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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Nov 17. 2021

일상에 지칠 때

향기

20대 때는 향수 뿌리는 걸 좋아했다.

작은 샘플 통에 나누어 파는 미니 향수를 구매해서 그중 마음에 드는 향이 있으면 본품으로 데려오거나 친구에게 선물하기도 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어쩐지 시들해져 갔다.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이라도 그 사람에게 어울리고 또 좋아할 만한 향을 고르는 건 어렵다.

그 어려움을 알아서인지 내가 원하는 향을 선물 받으면 그게 또 그렇게 감격스럽게 다가와 그 사람을 위해서 내가 뭐든 뭣하랴 라는 생각까지 하기도 했다.



회사에 출근하고 바깥활동이 많았을 때는 내게서 좋은 향기가 풍겨나길 원하는 마음에 바디워시, 샴푸, 바디로션에 핸드크림, 헤어 오일 그리고 향수까지 꼼꼼하게 챙겼었다.


그랬던 내가 가정주부로 살아온 요 몇 년 간 종합 선물세트로 들어온 생필품들로 사용하다 보니 내 취향이 흐릿해져 갔고 내가 선호하는 향의 기억도 잊혀갔다.



그러던 어느 날, 여행에서 돌아온 그날-

며칠 만에 들어온 집안에서 불쾌한 냄새가 내 신경을 자극했고, 어느 때고 우리 집에 방문한 사람들이 이 냄새를 맡을 것을 생각하니 아찔했다. 분명 음식물도 다 버리고 쓰레기도 비우고 갔는데 말이다.



그 흔한 디퓨저 하나 없는 집. 부지런히 환기하고 청소하고 닦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나 보다.

그날 이후로 너무 향이 짙어서 오히려 울렁거리게 만드는 제품을 제외하고 은은하면서 시원한 계통의 향의 디퓨저를 거실에 들여놓았고, 화장실, 침실에 스프레이 형식의 코튼 향수를 주문했다.


옷장마다 사쉐를 넣어두고 현관 앞 들어오는 입구에도 숲과 안개를 연상케 하는 향의 사쉐를 걸었다.


탑노트는 첫 향, 미들 노트는 메인 향, 베이스 노트는 잔향.



첫 향만 맡고 그 향수의 모든 걸 판단해 버리면 안 된다. 오래 지속되는 메인 향도 중요하고 나 같은 경우에는 마지막에 남는 잔향이 좋은 향수를 선택하는 편이다. 그래서 시향 후 며칠 지나서 구매하는 편이다. 


일상에 지쳐서 언제까지 이 일들을 반복해야 하고 어느 때에 만족스러운 하루를 살게 될 것인가 라는 의문으로 마음이 울적해질 때 향기로 치유받았던 기억들이 있다. 지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을 때 기분 좋게 반겨주는 내 공간에서 나는 따뜻한 향. 노곤한 몸을 정성스럽게 씻어주고 발라보는 상쾌한 향.



세상과 맞서 집을 나설 때 맥이 뛰는 곳마다 달큰하기도 때론 묵직하고 시크한 향.

때마다 내 기분을 달래주는 향기가 있어 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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