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머물러 주세요

의사 선생님

by 엘리

의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가 어느덧 마지막 회를 향해 가고 있다.

다른 직업도 그 자리를 얻기까지 쉽지 않다는 건 알지만 '의사'라는 직업은 그보다 더한 무언가를 노력해야 이룰 수 있는 것 같아서 내 마음 깊이 선망하는 대상이었다.


아는 동생이 대학병원의 호흡기내과 교수로 일하게 되는 과정도 옆에서 보고 친구의 지인 남편도 의사여서 그들의 생활과 고충에 대해 들은 바 있다.

얼마나 치열하게 공부했는지,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자신의 일에 임하는지 듣다가 찡 한 적도 많았고, 드라마를 통해서 그 감동은 배가 되었다.


기본적으로 의사에 대한 신뢰가 두터운 편이다. 오진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들의 말을 귀담아듣는 편이고 누구보다 나의 아프고 불편한 상황을 해결해 주고 싶어 하는 이들이라고 믿는다.


이런 신뢰를 가질 수 있게 해 준 의사 선생님 중 한 분이 내가 자주 가는 한의원에, 그리고 환절기마다 찾게 되는 이비인후과에, 임신부터 출산 때까지 함께 한 산부인과, 피부과에도 한 분 씩 계신다.

한의사 선생님은 나뿐만 아니라 친정 식구 모두 허리와 무릎 문제로 고통 중에 있을 때 성심성의껏 돌보아 주신 분이다. 다정하고 여유로운 어조로 환자를 안심시켜 주고 적절한 치료와 치료 후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사항들도 꼼꼼하게 짚어주며 환자의 생활을 유익되게 한다.


고마운 일들은 수도 없이 많다.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아서 병원에 갈 수도 없는 아빠를 직접 왕진 오셔서 치료해 주셨던 것, 어려운 형편 고려해서 진료비 적게 받고 약도 반값으로 지어주신 일 등 떠올리면 감사한 일뿐이다.


하루 종일 아픈 사람들만 상대하며 좋은 소리보다 안 좋은 소리를 더 많이 들으면서도 일주일 중 하루만 빼고 매일 같이 성실하게 나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 집중하는 것. 꾸준한 인내를 요하는 일이다.

고등학교 때 알게 된 30대의 의사 선생님은 이제 50대가 되셨고 그 세월의 고단함을 지켜보며 조용히 마음속으로 속삭인다. '선생님. 건강하게 오래 머물러 주세요. 제 몸 상태를 제일 잘 아시는 분이잖아요.'


엄마는 호두를 열심히 까서 드리고 아빠도 한 번씩 간식거리를 사 들고 가고 나와 동생은 아직 고마움의 표현을 말로만 해드렸는데 어떤 것을 드렸을 때 한의사 선생님께 기쁨이 될까? 고민되는 요즘이다.


앞서 말한 의사 선생님들 중에 차 밑에 깔린 길고양이를 구조하다 긁힌 상처에 곰팡이균이 생겨 찾았던 피부과 의사 선생님도 좋은 일 하다 이렇게 된 거니 진료비도 적게 받아주셨고 잡티 문제로 상담하러 갔을 때, 이 정도는 컨실러로 가리고 다니다가 나중에 더 깊어지면 치료하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며 다음에 오라고 이야기해주신 기억이 난다.


반말로 눈짓 한번 하며,

"지금 말고 겨울에 해. 그리고 비용 꽤 들어가. 얼굴에 잡티 종류 다 다른데 한 번에 하는 게 낫긴 하지."라고 내뱉던 그 나이 든 피부과 의사 생각하면 훨씬 매너 있고 양심적인 이 분을 나는 신뢰하게 되었고, 후비루와 림프 질환으로 목이 붓고 컨디션 저조로 힘들 때 빠른 회복이 될 수 있도록 치료해 준 상냥하고 다정한 이비인후과 원장님 또한 믿는다.


어이없을 만한 질문에도 웃음으로 대해주고 땀이 흥건하게 젖을 정도로 힘써서 내 아이를 받아주었던 산부인과 전문의 선생님도 빼놓을 수 없지. 환자와 의사가 신뢰로 묶이게 되는 시점은 어디쯤일까? 잘못된 진료를 하지 않으려고 환자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을 때 그 눈빛들을 잊을 수 없다.


그렇게 태어났으니 그런 문제가 생긴 걸 뭐 어쩌라는 거냐 라고 말해서 날 울린 안과의사.

다른 애들은 잘하는데 이 애가 못하는 걸 우리가 어쩔 수 없으니 여기서 더 봐드릴 수 있는 게 없다고 세상 건방지고 비아냥거리는 투로 이야기하며 내 이성의 끈이 끊어지게 만들었던 소아병원 의사.

습관이 고약스러운, 그래서 위도 아래도 없이 일단 반말부터 하고 치료비 설명에만 몰두하던 치과의사.


떠올리면 안 좋은 기억이 많은 의사들도 있지만, 결국 의사는 환자를 잘 치료하면 되는 사람이니까 그들에게 친절이나 따뜻함을 기대하지 말아야지 생각하면서도 막상 당황스러운 순간을 맞이하면 아무렇지 않게 넘기기가 쉽지는 않다.


그럴 때는 내가 좋아하는 의사 선생님들과의 기억을 떠올리며 '세상에는 이런 의사 저런 의사 다양하게 존재하니까.' 라며 나를 다독이고 그럴 수 있게 만들어준 그분들께 감사한다.

기분 상하게 한 병원은 안 가면 그만이지 뭐. 늘 나의 마무리는 이렇게 끝나는데 당신에게 소중한 존재로 남아 있는 의사 선생님이 계시다면 그분은 어떤 분이고 어떤 사연이 있는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