떻게 할까? 새해가 되면서 문득 궁금해진다.
개미 연구가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내가 사는 곳엔 개미 보기가 쉽지 않다. 어는 곳이든 누군가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있으면 게으름을 피우는 존재도 늘 따라다닌다. 겨울이 오기 전 개미는 식량을 모으기 위해서 땀을 흘리며 일한다. 추운 겨울은 곡식을 수확할 수 없기 때문이다. 1차 산업은 농업인데 씨를 뿌리고 햇빛, 물, 공기, 인간의 손길이 원활하지 않으면 건강한 음식을 제공받기가 쉽지 않다. 웰빙을 외치는 현대인들에게는 참 중요한 먹거리다.
이때 열심히 일하는 개미와는 달리 베짱이라는 곤충도 있다. 이는 몸집이 길쭉하고 더듬이도 두 가닥으로 길게 하늘을 향해 뻗어있다. 또한 팔, 다리도 무척 길다. 따지고 보면 몸의 구조 특성상 노동할 팔자가 되지 못한다. 중노동을 가 할 경우 손상이 심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풀을 뜯고 벌레를 잡아먹고 살아간다. 자기에게 주어진 자연의 먹이사슬에 충실할 뿐이다. 먹기만 하면 하루하루가 고달프니 베짱이는 음악을 선택한다. 풀잎을 뜯어먹고 일부분은 바이올린 모양을 만들어서 악기로 삼는다. 이리저리 켜보면 바람 따라 빛 따라 나름대로의 선율이 피어난다. 베짱이의 삶은 일반적인 노동과는 다르게 보인다. 악기를 켜서 음악을 들려주는 것도 일이다. 신체의 일부분은 아프고 땀이 흐른다.
개미가 볼 때는 베짱이가 게으른 삶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1차원과 3차원의 일자리다. 그런데 베짱이의 음악은 일로 따져볼 때는 수입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굶는 경우가 많다. 개미는 1차원적인 노동력으로 곡식창고에 저장할 수 있고 눈에 보이고 쉽게 만족감을 가질 수 있다. 개미는 베짱이에게 충고한다. "너 그렇게 일하지 않고 놀기만 하면 겨울은 얼어 죽을 수 있어." 베짱이는 들은 척 만 척한다. 베짱이는 무형의 일을 했다. 개미가 일할 때 무미건조한 시간에 음악을 들려주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주었다. 그런데도 개미는 베짱이에게 매번 잔소리를 한다. 겨울이 되자, 베짱이는 집도 없고 따스한 음식이 없어서 "문 좀 열어 줘. 개미야. 너무 추워. 이러다가 얼어 죽겠어." 그러자 개미는 못 들은 척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밖은 눈이 허리까지 쌓이고 있었다. 눈은 멈추고 햇빛이 창살틈으로 스며들었다. 그러자 개미는 문을 열고 나왔다. 그런데 그 앞에는 베짱이가 얼어 죽어 있었다. 그 이후로 개미는 아름다운 음악을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이웃의 외면으로 결국 그 숲은 삭막하게 죽어갔다. 곡식도 줄어들고 곡물 생산은 더 이상 생겨나지 않았다. 그러자 개미들도 죽어갔다. 인간의 관점으로 얼핏 보기엔 개미가 더 잘하고 베짱이는 잘 못한 거라고 판정하기가 쉬울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우리는 이웃에게 따스한 눈빛으로 문을 열어 본 적이 있는가?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려고 한 적이 있는가를 돌아봐야 함을 이 동화는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Choin- Etude Op. 25 No. 11 "Winter Wind" (쇼팽의 에튀드 Op.25 No. 11 "겨울바람")을 들어보자.
#6 새해 오후 첫 주말 산책
날씨가 쌀쌀하다. 아니 춥다. 움츠린 몸은 겨울바람을 맞으러 가려고 준비를 한다. 외투를 차려입고 목에는 목도리를 둘둘 말고 털장갑도 끼고 운동화를 챙겨서 신었다. 외출 시에 양산은 365일 쓰고 다닌다. 가슴이 트인다. 아파트 내부에 서 있는 앙상한 가지 위에는 새들이 지저귄다. 저 높은 곳에서. 아마도 그들의 아지트이듯이. 새들은 털을 지니고 있어서 추운 줄도 모르는지 마냥 즐겁기만 할까? 하지만 그 속을 누가 알까? 괴로워서 우는 소리가 즐거워서 노래하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으니깐 말이다. 집 앞을 지나 여천 다리를 건너려는데 그 아래로 흐르는 물은 얼어 있었다. 밤새 추위가 심했나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갱년기인지 새벽이 되면 몸의 열은 급상승한다. 요즘 잠자리가 편안하지 않다. 건조증이 심해서다. 날씨가 추우면 좋은 점도 있다. 미세먼지가 덜하고 맑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매우 쌀쌀한 날씨를 좋아한다.
산책로를 따라서 한참을 걸었다. 잘 다듬어진 그 길의 첫걸음부터 상쾌했다. 가까스로 햇살이 비추었다. 문득 감사한 것들이 떠 올랐다. 내가 걸을 수 있는 다리가 있어서 고맙고, 빛을 먹을 수 있어서 고맙고, 하늘을 볼 수 있어서 고맙고,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어서 고맙고 자연을 볼 수 있어서 고마웠다. 지나가는 곳곳의 여천 물은 꽁꽁 얼었는데 제법 두께가 있었다. 주변의 동물들은 보이지가 않았다. 간혹 황금색의 억색풀이 낫에 베어진 흔적으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 언젠가 봄을 기다리는 준비로 보였다.
어린 시절의 추억도 잠시 스쳐갔다. 오랜만에 본 황금색의 지푸라기가 정겨웠다. 1970년에서 80년대쯤 놀이터라고 하면 가을 추수 후 볏짚 쌓아둔 밭이었다. 1미터의 높이였는데 마치 침대처럼 푹신하였다. 그때 동네 아이들은 그곳으로 모인다. 놀이장소로 참 좋았던 것은 숨바꼭질을 하기에 좋았고 볏짚단 위에서 마구 뛰어놀 수 있어서 좋았다. 요즘 말하면 점프놀이의 기구였을까. 그러나 즐겁게 놀다가 지푸라기의 흔적들이 남는 날 머리카락이나 옷에 붙은 날에는 돌아오는 후폭풍이 으스스했다. 아이들은 그것을 생각하기도 싫은지 뛰어노는 것에 정신이 홀려 매 맞을 것은 잊어버린다. 그렇게 여러 번을 빗자루에 맞아 본 적도 있었다. 메뚜기, 여치들도 참 많았다. 문득 그 억새풀의 짤막하게 베어진 흔적은 나를 어린 시절을 추억하도록 떠올려 주었다.
조용히 길을 걸었다. 긴 시간 보이지 않았던 오리가 눈에 띄었다. 새끼들만 한 구석에 모여서 놀고 있었다. 모두 여섯 마리였다. 정말 귀여웠다. 동물의 세계에도 서열이 있었다. 똑같은 크기의 새끼 오리들도 움직일 때는 놀라울 만큼 가지런히 줄을 서서 물살을 가른다. 인간이 모르는 그들만의 세계가 있는 것 같다. 그러다가 한참을 가다 보니 얼음을 지나 다리밑을 지나는데 엄청 추웠다. 빛이 가로막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아래에서 오리가 여기저기 흩어져서 추운 줄도 모르고 둘셋 모여서 놀고 있었다. 그들이 무리 지어 노는 것을 본 나는 정말 흐뭇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놀 줄 아는 것이 사회생활에 얼마나 유익한지를 생각하게 한다. 사실 난 놀 줄 모르는 사람이다. 대게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독서와 음악감상을 즐겨한다. 그렇다고 여러 사람과도 못 지내지는 않는다. 본성상 고독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따스한 방으로 돌아와 블랙커피 한 잔 하며 산책의 그림을 그린다. 이어서 함께 들어 볼
Erik Satie - Gymnopedie No.1 감상해 보자.
#7 내가 본 보름달
대개 새해가 되면 가족 단위로 또는 친구들과 모여서 첫 해를 함께 보러 간다. 붉은 태양이 바다 위로 떠 오르는 모습을 보면 인간 마음은 어떨까? 난 단 한 번도 새해가 떠오르는 것을 본 적은 없다. 이것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참 드문 일이라고 생각될 것이다. 지구인으로 태어나 세상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의 모습일 수도 있겠고 아니면 누군가가 빼내어 주지 않으면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수동적인 자 일수도 있을 것이다.
난 움직이는 장소라고 하면 집 앞 여천길과 주말에 성당 갈 때와 식료품 가게에 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 외는 거의 집에서 머물거나 직장 생활을 위해서 밖에 나간다. 그러나 지금은 퇴직한 지 시일이 조금 흐른 후로 거의 가정에서 지낸다. 하는 일은 식사 세끼를 챙기기 위해서 아등바등한다. 야채도 다듬어야 하고 밑반찬도 마련해야 하고 빨래도 해야 하고 화분에 물도 줘야 하고 방청소도 해야 한다. 집 안에서도 움직임은 정말 많다. 잠시 시간 나면 독서를 하거나 공부를 하기 위해서 책상에 앉아있을 때가 많다. 그러다가 글을 써야 되겠다 싶으면 의무적으로 적을 때도 많다.
이러다가 가끔은 그것도 노력해서 마음을 단단히 굳게 먹고 산책을 갈 때는 숨이 막히고 터지기 직전에 걷기 운동하러 나가기도 한다. 이렇게 되돌아보면 하루 중에 많은 일을 할 것 같지만 그리 많지가 않다. 이런 나에게 규칙이 없다. 생활이 불규칙적으로 흘러간다. 사회생활이라는 이유로 다양한 인간들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것은 참 좋은 일이고 정신적 건강에는 필요한 것이다. 스스로 무언가를 찾아서 규칙을 만들고 홀로 삶을 이어가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것인가를 체험하는 시간들이다.
성실하면서도 게으른 습성은 무엇이라고 정의하기가 힘겹다. 인간은 더불어 살아가면서 자기 계발을 하게 된다. 인간은 정말 그럴까? 혼자서는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생산이 일어나지 않으면 경제가 생겨나지 않는다. 그러면 모든 것은 정체가 된다. 일반적으로 보면 후퇴의 삶이라고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나는 완전하게 홀로의 맛이 어떤지를 겪고 싶다. 그러니깐 내려놓고 싶다. 순간 못 참고 또다시 뛰어나가려는 본성이 생겨난다. 이럴 때 나를 잠시 다독이고 앉힌다.
3일 전의 일이다. 난 오후 5시쯤 식료품 가게에 가려로 여천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그때였다. 얼굴을 하늘로 들어 올리는데 믿기지 않았다. 눈앞에 보름달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코앞이었다. 그 달빛은 노란색이 아니라 완전히 황금색으로 꽉 채워져 있었다. 크기가 무척 컸기에 난 보름달을 보고 있다고 생각되기보다는 황금빛의 태양을 보고 있는 듯했다. 희귀한 장면이었다. 감동에 겨워서 난 보름달에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너무도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달이라고 하면 하늘 높이 떠 있게 마련인데 그날은 어느 아파트 옥상에 걸려 있었다. 매우 가까이 떠 있었기에 난 순간 행운이라며 기뻐 날 뛰었다. 내가 달에게 가지 못하지만 달은 내게로 찾아왔다. 그 장면을 보고 나는 보름달에게 복을 빌었다. 자연의 힘이 이토록 큰 것일까? 사랑스러운 보름달이었다.
<달에게 바치는 노래>
해 저물녘
달빛은 차가운 소녀에게 다가왔다.
누더기 옷을 걸치고 추위에 떨고 있을 때
황금빛 달은
소녀에게 황후의 옷을 입혀주었다.
그 달은 텅 빈 마음을 따스하게 채워주며
변함없는 미소로 위로를 주었다.
짧은 만남은
사랑의 씨앗으로 남았다.
그 순간 소녀
이별이 아쉬워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죽은 자처럼 서 있었다.
사랑하는 황금달이여!
가난한 이 마음에
그대의 사랑을 담아주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기약 없는 세월을 보내고 기다리는
이 가녀린 소녀를 기억해 주오.
이 아름다운 광경을 기억하며 드보르작 "달에게 부치는 노래", 오페라 <<루살카(Rusalka)>> Op. 11 중에서 "Song to the Moon"을 들어보자.
#8 움츠린 어깨를 펴면 무언가가 보이는가?
2026년 병오년의 새해를 한 주 보낼 쯤이다. 어느새 깨끗이 정리되었던 책상은 또다시 여러 분야의 책들과 한 학기 배웠던 강의록 프린터가 산더미처럼 쌓이고 있다. 아직 갈 길은 먼데도 나의 머릿속은 절벽에 서 있는 사람처럼 불안하다. 분명 시작은 있었는데 덧붙여 각오도 단단했는데 또다시 느슨해지며 정체불명처럼 어수선하다. 홀로 계획을 세워서 이끌어 가는 것은 작심삼일이 일수다. 왜 이토록 연약한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
현재 그 누군가로부터 아니면 사회망으로부터의 구속이 없기 때문이다. 지나친 자유는 방종이나 게으름 나태로 기울어지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 아쉬워지는 때이다. 나는 과연 살아갈 날이 며칠 있을까? 최근에 사망소식이 연달아 들려온다. 특히 연예인들은 병으로 세상을 떠나갔다. 빛을 받을 때는 100세까지 살 것처럼 보였고 그들의 인생은 정말 화려한 무대 위에서 온 세상을 얻을 듯 살아갈 것 같았다. 잘생긴 외모와 아름다운 얼굴들을 보면서 부러워한 적이 많았다. 경제적으로나 명예에서나 아쉬움이 없는 사람들 부귀영화도 타고나야 하는지 금수저는 타고나야 하는지를 이제야 생각해 본다. 나는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살아온 적도 없다. 늘 가까스로 아스라이 밥 세끼 먹을 수 있으면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늘그막의 나이에도 부모 품에 안겨 살아가고 있었다. 단지 그게 전부였다. 울타리이고 보호막이었기에. 어느 날 생각지도 못한 시간에 아버지는 임종하셨고 그 주변의 이웃들도 하나둘씩 이 세상과 이별을 하였다.
지금은 어머니랑 단 둘이서 살아간다. 이제는 예전과 다르다. 보호받던 난 오히려 할머니가 되어가는 어머니를 보호해야 하는 사람 울타리가 되어가고 있다. 처음과 끝의 사람은 다르지만 위치는 항상 그 자리이고 존재한다. 너와 내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존재다. 이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이 생각을 접고 난 운동을 하기 위해서 집 앞 놀이터에서 걷고 싶었다. 공간은 무척 좁다. 시소, 그네, 미끄럼 틀이 전부다. 나에게는 소소한 장소이지만 아이들에게는 가슴속의 꿈을 펼치는 곳이다. 작은 축구공으로 놀이도 하고 그네를 밀어주고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며 시소도 함께 탄다. 그러면 소심했던 아이들은 가슴을 펴고 소리도 지르고 여러 가지 모습들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곳은 어린이들의 장소로 안전이 중요시되는 곳이다. 그래서 바닥은 푹신한 쿠션으로 만든 타일을 깔아 둔다. 난 이 쿠션을 밟으면 밟을수록 편안함과 안정감이 느껴져서 흐뭇했다. 그래서 더욱더 힘차게 걸었다. 뛰어도 다치지 않도록 말랑말랑한 바닥이 보호해 주었다. 그동안 움츠렸던 어깨가 펼쳐지고 무언가가 따스하게 나의 몸을 감싸주었다. 따스한 햇빛은 내가 더 열심히 살아야 하고 힘을 낼 수 있게 바쳐주었다.
한참을 돌고 난 후 난 집으로 돌아왔다. 나의 유일한 공간 브런치 작가 서랍장의 키보드를 켰다. 독자들을 얻고 싶었고 만나고 싶었다. 나만이 지니고 있는 글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오늘 오후 늦게 브런치 작가로 오심을 축하드린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무척 기뻐서 뛰었고 소리쳤다. 드디어 문이 열렸다. 나의 어깨에 생기를 북돋아 주신 브런치 심사위원에게 고마웠다. 나와 독자들이 함께 나란히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슈만의 어린이 정경 Op. 15, No.7, "꿈"을 감상해 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