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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Nov 15. 2021

스치듯 안녕

연애, 잡생각

라디오는 어떤 의미에서는 나에게 위험하다.

예고 없이, 내가 생각지도 못한 노래와 사연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준비 없이 맞이한 감정의 파도에 휩쓸려 하루 종일 아니 어쩌면 일주일 내내 헤어 나오지 못하고 허우적대느라 진을 뺀다.



헤어진 연인이 우연히 마주치는 가사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나는 그런 경험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내가 겪었던 일인 것처럼 감상에 젖어있는데 옆자리에서 남편이 한 마디 한다.

"어느 놈 생각하고 있어? 그 눈빛 뭐야~"라고 웃는다.



 그래 바로 나예요.

 그대가 무책임하게 버리고 간 사람.

 왜 그리 놀라나요.

 한 번쯤은 마주칠 수도 있죠.

      -생략-

 아무 일 없듯이 스쳐가 줘요.

 한 번만 더 무정하면 되는데 괜히 인사 말아요.

 내게 미안한 듯 그 눈빛도 싫어.

 스치듯 안녕해요.

                                -이수영 [스치듯 안녕] 중에서-



남편의 농담 섞인 말에 그런 일 없다고만 대답하고 '무정'이란 단어가 마음에 와닿아서 살짝 눈물이 날 뻔했다. 이별은 살아가면서 그 어떤 누구와의 어떤 관계에서도 익숙해지지 않고 매번 슬픈 것 같다.



좋은 마무리로 헤어졌다 해도 연인과의 이별은 서로의 마음이 식은 것을 어느 한쪽은 확인하고 돌아서야 하는 일이니까 고하는 쪽도 통보를 받은 쪽도 아프다. 그렇게 헤어진 연인과 재회하게 된다면 그 순간에 내 모습이 마치 이 우연한 만남을 예견했다는 듯이 최선의 나로 존재하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나간 연애를 떠올리게 되는 가을의 끝자락이다.

잘 살고 있는지, 나를 기억하는지, 기억한다면 어떤 사람으로 남아있는지 궁금해지는데 이러면 결혼생활에 빨간불이 켜지는 위험신호겠지? 라디오 듣기를 좋아하지만 역시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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