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생활
집에서 차려먹는 밥이 질려서 혼자 식당가가 있는 골목으로 길을 나섰다. 점심시간이라서 삼삼오오 직장인들이 무리를 지어 식당으로 걸어가고 또 걸어 나오는 풍경을 지켜보며 괜히 가슴이 찌릿해지면서 그들의 표정과 행동을 지켜보게 되었다.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들고 담배를 피우며 군대 이야기를 하는 남성 무리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담은 플라스틱 컵에 맺힌 물방울을 연신 떨어내며 새로 산 신발에 대해 서로 조언해 주는 여성 무리들까지 굳은 얼굴 한껏 상기된 얼굴 그저 무덤덤한 얼굴까지 한 데 섞여 묘한 생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들의 목에는 각자 소속을 알 수 있는 사원증 같은 것이 걸려있기도 했고, 직급으로 부르는 소리로 짐작하건대 한 회사 동료들임을 알 수 있기도 했다. 나는 내가 앉은자리에서 식사를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지나간 사회생활을 떠올렸다.
남들보다 2년 늦은 졸업.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서 온 가족이 각자의 자리에서 돈이 되는 일을 해야 했고, 복학 후에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찌어찌 졸업은 했는데 취업하기가 만만치 않았었다.
뚜렷한 목표나 계획이 있는 구직이었다면 더 쉬웠을까? 어디라도 일을 시작하고 싶다 라는 마음으로 이력서를 보내다가 몇 번의 면접을 보고 나서 깨달았던 것은 급하다고 아무 회사나 들어가면 안 되는 거구나 였다.
출퇴근길에 소요되는 시간과 거리, 업무의 내용, 급여 조건 등 내가 원하는 바를 정해두고 회사를 거른 후 신중하고 전보다 성의 있게 나를 어필하고 준비한 뒤 좋은 결과로 첫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맡게 된 일도 즐거웠고 동료들과도 상사와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바로 위 선배가 나와 맞지 않는 성향이어서 업무에 불편을 주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얼마 뒤 들어온 후배도 나이는 같은데 내가 선배다 보니 알려준다고 전하는 말들이 그 후배 입장에서는 듣기 싫은 잔소리로 들렸던 것 같다.
술자리에서 나에 대한 험담을 했다는 걸 전해 들었던 그날, 안 들은 척 자는 척했지만 옆 방에서 안 좋게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게 되었던 야유회 날까지 떠올라 다짜고짜 후배에게 한 마디 했고 기분 나쁘다는 말과 함께 얼마 간 대화하지 않았다.
사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친구들과 얼마든지 흉을 봐도 상관없다. 그것이 업무적인 부분이 아니라 순전히 취향의 차이고 오해로 만들어진 이미지에 대한 욕이라면 그것까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동료들에게 나에게만 일을 과중하게 시키는 것 같다거나, 쌀쌀맞은 거 같다는 말은 좀 아니지 않나?
사실이 아닌 본인의 이런 것 같다~라는 느낌만 가지고 그걸 문제인 것처럼 공론화시키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불만이 있으면 당사자인 나에게 말이라도 먼저 해 봤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이후 신경 쓰이던 선배의 막말이 퇴사의 촉발점이 되어 회사를 나왔고 더 나은 조건으로 이직하게 되었다.
아직도 그 사람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떠올리면 열이 오른다. 큰소리로 한마디 해줬어야 했는데.
'그래. 너는 능력 없으니까 거기서 그렇게 비굴하게 붙어있어라. 남의 노력 갈취해먹는 기생충 같은 놈.'
이직한 곳은 회사 내 조직문화가 이전과는 많이 달라서 적응하느라 꽤 애를 먹었지만 낯설게 느껴졌던 일들이 지나고 나니 많이 어렵지 않았다. 물론 고비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대화로 해결할 수 있을 만큼 말이 통했던 동료와 상사여서 다니는 동안 좋았던 기억이 더 많은 곳이었다.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사람들이 좋았던 그곳, 회사 내 권력다툼으로 줄 서기에 실패한 상사의 안타까운 순간을 지켜보며 사무실이 축소화되고 그 과정에서 나는 권고사직당했고, 다른 직원들은 부서이동으로 지방으로 떠나고 큰 사무실이 작은 곳으로 이사하는 날, 차장님 책상 하나만 덩그렇게 남겨진 그곳을 나오면서 눈가가 촉촉했던 나를 기억한다.
아쉽지 않게 챙겨줄 건 다 챙겨줘서 받아들인 권고사직이었지만( 거의 폐업 수준으로 사무실 하나를 정리했었다.) 사람이 좋으면 일이 안되게 해서 나를 힘들게 하는 곳이 회사라는 곳인가 생각하며 씁쓸해했었지.
지인들이 회사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면 절반 이상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피로를 말한다. 듣다 보면 그런 천하의 몹쓸 놈이 다 있나 싶기도 하고 참 못난 인간이다 생각하며 혀를 내두르게 되기도 한다.
보기 싫고 거슬려도 일주일에 5번은 마주쳐야 하는 상대, 상처 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남의 말 함부로 하는 상대, 맡은 바 소임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팀에게 피해 주는 상대. 그 상대가 직장에서 내가 마주쳐야 하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끔찍할까.
그런 것을 감내하고 오늘도 아침 일찍 알람에 일어나 준비하고 집 밖을 나서는 직장인들에게 나는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만둘 이유를 도처에 두고도 다녀야 할 이유 때문에 묵묵히 하루를 견뎌내는 책임감의 무게를 짊어진 모두에게.
*누가 먼저 말한 건지 몰라도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는 그 말이 위로가 많이 되었다. 나만 이런 일을 겪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어려움이 있다는 그 유대감에 힘을 낼 수 있었던 지난날을 생각하며 지금 이 순간 지치고 힘든 당신에게 나의 경험담이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