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현실의 경계, 시지프스와 같은 인간의 삶
줄거리
농촌에서 자란 민수는 서울의 대학에 진학하여 형의 집에 얹혀살게 된다. 민수가 이 아파트에서 지내는 동안 형수는 이곳이 기숙사냐며 '나'를 벌레, 기생충 취급을 하고 '나'는 그로 인해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제대로 된 직장을 갖지 못하자 형은 자신의 친구가 다니는 레포츠 회사에 소개시켜준다. 민수는 그 회사에서 백화점을 돌며 판매실적을 보고 하는 일을 맡았는데 실적이 저조할 때 마다 온갖 수모를 당한다. 백화점 매장에 올라가는 게 두려워 서성이던 민수는 백화점 안내데스크에서 일하는 주희를 발견하고 매일 주희를 훔쳐본다. 가을비가 오던 날 주희에게 가방을 맡긴 것을 계기로 인사를 하며 지낸다. 민수는 주희에게 저녁과 커피를 사준다며 말을 걸었고 그 이후 한 달여 간을 가끔 만나며 데이트를 했지만 좀처럼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주희의 태도에 지친 민수는 마지막의 만남이라 생각하며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셨는데, 주희는 그날 민수를 자신의 옥탑방으로 데려간다. 가파른 언덕 위 옥탑방에서 내려다보이는 지상을 나는 혐오하며 '미물스럽다''고 이야기하지만 주희는 지상에 내려가 그 속에서 사는 게 꿈이라고 한다. 민수는 주희와 함께하고 싶은 생각을 하게 되고 10월 한 달간 주희의 옥탑방을 드나들며 시간을 보낸다.
<시지프의 신화> 책을 선물한 날 민수는 주희의 옥탑방에서 자게 되지만, 주희는 뒤에서 안는 것만을 허락했다. 민수가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줄어들자 형과 형수는 은근슬쩍 민수의 결혼을 기대한다. 10월의 마지막 날, 주희는 처음으로 제대로 된 포응을 했고 그 이후 갑자기 5일의 휴가를 내고는 사라진다. 5일 후 나타난 주희는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소아마비인 동생을 이모에게 맡기고 왔는데 기약없는 기다림과 일방적인 마음에 지친 민수는 주희와 다투게 된다. 11월 한 달 동안은 주희를 만나지 않는다. 그러나 민수는 자신이 주희의 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음을 깨닫고 주희를 찾아간다.
11월 말, 민수는 옥탑방에서 주희를 밤새 기다렸지만 만나지 못하자 회사도 가지 않은 채 언덕에서 주희를 기다린다. 술해 취해 집으로 오는 주희에게 우산을 씌어주며, 주희의 꿈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실현시켜주고 싶었고 그러지 못해 힘들었다며 사랑을 고백하자 주희는 울면서 더이상 자신을 흔들지 마라고 이야기 한다. 12월 이후 주희의 외박은 잦아지고 민수는 주희의 옥탑방에서 이따금씩 혼자 지냈다. 주희에게 크리스마스 이브날 만나자고 한 뒤에 기다렸지만 주희는 결국 오지 않았고 나는 옥탑방에 편지를 남긴다.
다음해 1월 주희는 백화점을 그만두고 민수에게 편지를 남겼다. 민수는 주희의 옥탑방을 찾았고 ‘다시 마주친다면 행복한 시지프의 표정을 발견했으면 좋겠다’는 편지를 읽는다. 그 해 가을 민수는 형의 소개로 결혼을 하고 대기업으로 직장을 옮겼다. 그리고 10년이 지나도록 '반항과 불굴의 의지를 상실한 시지프들의 세계'에 안주하며 살아간다. 회식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신문에서 '옥탑방'이라는 글자를 보고 주희를 떠올린다. 민수는 언젠가 주희에게 행복한 시지프의 얼굴을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소설과 사회
박상우의 <내 마음의 옥탑방>은 서술자인 ‘나’가 지금은 생소하지 않은 ‘옥탑방’에서의 젊은 날을 회상하는 방식의 구조로 되어있다. 이러한 회상 형식의 서사물은 과거의 공간을 현재화하는 기능을 한다. 옥탑방이라는 공간을 통해 작은 범위의 공간의 이동을 통해 작중인물의 생각이나 가치관 그리고 현실을 보여준다. 이 소설은 인물과 그 인물이 속한 공간을 통해 시대를 이야기한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자본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하기 시작한 1980년-90년대이다. 이러한 시대는 경제적으로도 상위층과 하위층이 눈에 띠게 나뉘는 시기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자본주의의 원리에 따라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초래한다. 소설 속 사회는 이 시기의 하위층의 이야기, 일반 서민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지금은 익숙해져버린 물질주의, 만능주의의 어두운 모습이 그 때에는 낯설었고 그 시대를 받아들이며 저항적인 면모도 보이고 있다. 자본주의와 물질만능주의의 총체적인 모습이 백화점과 지상이라는 공간을 통해 표현되었고, 그 속에 속하지 못하고 서민들이 생활하는 가난과 보잘 것 없는 곳을 옥탑방으로 설정하였다.
작중 인물인 민수와 주희의 인물적인 특징도 눈여겨 볼만 하다. 소설 인물의 유형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개별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 인물(Character)이고 두 번째는 인물이 표상(表象)을 가지고 있는 경우(Figure)이고 마지막으로는 역할과 내면을 가지고 있는 경우(Persona)이다. <내 마음의 옥탑방>의 주인공 민수와 주희는 두 번째 표상을 가진 인물로 설명할 수 있다. Figure에 해당하는 이 유형은 형상, 비유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홍길동’이라는 특정한 개별인물이 아닌 ‘당시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가난한 서민’이라는 시대적인 표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두 사람은 영웅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엘리트에 부자라는 초월적인 면모를 갖고 있지도 않다. 그저 이 사회를 살아가는 평범한 젊은 사람들이다.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인물로 상정됨으로써 이들은 독자로 하여금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독자들이 작품을 보며 스스로 민수와 주희가 되어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신화 모티프의 차용
이 소설은 작품 안에서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신화인 <시지프의 신화>를 모티프로 차용하였다. <시지프 신화>는 신에게로부터 영원히 바위를 굴려 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은 시지프라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시지프는 죽음을 피하려 죽음의 신을 가두지만 결국 죽음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시지프는 신들의 눈을 속여 지하로부터 벗어난다. 이러한 행동이 발각된 후 시지프는 신에게서 형벌을 받는다. 바로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굴려서 올려야하는 형벌인데 이 바위는 산꼭대기에 닿자마자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만다. 시지프는 이 바위를 영원히 올려야 하는 것이다. 신들은 단순히 반복되는 일을 계속해서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점에서 가혹한 형벌이라고 결정하여 이 벌을 내렸다. 시지프는 이러한 벌을 피하지 않고 직시하였다. 올려도 다시 떨어지는 영원한 이 굴레를 인간의 숙명이라고 받아들인 것이다.
민수는 가련한 속물스러운 세계임을 알면서도 그에 속하려고 하는 주희를 보며 주희가 마치 시지프와 같다고 생각한다.
주희 역시 물질 만능주의와 자본주의가 팽배하는 이 ‘지상’으로 표현된 세상의 어두운 부분을 인정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하려 했다. 일을 해서 돈을 벌어 먹고 사는 이 반복되는 현대인의 삶과 노동자의 인생이 어떤 인간에게나 속하는 것이며 그것이 인간 삶의 본성이자 숙명이라면, 그 숙명을 거스르지 않고 직시하여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희는 지상에 속하려하면서도 자신의 이상을 옥탑방에 두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민수와 사랑을 한다. 민수는 지상에 속하려는 주희의 꿈을 밀어줄 능력도 용기도 없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희는 민수를 사랑했고 그 시절과 자신의 이상을 옥탑방에 매고 인간 세상 숙명인 지상으로 내려오고 만다.
주희와 달리 민수는 ‘거세당한 시지프’라고 표현된다. 민수는 주희와의 이별 후 형의 중매로 평범한 은행원 여자와 결혼하여 대기업의 홍보실에서 일을 하게 된다. 주희는 꿈을 가지고 지상으로 내려왔지만 민수는 저항 없이 지상에 편입된 것이다. 운명을 받아들이는 부분까지는 둘의 모습에서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운명을 대하는 태도에서 민수와 주희는 대비된다. 주희는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는 지상인지를 똑바로 직시하였고 그리고 그러한 세상을 멸시하였다. 그럼에도 그 지상에 속하여 숙명을 받아들이면서도 무익하게 스며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민수는 본인 스스로 “시지프들의 세계에 안주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저 바위를 들어올리는 행위를 반복한 시지프들의 세계, 그리고 그러한 의지를 상실하고 희망없이 살아가는 세계에 의식없이 스며든 것이다. 운명을 극복하려는 분투를 상실한 그러한 세계에서 민수는 하루하루 죽음에 다가가는 인간의 삶을 살아온 것이다.
희망도 저항도 아닌 직시와 멸시를 통해 인간의 숙명을 받아들인 시지프의 신화는 획일화되고 무익한 현대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비판한다. 작가 박상우는 물질만능 경향을 비판하며 그것을 추구하는 인간들의 노력을 시지프의 신화를 통해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소설 속 공간의 의미
1. 지상
우선 백화점과 회사, 아파트. 이 세 공간은 서술자인 민수가 고소공포증과 수치심을 느끼게 한다는 공통적인 속성이 있다.
민수는 백화점을 “인간의 꿈이 물질로 구현된 꿈의 성전”이라고 표현한다. 물질 만능주의적인 세상에서 백화점 안에 있는 화려한 물건들은 사람들을 현혹시키기에 충분하다. 또한 자본주의가 만연한 이 세상에서 물질이 모여 있는 이 백화점은 자본주의의 경쟁에서 승리한 경제적 상위층들만이 누릴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영업회사를 다니고 백화점 안내원을 하는 민수와 주희같은 서민들은 그 화려한 공간에서 소외되어 끔찍이도 벗어나고 싶거나 혹은 그 안에 필사적으로 속하려고 한다. 회사의 사장실은 판매 전략에 실패해 저조한 성적을 보이는 실적으로 인해 싫은 소리를 들으며 수치심을 느끼는 공간이다. 자신이 벌레나 기생 취급을 당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아파트 또한 답답함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아파트의 17층은 결혼한 형의 집으로 민수가 대학을 다닐 적부터 생활하던 곳이었다. 민수를 자신의 행복을 망치는 주범이라고 여기는 형수의 눈치가 있는 곳이기에 마찬가지로 그에게 안정을 주는 장소가 되지 못한다.
위의 세 곳을 전부 포함한 작품 속 더 넒은 범위의 공간은 ‘지상’이다. 이 ‘지상’이라는 공간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을 의미한다. 같은 공간일지라도 인물의 성격이나 가치관에 따라 다른 가치를 지니기도 하는데 민수의 입장에서 ‘지상’의 의미는 강하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소설 속에서는 "한없이 미물스러워보이는 인간의 세계, 그리고 가소롭기 짝이 없는 인간들의 자만심"(p.40)이라고 표현한다.
주희 역시 지상이 속물스러운 인간의 세계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민수와 달리 주희는 그러한 지상의 세계에 간절하게 속하고 싶어 한다. 세상에서 뒤쳐진 사람들은 그 세상을 원망하거나 혹은 더 간절하게 그 세계에 속하기를 갈망한다. 이러한 두 가지의 생각은 모순적이게도 현대인의 마음에 같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이끌어 내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를 바란다. 그러나 열심히 한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결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며 실수를 하기도 한다. 이것이 반복되면 주위로부터 수치심을 느끼기도 하고 자책하며 자존감이 낮아지기도 한다. 때문에 가끔은 자신의 슬픔에 갇혀 한없이 추락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다시 높은 곳을 향하여 다가가고자 한다. 상처를 받음에도 끝없이 오르려고 하는 세상이 소설 속에서는 ‘지상’으로 표현된 것이다.
2. 옥탑방
옥탑방은 백화점과 회사, 아파트 그리고 지상과 대비되는 공간이다. 주희의 삶의 공간이자 민수가 안정을 취하는 곳이기도 하다. 옥탑방은 아파트나 주택 같은 일반적인 주거형태와는 다르게 옥상에 좁게 자리 잡은 주거지이다. 지상의 공간이 아니며 그렇다고 하늘의 공간도 아니다. 지상에 속해있지는 않으면서도 그것을 초월해있지도 않은 공간, 즉 이상과 현실의 경계이자 괴리가 드는 공간이다.
지상과 옥탑방을 위와 아래의 관계뿐만 아니라 안과 밖의 관계로 살펴볼 수도 있다. 주희는 자신의 옥탑방을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은 채 살았었다. 그 곳은 바깥이라고 볼 수 있는 지상인 세상과 단절되어 있고 폐쇄된 공간인 것이다. 그러나 민수가 옥탑방의 존재를 알고 그 곳을 드나들게 되며 그 경계가 조금씩 희미해진다. 정확히는 옥탑방의 의미보다 옥탑방이 있는 마당에 설치된 텐트가 그 역할을 하게 된다.
민수와 주희가 친구보다 못하지만 친구보다 나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옥탑방에 자주 드나들게 된 민수는 옥탑방의 마당에 텐트를 설치한다. 일종의 별장과 같은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지상의 호화스런 집들과는 대비되는 옥탑방에 별장이 들어서는 것은 힘들게 살아가는 민수와 주희같은 사람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공간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이 별장의 역할을 하는 텐트는 초월적인 공간으로 설정할 수 있다. 그 공간에서 지상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민수와 지상에 속하고 싶은 주희가 사회적인 요소들이 제거된 특수한 공간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이렇게 불완전하고 가난함의 상징인 옥탑방이지만 이 옥탑방은 민수와 주희가 사랑했던 공간이자 이별한 공간이고, 지상에 속하기 전 머물렀던 청춘의 공간이다. 이상도 아니고 그렇다고 현실도 아닌 그 경계가 이들에게는 잊지 못할 과거의 한 조각이다.
내 마음의 옥탑방
'도시’라는 세련된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은 보잘 것 없는 이 옥탑방은 화려한 세계에 속하고자 하는 시작일 수도 있고 그곳에 있음에도 포함되지 않으려는 일종의 신념일 수도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자들이 살아가는 곳이 아닌 서민들의 생활공간, 서민 중에서도 지극한 서민의 공간이다. 우리는 이러한 공간의 대비와 특수성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계층구조와 높은 곳에 눈이 먼, 세상에 구속된 현대인의 존재와 그 위치를 고찰해 볼 수 있다.
현대의 서민들 특히 그 중에서도 울타리와 사회의 경계에 서있는 청년들은 딱 이 ‘옥탑방’과 같은 존재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며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당당하게 서기를 바라며 살아간다. 어리고 여리지만 그렇기에 올라가기를 희망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어른들은 저항의 의지가 꺾인 시지프들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무색(無色)의 시지프의 세계는 지금의 청년들이 속하고자하는 지상의 세계와는 다르지만 곧 그 세계에 안주하게 될 것이다.
옥탑방은 서울로 상경한 사람들의 터전이며 그들이 살고 있는 현실이다. 지상에 속해 현실의 아픔을 잘 아는 우리는 어쩌면 언젠가 마음속의 옥탑방을, 여린 순수함과 철없는 열정을 그리워하는 날들이 오지 않을까?
소설이란 허구성이 섞이긴 하지만 그 기본 토대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이다. 시대를 반영하지 않은 문학은 그 가치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본디 소설은 세계의 모방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가 이데아(Idea)라면, 소설은 그 세계가 비추어진 그림자인 셈이다.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고 그에 대응하는 보수를 받는 생활. 반복되는 일상 그리고 세상 사람들과 다를 것 없는 획일적인 삶. 그러한 현실에 귀속되지 않으려 많은 사람들은 꿈을 꾸고 또 많은 사람들이 좌절한다. 꿈을 좇으며 살기에 세상은 너무나 각박해서 결국 새로운 갈래의 길을 만들지 못하고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이러한 각박함은 어쩌면 현실의 아픔을 먼저 깨달아버린 사람들이 자신들의 꿈에 대한 그리움과 그들의 투지에 대한 부러움으로 낳은 질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지금도 이상과 현실, 안과 밖의 경계 그 어딘가에서 방황하고 고민하고 있을 수많은 민수와 주희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이 사회에 속하도록 노력하되, 그들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관 그리고 순수함과 용기는 간직하라는 심심한 위로를 건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