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리 Oct 21. 2023

타인의 의사들

아무튼, 의사

내가 만난 의사들의 이야기만 하다 보니 문득 다른 사람들은 어떤 만남의 기억들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렇다고 생판 남인 사람에게 질문할 용기는 나지 않고 가까운 지인들에게 들었던 이야기 중 주의 깊게 들어 생생하게 남아있는 것을 위주로 적어볼까 한다. 

              

먼저 아빠의 경우 젊은 시절 무리하게 다리를 사용했던 탓에 무릎에 문제가 생겨 정형외과에 진단받으러 가셨고 '퇴행성 관절염'이라는 소견을 듣게 되었다.

이미 할머니가 같은 질환으로 수술을 받으신 적이 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 다리를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불편함과 통증이 계속되는 어려움을 알고 계셨기에 선뜻 수술하기를 꺼리셨으나 걷는 것이 고통이 되어버린 일상을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워 전문 영상의학과에서 MRI를 찍고 연골 손상으로 인해 무릎뼈가 닳아 염증이 생긴 부위를 제거하고 닳은 부분의 뼈를 갈아낸 후, 무릎에 연골 주사를 놓고 깁스를 하고 한 달여 동안 움직임을 조심하셨다. 

    

그 사이 무릎을 펴는 물리치료와 재활치료를 하고 얼마간의 통원 치료가 끝난 후 아빠는 담당의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으시다며 조용히 혼잣말로 고민을 털어놓으셨다.     

-어지간한 건 다 가지고 있을 텐데.. 그래도 참 고맙고 그래서 어떻게든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은데..

내가 알고 있는 아빠는 본인의 마음에 어떤 사람을 들여보내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또 그의 마음에 흡족하게 들기도 까다로운 기준의 소유자인데 만나보지 않아도 그 의사 선생님이 어떤 진료와 치료를 해주셨는지 알 것 같았다.

마침내 아빠는 적합한 선물을 찾아 의사분께 전달했고 이제부터는 무리하지 말고 과격한 운동이나 쪼그리고 앉는 자세를 피하라는 조언을 들으며 좋은 인연의 마무리를 했다고 내게 전하셨다.

     

 또 다른 의사와의 인연을 나눠준 사람은 양산 여사님인데, 아이를 출산하고 나라에서 지원해 주는 산후도우미와 함께 2주간 지냈던 적이 있었다. 여러 가지로 나와 맞지 않는 그 산후도우미를 견디느라 몸도 안 좋은데 마음 까지 수렁에 빠진 듯한 날들이었다.

이후 다른 산후도우미를 알아봤고 그렇게 알게 된 그분에게 자신이 기억하는 소중한 의사 선생님과의 인연을 전해 듣게 되었다.

양산 여사님은 딸과 아들, 두 자녀 사이에 불행한 사고로 잃게 된 아이가 있었다 했다.

     

자세히 물을 수 없었지만 태어나고 백일 정도 지나서 품을 떠났다고 말씀하시며, 더 이상 아이를 출산하지 않겠다 결심했으나 남편은 아들 하나 있어야 한다고 자신을 설득했고 어렵게 임신한 끝에 아이를 출산했다고 했다.

내가 할 일은 다 했다는 생각으로 더 이상의 임신을 막기 위해 차가운 수술대 위에 누워 피임기구를 삽입하는 수술을 할 때, 자신의 담당 의사가 했던 말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전할 때 양산 여사님의 목소리는 물속에 잠겨 웅얼거리는 느낌이었다. 

    

-신경 써서 잘해드릴게요. 걱정하지 마시고 계세요. 고생하셨어요.라고 말하면서 내 손을 한 번 잡아주시는데 그 손이 어찌나 따뜻하던지. 남편은 오지도 않은 그날. 똑똑하고 잘난 의사 선생님이 나한테 그렇게 다정하게 말해주는데 내가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는지 눈물이 다 났어요. 나를 귀하게 대접해 주고, 진짜 멋진 선생님이셨어요.               

그 말을 듣고 나니 친정엄마가 들려주신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 이야기가 생각났다.

     

첫 아이의 출산은 그 과정을 겪어내는 모든 순간이 불안과 싸우는 시간임을 고백하던 엄마는 양수가 터진 뒤에 머리가 아래로 향하지 않고 역아가 되어 바라던 자연분만을 하지 못하고 급하게 제왕절개로 나를 낳아야 했던 상황을 설명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수술이란 걸 하게 되었을 때의 두려움을 생각하면 아직도 닭살이 돋는다며 죽을 때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떠나고 싶다 힘주어 말하고는 다음 말을 이어가셨다. 

    

-여의사였는데, 사람이 딱 깔끔하고 반듯한 거야. 막 쌀쌀맞은 그런 느낌 아니고.

자기는 수술 많이 해 봤으니 나중에 비키니 입으면 수술자국 찾지도 못할 거라고 우스갯소리를 하며 나를 안정시켜 주는데 그 상황에서도 웃음이 나더라니까. 내가 비키니를 무슨.. 그걸 입을 일이 뭐 있어.

급하게 결정된 거고 수술할 방도 바로 안 나와서 기다리느라 지쳤던 건지 마취가 잘 된 건지 깨고 일어나니 네가 떡- 세상에 나와 있었지. 살살 간지럽기도 하고 그랬는데 사느라 정신없이 지내다가 목욕탕에 갔거든?     

근데 그냥 배를 보는데 정말 못 찾겠는 거야! 그리고선 네 동생도 제왕절개로 낳았잖니? 근데 원래 쨌던 부위 또 한다는데 잘 못 찾겠다고 그러기에 와- 그 의사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했다니까.

     

엄마는 참 신기한 직업이라고-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했겠니, 정말 노력 많이 했을 거야 등등 연신 감탄하며 다시 태어나도 의사는 못 했을 거라고. 본인은 피만 보면 어지럽다고 말하며 혀를 내둘렀다. 그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간 병원에 입원해서 긴 치료를 받는 환자들에게 의사들은 어떤 존재일까?

     

인생의 중요한 몇 번의 고비, 자주 찾진 않아도 간혹 들러 치료받는 환자들도 짧은 만남의 순간이 이토록 깊은 인상을 남기는데 매일 자신의 담당의를 마주하고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삶의 일부를 함께 한다면 그들에게 의사들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아픈 환자의 쾌유를 위해 정진하여 치료에 몰두하는 진실된 심장을 지닌 의사들의 생각도 궁금했다. 그들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기억에 남는 환자들과 병원에 오는 보호자들에게 바라는 점은 어떤 것들인지 듣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 궁금증을 조금이라도 해소해 보고자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고 그들의 소리를 담는다면 멋진 의사 선생님들과의 추억에 대한 개인적인 회상만 하는 책으로만 끝나지 않을 것 같아 다행이라 여겼는데 안심해도 될는지 모르겠다.

이전 09화 더하기 산부인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