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과 화장품, 오늘의 화장품은 어제의 역사 위에

광복절에 보는 화장품 역사

by Elly K

# K-뷰티 성장사, 산업정책 변화, 화장품 역사, 화장품산업진흥법


2025년은 광복 8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우리가 되찾은 주권과 함께, 억압 속에서 잃어버렸던 우리만의 삶의 방식, 아름다움에 대한 해석, 취향과 표현의 자유도 함께 복원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 속엔 늘 화장품이 조용히 함께하고 있었죠.


‘광복과 화장품’이라니, 어쩐지 어색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오늘의 화장품은 사실 어제의 역사 위에 지어진 결과물입니다.


누군가는 백분을 종지에 덜어 썼고,
누군가는 동네 언니가 들고 온 샘플을 얼굴에 발라보며 설렜고,
지금 우리는 클릭 몇 번으로 원하는 제품을 집까지 받아보죠.

화장품의 역사는 어쩌면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과 취향이 고스란히 담긴 이야기인지도 몰라요.
그래서 오늘은 광복 이후 한국 화장품의 시간들을 천천히 돌아보려 합니다.





1910 ~ 1930년대


"박가분 하나 사 주지 못하는 무능한 남자!"


박가분

국내 최초의 화장품 '박가분'은 지금의 파우더처럼 사용하는 하얀 분(粉)이었습니다. 외제 화장품처럼 향이 좋고, 피부에 곱게 발리는 데다 가격도 저렴해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하죠.
한 달 평균 1만 개 이상 팔릴 정도로 잘 나갔고, "박가분 하나 사주지 못하는 남자는 무능한 남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고 해요. 1916년, 종로에서 포목점을 운영하던 박승직의 아내 정정숙 여사가 손님들에게 덤처럼 나눠주던 백분(白粉)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박가분은 1918년, 특허국으로부터 공식 상표등록까지 받으며 조선 최초의 ‘공식 화장품’이 되었죠. 그러나 납 성분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결국 '화장독' 논란으로 1937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크림을 판매하는 러시아상인, AI생성 이미지

“동동동~ 동동구리무”


이 시기엔 또 하나, 독특한 외래 화장품이 등장합니다. 러시아 혁명을 피해 들어온 러시아 상인들이 '동동동~' 북을 치며 판매하던 크림 ‘동동구리무’입니다. 우리나라에 없던 크림(당시 일본 발음으로 '구리무') 제형은 피부를 부드럽게 가꿔주는 신기한 물건이었고, 이때부터 크림은 필수 화장품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하죠.






1945 ~ 1960년대(광복 이후)



"화장품계에 혁명을 가져온 문제의 제품!"


1960년 10월 30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태평양화학공업사의 ABC미백분 광고

광복 이후, 일본 화장품 업체들이 철수하면서 국내 화장품 시장은 한동안 공백기를 겪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국내 제조업체가 급증했고, 99개 넘는 업체들이 생겨났다고 해요.

광고 속 ABC 미백분을 만든 태평양화학공업사는 ABC 포마드는 물론 크림, 바니싱 크림, 물분, 머릿기름 등 다양한 화장품을 생산하였습니다. "화장품계에 혁명을 가져온 문제의 제품!"이라는 광고의 캐치프레이즈처럼 여러 브랜드의 새로운 화장품들이 속속 출시되어 화장품 산업은 혁명이라고 할만한 큰 발전을 이루었고 한국 화장품의 부활을 알렸습니다. 6·25 전쟁으로 한때 산업이 주춤했지만, 전후 복구와 함께 화장품도 다시 피어나기 시작한 시기입니다.




1960 후반 ~ 1980년대



"방판 불렀으니까 우리집으로 와~"


태평양화학공업사의 방문판매원 [사진=아모레퍼시픽 홈페이지 갈무리]

경제 성장과 함께 여성들의 삶에도 변화가 찾아오며, 화장품 소비도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1960년대 후반부터는 방문판매(일명 '방판')가 활발해졌는데, 전문 교육을 받은 판매원들이 집집마다 찾아가 제품을 소개하고 피부 관리까지 해주는 서비스였죠. 특히 이웃들끼리 한 집에 모여 피부 관리를 받던 기억은 많은 사람들의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시절에는 국내 최초로 화장품이 수출되기도 하였습니다.


컬러TV 속 화장한 여성, AI생성 이미지

화장품 활용이 활발해지고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화장품 브랜드들은 제품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했습니다. 단순히 피부를 꾸미는 것을 넘어, 자신에게 어울리는 메이크업 스타일이나 피부 타입에 맞는 미용법을 찾으려는 시도들도 늘어났죠.

그리고 1980년대, 컬러 TV의 보급은 또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예쁘게 화장한 TV스타의 모습을 따라 하는 유행은 대중들의 뷰티 감각을 더욱 높여주었습니다.





1990년대



"자연으로 돌아가자."


90년대에는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연 유래 성분의 화장품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기초는 물론 색조 화장품까지 식물성 성분을 내세운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고, 홈쇼핑과 인터넷 쇼핑 등이 점차 발전하면서 소비자들이 손쉽게 제품을 비교·구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유통망 확대와 함께 광고 마케팅 경쟁도 점점 더 치열해졌죠. 또한 이 시기부터 주름 개선, 자외선 차단, 미백 등을 중심으로 한 기능성 화장품 시대가 본격화됩니다.




2000년대


"어서 오세요 공주님~"


1세대 로드숍이라고 불리는 브랜드 일부의 로고 이미지

매장에 들어가면 "어서 오세요 공주님~"이라는 인사로 반겨주던 시절이 기억나시나요? ‘에뛰드하우스’, ‘더페이스샵’, '미샤', ‘이니스프리’ 등 저렴하면서도 감각적인 디자인을 앞세운 이른바 로드샵 브랜드들이 등장하면서, 화장품은 더 이상 사치가 아닌 생활의 일부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남성 화장품도 본격적으로 팔리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은 ‘정해진 미의 기준’보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고자 했고, 화장도 자연스러움, 스모키, 생얼 같은 느낌 등 다양한 개성의 화장법이 등장했습니다.

또한 2000년대엔 ‘웰빙’ 문화와 함께 건강한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이 시절, 화장품법이 약사법에서 분리되며 화장품의 특성에 맞는 제도적 관리가 본격화되는데요. 특히, 주름개선, 미백, 자외선차단 화장품이 기능성화장품으로 분류되어 식약처(당시 식약청)의 심사를 받아야 하는 제도가 마련됩니다. 거짓말로 기능성이 있다고 광고하여 소비자를 기만하면 안 되니까요.




현재



"세계로 뻗어가는 K-뷰티"


2025년 현재, 한국은 세계 화장품 수출국 3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프랑스,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독일을 제친 화장품 강국이 된 것이죠. 최근에는 화장품 산업에 날개를 달아줄 화장품산업진흥법 제정도 추진 중이며, 맞춤형화장품조제관리사 제도 등 전문 인력 양성 시스템도 본격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동동구리무’ 시대에서, 지금의 K-뷰티까지… 놀라운 변화입니다.




오늘의 화장품은 어제의 역사 위에 존재한다는 말이 조금 와닿게 되셨나요?

80년 전, 우리는 되찾은 나라에서 다시 ‘나’의 얼굴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간 동안 화장품은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잃어버렸던 나다움, 시대를 향한 감각, 내면을 표현하는 작은 도구로 존재해 왔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어떤 얼굴을, 어떤 취향을, 어떤 아름다움을 그려갈까요?




‣ 국사편찬위원회 운영 홈페이지 '우리역사네' , 한국문화사 페이지 참고.

‣ 유호진,한정호;김도윤;임희동;이환명;박주훈. "시대별 경향에 따른 우리나라 화장품의 역사적 고찰." 기초과학연구 논문집, 19권, 1호, 2011, 141-148.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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