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의 애인이 아니야

by 별난 감자

우리 집은 형편이 넉넉지 않아서 가족 모두가 아끼는데 습관이 들어있다.

그중에서도 자식 넷을 홀로 키워야 했던 엄마는 더욱 악착같아야 했다.

그런 엄마가 안쓰러웠고 아르바이트비의 일부를 드리는 것으로 마음을 보탰다.


나도 내 생활비를 스스로 벌어야 했는데 교통비, 통신비, 생활비에 이어

연애를 시작하며 데이트비가 추가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데에 있어서까지 아끼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펑펑 쓰지는 않았다.

하지만 늘어난 나의 생활비 때문에 엄마에게 주는 용돈이 조금 줄었고

엄마 줄어든 돈에 비해 은근슬쩍 푸념을 늘어놓았다.


나는 애써 무시했다.

그러나 애인에게 돈을 쓰느라 엄마 용돈을 줄이는 나쁜 년이 되어있었고

사치 부리고 놀 거 다 노는 불순한 자식이 되어 있었다.

가족도 나 몰라라 하고 남자에, 애인에 빠진

멍청한 년.





아빠가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자 가족들은 은근슬쩍 나에게 가장 노릇을 기대했다.

아니, 사실 작은언니에게 가장 노릇을 기대했는데

그에 따른 권위와 신뢰는 언니에게, 정신적 역할은 나에게 왔다.


친구를 만나거나 애인을 만나 저녁 약속이 있으면 엄마에게 늘 핀잔을 들어야 했다.

이유는 엄마가 밥을 혼자 먹기 때문이다.

쉬는 날에 누워서 핸드폰을 하거나 쉬고 있으면 엄마에게 또 핀잔을 들었다.

엄마가 심심하기 때문이다.


엄마는 나에게 점점 더 많은 것을 기대하더니 급기야 남편의 노릇까지 기대했다.

알바를 갈 때 장난으로 '돈 많이 벌어올게'라고 한 적이 있다.

며칠 후, 알바를 가는데 신발을 신는 내게 엄마가 말했다.


"여보 돈 많이 벌어와요"


소름 끼쳤다.

난 엄마의 애인이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나만의 공간을 가지길 원했다.

타고나기를 생각도 많고 비밀이 많은 나라 내 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을 유난히 꺼려했다.

그래서 내가 없을 때 내 방에 누구든지 들어오는 것을 싫어했다.

지나가면 보이는 방 안이 싫었고 문을 닫으면 답답함에 싫었다.


나는 고1 때부터 10년 동안 매일 일기를 쓴다.

자기 전에 일기를 쓰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기분이 좋았고 내일을 준비하는 게 기대됐다.

기쁜 일은 두고두고 기억할 수 있어서, 우울한 일은 털어놓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하루종일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억지로 웃고 의미 없는 대화를 하다가

집에 돌아와 씻고 조용히 온전하게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의미 있었다.


그런데 엄마가 나의 일기를 훔쳐보았다.

그 후로 나는 일기에 하루의 일과를 적을 뿐,

내 기쁨을 솔직하게 기록할 수도 슬픈 일을 털어놓을 수도 없게 되었다.

나에게 가장 솔직해야 할 시간에 나의 감정을 극도로 숨겨야 했다.

매일 아침 집을 나서며 베개, 이불, 책상 위의 물건들, 옷의 위치를 기억하는 습관이 생겼고

집에 돌아와 기억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물건을 보면 미치도록 화가 났다.

방문을 잠그고 외출한 적도 있었으나 엄마가 너무 서운해해서,

그리고 그 서운함에 짜증이 나면서도 죄책감이 들어 나만의 공간을 더욱 갈망하게 되었다.


그 후로 자취를 결심했다.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는 기대와 동시에

한편으로는 이름만 아빠인 저 한심한 사람과 엄마가 단둘이 살아야 하는 사실에,

엄마를 버리고 내 인생 살고자 하는 매정한 사람 같아서 죄책감이 들었다.


어쨌거나 독립을 했다.

기쁘기도 했고 기쁘지 않기도 했으며 미안하기도 하고 미안하지 않기도 했다.

자취방 계약을 하고 나서 엄마에게 독립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엄마가 말했다.


"나는?"


소름 끼쳤다.

나는 엄마의 애인이 아니다.






나는 욕심이 많다.

하고 싶은 일도 많고 되고 싶은 것도 많다.

나는 충분히 능력이 있으며 앞으로 잘 해낼 자신도 있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내 모습에 가까워질수록 내가 엄마를 버린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대부분 동의하지 않을 수 있지만,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의 지원은 부모로서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부모의 책임이자 도리이며 그것이 싫으면 낳지 않았어야 한다.

생각은 그래도 남편의 무능력으로 자식 넷을 홀로 키우며 병까지 얻은 엄마를 외면할 수 없다.

우리를 키우기 위해 당신의 노후 하나 대비하지 못한 엄마가 안타깝다.

그래서 엄마를 챙기는 것도 용돈을 드리는 것도 당연하지만 엄마에게도 당연하면 안 된다.


나는 자유롭게 살고 싶지만 엄마를 혼자 둘 수 없다.

외로움을 타지 않는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지만

외로움이 많은 엄마는 내가 곁에 있어주기를 바란다.


나는 벗어나지 못한다.

숨이 막힌다.




다음 웹툰, 이토록 보통의


엄마의 새해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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