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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Ji Jun 21. 2021

14.나는 움직임을 즐기는 사람

몸치, 저질체력의 나는 마흔이 되고 나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독하게 움직임이 싫었다.

 체육 시간이 되면 배탈이나 두통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질  정도로..


 사람을 맞히 피구를 하는지 , 공에 맞지 않으려고 피해 다니는 심장 떨림이 싫었다.

폐활량이 좋지 않은 내가 체력장을 위해

오래 달리기를  하는 것도..

그로 인해 숨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채로 잔기침을 하는데도 달려가야 하는  상황  자체가  내겐 고문이었고 고난이었다.

덕분에 나는 늘 '저질체력', '걸어 다니는 종합 병원'이란 별명을 달고 다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마흔 중반, 현재 나의 몸은 여전히 저질체력이다.




혈기 왕성할 때에는

심한 아토피 때문에 누군가를 만나거나 어떤 도전을 이어갈 수 없어서  운동이라는 것을 할 수 없었고,

(아니하기 싫었다는  말이 정확하겠다.)

 아토피가 사그라질 즈음에는

이미 무기력으로  움직임을 더욱 싫어하는

  몸이 되어버렸다.


근육을 찢으며 어떤 고통을 이겨내는 것은 있을 수도 없다.

예쁘게 보이려고 날씬해지고 싶어서 굶은 적은 있으나

고통을 참으며 어떤 반복된 행위로 몸을 움직이며

가꾸는 것은 내 생애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친구에게 꼬심을 당해 다녔던  

(그나마 정적인 ) 요가조차 한 달을 채

끝내지 못하고 항상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그만두기 일쑤였다.  

움직임이 싫은 나는 격렬한 운동을 해본 적도 , 하고 싶은 적도  없었기에 당연히 근력도 끈기도 없는 몸이 되었다.

고통에 대한 참을성이 없는 것도

다 이런 원인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 내가 이제는 아침에 일어나서 복부 정화 요가를 하고 하체 스트레칭을 하며 스쿼트, 계단 오르기를 한다. 잠자기 전에도 짧은 스트레칭과 마사지를 주체적으로 한다.

그 누구의 강요가 아닌

자발적인  행동이며

자연스러운 행동이 되어가고 있다.


여전히 헬스장에 가서 무거운 것을 들고

고통을 인내하며 ,

닭가슴살만 먹고 근육을 키우는 행위는

하지 않지만

 그렇게 죽기보다 싫던 몸의 움직임을  누구의 권유도 아니고,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생활 속에서 꾸준히 이어가고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그렇게 되기까지 몇 년간 워밍업의 시간이 걸렸다. (깔짝 거리며 해왔던 팔 굽혀 펴기 한 번, 국민체조, 복식호흡, 목 돌리기 , 요가 등등 )



여전히 지금도  워밍업의 단계를 반복하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건강하고 활력 넘치는 사람들이 보기에  

가소롭고 그들이 말하는 운동량이 아니라서

우스워 보일지 모르나 사십 년 넘게 살아왔던 무의식에서 ‘운동은 괴로운 것이야, 하기 싫어, 고통이야’  생각을  ‘운동은 나를 위해 하는 내 몸과의 대화야, 또 하고 싶어, 인내를 키우는 수련이야.’라고 서서히 변해고 있다는 점이 달라진 성과다.



그렇게 움직이기 싫어했던 내가 '운동을 해보자.' '몸을 움직여 보자.' 변화를 생각했던 계기는 우선, 나를 닮은 아이의 나약한 모습을 보고 나서였고,

그다음은 마흔이라는 나이를 넘고서의 급격한

몸의 변화 때문이었다.


마흔을  넘고 나니

그동안에 운동을 싫어했던 삶의 결과들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저질 체력이라 하더라도

젊을 때는 골골골

아파도 금방 털고 일어날 수 있었지만, 

마흔 이후의  달라져가는 몸은

달랐다.

뼈마디가 쑤시고 내장이 더부룩한

(어릴 적 엄마나 할머니가 하시던  말이

 이해가 되는 ) 그런 아픔이 느껴졌다.

더구나 앉아있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그동안의 시간이 보태져서

여기저기 하체의 부종과

굳은 허리, 뼈 마디 쑤심 등이 점점 심해지고 소화력까지  약해져 갔다.



체력이  없으니 무언가를 끝내는 것,

지속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몸의 지구력, 근력이 없다는 것은

시작과 동시에 참지 못하고

끝내지 못한 수두룩한 일들의 결과로,

내 삶에도  영향을 미치는 듯했다.


이러다가는 진짜 인생 후반기에는

아파서 골골대다가

하고 싶은 일도 못하겠다 싶어

시작한 작은 습관 덕분에

이제는  늦게나마

  내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었다.



작은 습관이라 해봤자 진짜 사소했던  

호흡,

그리고 스트레칭,

조금씩 반경을 넓히며

움직였던 몸의 움직임 등이다.



그것도 처음에는  너무  힘들어

줄였다, 늘였다

포기했다, 이어갔다를 반복한 결과

지금은  아주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이며

내 몸을 돌보고 있다.



사람이 극도로 싫어하는  일을

자연스럽게  하기 위해서는

아예  환경을  바꾸던지

의지력을  써서 꾸준히  관리하던지

아니면

나처럼 변화의 절실함이 있지만

의지력 자체가 없어서

점만 찍는다에 의의를

두고 고무줄처럼  줄였다 늘렸다를

반복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참 결과물도 더디고

과정이 재미가 없다.




그런 반면, 쉬우니 계속 지속할 수 있는

맛이 있다.



거의 5년 이상  매일,

작은 점만 찍다 보니

운동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고

있다.




누군가는  묻는다.


"그 정도 시간이 흘렀으니

 배에 복근이 생기고

 근육의 날씬하고 건강한 몸이 되었겠네요?"



난 대답한다.


"전~~ 혀요"




하지만

이런 건 있다.



극도로 싫어했던  운동이

극도로 싫지는 않으며

근육의 아픔이

고통보다는

아픔 뒤에 오는  이완되는 희열의

맛을 조금 느낄 줄 안다고..

그리고  

마흔 이후부터  죽을 때까지

나의 몸을 잘 달래고

보살피며  움직여보겠노라고..



더불어  계단 오르는 것의 부담감도 없고

계단 오르기 덕분에

따라오는 스쿼트 동작은

너무 재미있게 하고 있다.

아쉬탕가 요가나

하체의 다리 뒤쪽의 찢어지는

아픔 뒤에 유연 해지는

나의 몸을 보는 재미가 생겼다.






지독하게  움직임이 싫었던

나는

마흔을 넘어서야,

조금씩  움직임을 즐기고 있다.

빡센  운동 후의 희열감을

매번 맛보지는  못하지만

나는 움직이는 사람,

내 몸과 대화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단거리가 아닌

장거리  중반부의 인생은

자주 ,가볍게

움직임이  즐거운

삶을 가꾸어보리라  다짐한다.



나는 움직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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