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리 Oct 13. 2023

그래서 하는 인터뷰

아무튼,의사

[인터뷰 입니다.]

-00대학병원 호흡기내과 전문의,  교수 박00


1.긴 시간의 수련을 거쳐오면서 그만두고 싶었던 때가 있으셨나요? 있었다면 그 시간을 어떤 마음으로 견디고 지나오셨는지 말씀해 주세요.

의사는 일반적으로 의과대학 졸업 후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 및 임상강사(각 전문과 별 세부전공) 2년을 수련하게 됩니다. 인턴 1년 동안은 육체적으로 고단하기도 하고 병원에서 가장 허드렛일만을 담당하게 되며, 전공과에 대한 불확실성이 있어서 심적으로도 힘듭니다. 다만 인턴의 일 자체는 나만 할줄 아는 일이 아니고 다른 인턴들과 협동하거나 서로 도울 수 있는 면이 있어서, 힘든 시기에도 인턴 동기들과 서로 의지하면서 즐겁게 보냈던 것 같습니다.

문제는 전공의 수련인데, 저의 경우는 내과를 전공했고 당시에는 전공의 수련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기 전이어서 1년 중 여름/겨울 휴가 총 14일을 제외하고 매일 출근했습니다. 당직도 2-3일에 한번 꼴로, 연속 36시간 근무하기가 일쑤였고, 이런 근무 후에도 휴식시간은 주어지지 않아 체력적으로도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인턴때와는 달리 본인의 담당 환자를 다른 전공의가 파악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내가 맡은 환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혼자 처리해야 하는 점이 가장 고독하고 힘들었습니다. 상급 년차 선배들이 도와주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본인의 몫을 다 해내지 못하면 당직이든 아니든 업무는 끝나지 않습니다. 제가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환타(환자가 유난히 몰리는 사람)”여서, 혼자 전공의실에 남아 밀린 업무들을 하고 있으면 이런 고독감에 늘 압도되고는 했습니다.

전공의 수련 중 그만두고 싶었을 때는 1년차 때입니다. 내과 특성 상 갑작스럽게 환자들이 나빠지기도 하고, 너무 많은 수의 환자를 쉼없이 보다보니 실수가 생기기도 했는데, 모든 게 무능한 저의 탓인 것 같아 힘들었습니다. 힘든 기색 없이 일을 척척 해내는 동기들을 보면서 나는 좋은 내과 의사가 될 자질이 없구나 하고 느껴졌고, 실제로 어떤 시기에는 이번 달만 마치고 사직하겠다고 정말 사직서를 썼던 적도 있습니다. 다만 이런 사직 계획은 따뜻하게 돌봐주신 그 다음달의 상급 레지던트 선생님과 존경스러운 교수님 덕분에 무산이 되고 맙니다. 제가 4년차를 마치던 회식자리에서 한 동기가 저에게 “너는 힘든 파트는 다 걸리고, 환자도 너무 중환만 많았는데... 왜 미련하게 한번도 도망도 안 갔다오고, 안 그만뒀어?” 하고 놀리더군요. 사실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수련을 마칠 수 있었던 건 적당한 시기에 나타난 귀인(?)들 덕분이며, 지금 전공의들을 가르침에 있어서도 저를 도와주었던 많은 선생님들을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 호흡기내과를 전공으로 택하신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특별히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하신 계기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환자가 안 좋거나 일이 너무 많아서 압도될 때에 격려하고 도와준 선생님들이 호흡기내과에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검사가 많이 발달하면서 이학적 검사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호흡기내과는 청진기로 진단을 하고, 진단이 어려운 환자도 여러 가능성에 대해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끝내 환자를 호전되게 하는 과의 특성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물론 타과에 비해 압도적으로 죽는 환자가 많은 중증 질환을 보는 과이지만, 경력이 쌓인 요즘은 그러한 과정이 미리 예상이 되기 때문에 환자의 주치의로써 스스로도 마음을 다잡고 보호자와도 소통이 가능한 과이기도 합니다.

어렸을 때는 수의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말 못하는 아픈 동물들이 쌩쌩하게 나아서 가는 걸 보면 기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말이 안 통하는 대상을 진료하면 참 힘들 것 같아서 의사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아프던 환자들이 나아서 가는 것을 보면 뿌듯합니다. 세상에서 직업적으로 선을 추구할 수 있는 분야가 많지 않은데 의사는 그런 직업이라고 생각하고 자부심을 갖습니다.


3. 병원에서 의사로 일하며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 언제가 그런 때인지 알고 싶습니다. 또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으셨다면 그 에피소드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정말 어려운 상황의 환자를 끈기있게 진료해서 낫게 만들었을 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입원했던 환자 중에 코로나-19 감염으로 양측 폐에 염증이 심하고, 오랜 투병으로 걷지도 못할 정도로 위약감이 심한 환자분이 있었습니다. 항생제 내성균 폐렴이 와서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기고, 기관절개관을 통해 가정용 인공호흡기를 유지해야만 했죠. 정말 이대로 환자를 잃는건가 싶은 고비가 여러번 있었지만, 항생제 치료와 영양공급, 재활을 끈질기게 한 끝에 결국은 휠체어를 탈 수 있을 정도로 좋아져서 퇴원했습니다. 얼마전에는 성공적으로 인공호흡기도 뗐구요. 이 환자분은 남편분이 지극정성으로 간병을 하던 분이었는데 제가 알려드린대로 열심히 운동시키고 식사도 도우면서 얼른 낫기를 너무나 간절히 원했던 환자였습니다. 어려운 상황의 환자였는데, 의사와 보호자의 노력과 정성이 더해져서 빠르게 호전이 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괜시리 오래 기억에 남는 환자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제가 이직하기 전에 근무했던 지역은 호젓한 바닷가 도시였는데,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고령의 환자분이 너무 힘이 들고 마지막 임종은 고향에서 하고 싶다고 하면서 오셨었습니다. 이전 해에도 여러번 만성폐쇄성폐질환 급성 악화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셨던 분이었고, 청진 시 호흡음도 나쁘고 폐기능도 바닥이었습니다. 경험 상 이번 악화를 이겨내지 못하면 돌아가실 수도 있겠구나, 하고 속으로는 생각했지만, 편안히 임종하고 싶어서 왔다는 환자에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하겠습니까. 그래서 환자의 슬픈 눈을 의연하게 바라보면서 “다 나아지실 거예요” 하고 짐짓 큰소리를 치고 병실을 나왔었죠. 흡입제도 바꾸고 매일 사용법 교육을 다시 하고 호흡 운동을 챙기고 식사 잘 하시라고 잔소리도 하는 등 꼼꼼히 체크해서 챙기다보니, 신기하게도 급성 악화가 많이 호전되어서 퇴원이 가능했고, 그 뒤로 거의 만 2년간을 악화 없이 외래에서 잘 다녔답니다. 무뚝뚝한 할아버지셨는데도 외래에 오시면 이제는 마당 산책도 한다면서 아이같이 좋아하셨어요. 제가 개인 사정으로 사직을 하기 전 외래에 환자분이 오셨는데 그날따라 유난히 얼굴이 핼쓱하고 운동도 잘 안하신다고 해서, 늘 그렇듯이 이런 저런 잔소리(?)들을 하고는 “이제 스스로 이런 것 잘 챙기셔야 해요, 제가 몸이 안 좋아 병원을 그만두게 되어서 못 돌봐드리게 되었어요.”하니 갑자기 할아버지가 너무 슬프게 눈시울이 붉어지시는 겁니다. 저도 왠지 모르게 마음이 먹먹해서, 한참을 서로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고 애꿎은 무릎만 만지작거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당시 저는 건강 문제로 사직을 했었는데, 이런 환자들과의 교감 때문에 많이 버티고 버티다가 어쩔수 없이 사직을 하게 되었고, 사직 전에 외래를 볼 때마다 정든 환자들 때문에 눈시울을 많이 붉혔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4. 환자 외에 보호자도 같이 머무는 곳이 병원이지요.

그들에게 의사(의료진)를 대할 때 지켜줬으면 하는 최소한의 예의나 바라는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병원은 아플 때 오는 곳이니, 기본적으로 환자들이나 보호자들이 짜증이나 좌절감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의료진들에게 그런 감정들을 투사해서 화를 내거나 작은 것으로 꼬투리 잡아서 괴롭히거나 심지어는 욕설까지도 하는 것을 너무 많이 봅니다. 이런 행동들은 본인 뿐만 아니라 많은 다른 환자들을 진료해야 하는 의료진의 사기를 꺾는 일이고, 또한 의료진들도 철저하게 방어적으로, 소극적으로만 진료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그리고 최근 전자기기가 발달하면서, 의료진의 동의 없이 몰래 숨겨서 녹음이나 동영상 녹화를 하는데, 이런 행동은 사람간의 예의에 많이 어긋나는 것 같습니다.

진료실에서 환자분이 누구 아는 사람이 그러던데, 인터넷 검색 해보니 이렇던데, 하면서 저의 전문 분야에 대해서 섣부르게 재단을 하는 모습을 보면 맥이 탁 풀리는 때가 많습니다. 제가 이 분야만 몇 년을 공부하고 박사 학위도 있는데, 왜 사람들은 인터넷에 올라온 신원 불상의 사람이 쓴 댓글을 더 믿는 걸까요?


5. 의사에게 환자들이 기대하는 건 정확한 진단과 효과가 바로 나타나는 치료, 친절함 등 그 기준점도 높고 다양한데 교수님께서 생각하는 의사의 자질 중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은 어떤 것들이 있으신가요?

좋은 의사의 자질에서 3Cs 라는 것이 있는데, Caring (good bedside manner, 환자를 대하는 좋은 태도), Competancy (의학적 능력), Compassion (환자의 어려움게 공감하는 능력) 입니다. 저는 가장 우선되는 자질은 competancy 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친절하고 공감 능력이 뛰어난 의사라도 무능력한 의사는 좋은 의사가 될 자질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환자들을 진료할 때 너무 상식 밖의 진료 태도나 결여된 공감 능력은 올바른 의사-환자 관계를 저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의사들은 수련 과정에서 많은 환자들의 고통과 죽음을 함께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공감 능력이 뛰어나면 정신적인 소모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다소 공감을 줄이는 방향으로 다듬어지는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의학적인 판단을 제시함에 있어서 환자들이 냉정하다고 느끼지 않도록 노력을 하는 편입니다.

여기에 C를 하나 더 제시하자면, communication입니다. 요즘 시대는 많은 정보들을 쉽게 얻을 수 있고, 그에 따라 환자들의 치료에 대한 기대 수준이 아주 높습니다. 다만, 최선의 예후가 모든 환자들에게 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의사들은 환자들이 기대하는 수준을 잘 파악하고, 의학적인 현실과의 간극이 클 때에는 그것을 환자가 이해하도록 메워줄 수 있는 소통 능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6. 출/퇴근의 경계가 항상 분명치 않고 늘 변수가 존재하는 공간에서 일하시는데,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춰가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으실까요? 병원에서 겪는 어려움이 개인의 삶으로 너무 깊이 들어오게 되면 마음이 지치는 일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제가 수련받던 시절이나 임용 초기의 일기를 보면 정말 환자 얘기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시점에는 그런 삶이 많이 지치고, 행복을 추구하는 개인으로써의 나는 없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브레이크가 없는 차처럼 건강을 해칠 정도로 일을 하고 결국 그로 인해 사직을 하고 몇 개월 쉬게 되었는데, 이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습니다. 그 시기에 처음으로 병원 밖에서 나라는 사람이 무얼 좋아하고 무얼 원하는지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퇴근을 하면 의식적으로 병원에서의 일을 다른 구역에 두려고 합니다. 남편이 의사가 아니라서 환자 얘기를 잘 안하게 되는 면도 있고요. 저는 퇴근하면 집안일이나 운동을 하고, 재미있는 유튜브 영상을 보기도 하면서 자연인(?)으로 돌아갑니다. 제 생각에는 의사 본인 스스로의 삶이 풍성하고 행복해야 환자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더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이전 10화 타인의 의사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