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너밖에 없어

소녀 가장의 무게

by 별난 감자
네이버 웹툰, 플랫 다이어리



엄마, 아빠가 멀쩡히 살아계시고 딸이 넷 있는 집.

누가 봐도 평범한 집이지만 누구나 그렇듯 각자의 사정을 안고 살고 있다.


큰 언니와 작은 언니가 두 살 터울

아들을 낳고자 늦둥이로 낳은 나와 여동생이 한 살 터울로 있다.

큰 언니와 여동생은 14살 차이가 난다.


가난하고 서로 사랑하지 않는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은 '가족'에 회의적이다.

부모들은 제 딴에는 잘 키워보려고 열심히 일도 하고 부모 노릇도 했지만

가난의 굴레, 감정 쓰레기통, 주변과 비교하며 참고 살아온 딸들은 안타깝게도 고마움을 느끼지 못한다.


아빠는 가장으로서의 구실을 하지 못했고 버는 돈은 족족 술과 담배로 날렸다.

음주운전은 취미, 감옥에 가는 건 특기.

그런 아빠를 대신해 엄마는 취미였던 요리를 업으로 삼았는데 불 앞에서의 열악한 환경, 딸 넷을 향한 부담감과 책임감, 스트레스로 병에 걸렸다.

뇌 수술을 3번이나 했는데 지금 멀쩡히 일상생활을 하는 것도 참 신기하다. 그리고 때로는 독하다는 생각을 한다.


아빠의 또 다른 특기는 눈물인데 어찌나 감쪽같은 지 매번 속았다 분노를 느끼기 일쑤였다. 내가 한때 배우를 꿈꿀 정도로 연기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빠의 영향이었을까?

아무튼 아빠는 엄마가 아프다는 핑계로 주변에서 술을 얻어먹으며 우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엄마의 수술비는 작은언니가 그동안 모아둔 돈과 교회의 지원금으로 해결했다. 아빠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아니 않았고) 그 모든 광경을 보고 자라온 네 딸은 결혼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큰 언니는 부모님이 어릴 때 갖게 된 아이인데 첫 아이라서 잘해주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부모님에게 큰 언니는 늘 미안한 딸이다.


작은 언니는 20살 때 독립해서 2년에 한 번 얼굴을 볼까 말까 했는데 엄마가 아픈 뒤로는 엄마의 병원비를 내주며 가족과 가까워졌다.

그래서 부모님에게 작은 언니는 고맙고 기특한 딸이다.


동생은 학원을 다니지 않고도 공부를 곧잘 해서 서울의 대학에 다니고 있다.

살가운 성격은 아니지만 똑똑해서 제 앞가림을 분명히 한다.

그래서 부모님에게 동생은 멋있고 보고 싶은 딸이다.


그럼 나는?





가정형편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수능이 끝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했다.

최저시급보다 높게 주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교통비, 통신비, 생활비까지 19살의 나는 경제적으로 완벽하게 독립했다.


국립대에 진학해 등록금은 전부 장학금으로 해결했고 수능 이후 부모님께 용돈 달라는 소리 한 번 해본 적이 없다.

언니들은 각자의 인생을 살기 바빠서 연락이 닿지 않았다.

아빠는 술과 담배를 즐기고 남은 돈을 집에 가져다줬기에 우리 가족의 생활비는 달에 30만 원 남짓.

세 식구가 살기엔(아빠는 매번 음주운전으로 교도소에 갔다. 내가 고등학생 이후로는 아빠는 그냥 교도소에서 별거하고 있다고 봐도 좋다) 터무니없이 작은 돈이라 아르바이트비의 반은 엄마에게 드렸고 동생에게도 용돈을 주었다.

한 달에 5만 원씩 용돈을 받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나는 필요할 때만 받았으므로 평균을 내보면 6개월에 2만 원 정도?

나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적은 돈이지만 매달 챙겨주려고 노력했다.


가족에게 들이는 돈은 아깝지 않았다.

내가 돈을 벌고 있었고 아르바이트비를 생활비로 다 써버리기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나에게 80만 원은 너무 큰돈이었다.

그래서 가족에게 돈을 주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나에게만 당연한 게 아니었나 보다.







동생이 서울로 대학에 진학하자 우리 가족은 온통 동생 걱정뿐이었다.


어린애가 어떻게 서울에 가서 살 수 있을까

서울은 물가도 비싼데 생활비가 부족하면 어떡하지

고시원 비는 어떡하지..


돈을 아끼기 위해 동생은 서울에 있는 작은 이모집에서 살았다.

방학에는 광주에 내려왔기에 알바를 하게 되면 4개월만 하고 그만두어야 하기에 일을 구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장학금을 받은 돈으로 생활했지만 용돈으로 쓰기엔 부족했다.


엄마는 멀리 있는 동생이 너무 걱정이 되었나 보다.

엄마, 아빠, 작은 아빠, 고모, 이모 모두 동생 얘기뿐이었다.

서울에 사니 생활비가 부족할 거라며 용돈을 보내주어야 한다고 했다.

글쎄, 내 생활비가 부족해도 난 용돈을 받아본 적이 없는데.

동생은 어리니까 알바를 하면 안 된다고 했다.

글쎄, 내가 알기론 동생은 나랑 한 살 차이인데.


모두가 동생에게 관심이 쏠려있을 때 나는 질투가 나진 않았다.

동생이 밉지도 않았다.

나 역시도 서울에서 지내는 동생이 걱정되었고 나를 비롯한 가족들이 동생을 잘 챙겨주었으면 했다.


다만, 왜 다른 가족들 눈에는 내가 보이지 않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어버이날과 엄마의 생일을 챙기는 것은 나뿐이다.

큰 언니는 연락두절, 작은언니는 바쁘고 동생은 서울에 있다.


나는 매년 어버이날에 엄마와 쇼핑을 하고 외식을 한다.

매년 엄마 생일에는 케이크를 주문하고 용돈을 드린다.

(대학생 때 장학금을 받을 때마다 엄마한테 드린 것이 화근이었는지, 50만 원 이하의 용돈은 용돈으로 치지도 않아 최소 80만 원은 준비해야 한다)


혼자 챙기기 때문에 나는 매달 엄마에게 용돈을 주며 매달 엄마에게 드릴 용돈을 저금한다.


"너밖에 없어"


내가 제일 많이 듣는 말이다.

어떻게 보면 감동적인 말인데 또 어떻게 보면 숨이 막힌다.

아이러니하지.


딸은 넷인데 왜 나밖에 없을까?

나밖에 없는데 왜 큰 언니는 미안한 딸, 작은 언니는 고마운 딸, 동생은 보고 싶은 딸, 나는 그냥 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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