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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Nov 26. 2021

자기만의 방

독서, 글쓰기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어내느라 힘들었다.


나는 그녀처럼 당대 최고 수준의 지적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오지 않았고,

스스로의 의지로도 지적인 사람이 아닌지라 문장 속에 담겨있는 뜻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의 글은 매혹적이었고, 여성으로서 느껴야 했던 곤혹스러움과 억울함에 공감하며 위로와 용기를 받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나는 소설을 쓰는 작가와 문예 평론이나 서평을 쓰는 작가 모두 존경한다.



작가의 성실성, 진실성, 독창성에 대해 말하는 대목에서 고개를 자동차 장식용 강아지처럼 연신 끄덕거리며 '이래서 내가 작가를 동경하는 거지.' 하고 나지막이 내뱉는 내 모습이 조금 우스운 오후였다.



[나는 은화를 미끄러뜨리며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의 쓰라림을 기억하건대, 고정된 수입이 사람의 기질을 엄청나게 변화시킨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더라고요. 이 세상의 어떤 무력도 나에게서 500파운드를 빼앗을 수 없습니다. 음식과 집, 의복은 이제 영원히 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력과 노동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증오심과 쓰라림도 끝나게 됩니다. 나는 누구도 미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도 나에게 해를 끼칠 수 없으니까요. 또 누구에게도 아부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가 나에게 줄 것이 없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하여 나는 스스로 인류의 다른 절반에 대해 아주 미세하나마 새로운 태도를 취하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정적으로 돈이 들어오고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면 자신의 일그러진 판타지나 분노의 대상을 투영시켜 유쾌하지 못한 글쓰기의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나는 셰익스피어처럼 순수한 이야기 전달자로서 글쓰기는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시대, 원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던 겪어보지 못한 경험들을 주인공들에게 대리 만족하며 나의 욕망을 잠재우는 수단으로 글을 쓰게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생겼다가 왜 그런 의도로 쓰면 안 되는 건지에 대한 의문도 생겨났다. 글쓰기를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 건지에 대해서도 복잡해졌다.



확실한 건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고, 글을 읽는 행위를 통해 자유롭게 사유하고 넓고 깊어지는 마음의 지경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는 것이다. 나만의 흔들리지 않는 철학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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