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화장품은 기한이 있다

법이 소비자를 지켜주는 방식

by Elly K

# 화장품법, 화장품규제, 화장품 사용기한, 개봉 후 사용기간, 제조일자, 유통기한, 한글기재


엄마의 화장대에 있던 로션을 썼다가 이상한 냄새가 나는 걸 느꼈다.

제품 뒷면을 보니 사용기한이 2년이나 지나 있었다.

“이건 왜 아직도 갖고 계세요!” 하고 말했지만, 문득 생각했다.

“만약 이 날짜 표기가 없었다면… 나도 그냥 썼을까?”

이처럼 우리는 화장품의 기한을 확인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하지만 ‘기한을 확인한다’는 이 당연한 행위가

우리나라 화장품법의 큰 장점이고, 법이 보장한 소비자의 권리라는 사실.




날짜 한 줄이 지켜 주는 알 권리



화장품을 사거나 사용할 때, 우리는 기한을 알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화장품엔 반드시

1) 사용기한 또는

2) 제조일자 + 개봉 후 사용기간

을 표기해야 하는데요.


그리고 이 표기는 제품의 외포장(2차포장)과 내용물이 담긴 용기(1차포장) 두 곳 모두에 기재되어야 하죠.

사용자가 언제든지 기한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살 때부터 다 쓰기 전까지 말이죠.

(참고로, “소비기한”, “유통기한”이라는 용어는 화장품법에 없습니다. 이렇게 쓰여 있다면 틀리게 표기한 경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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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기본법 제4조(소비자의 기본적 권리) 소비자는 다음 각 호의 기본적 권리를 가진다.

2. 물품등을 선택함에 있어서 필요한 지식 및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


화장품법 제10조(화장품의 기재사항) ① 1차 포장만으로 구성되는 화장품의 외부 포장과 1차 포장에 2차 포장을 추가한 화장품의 외부 포장에는 총리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각각 다음 각 호의 사항을 기재ㆍ표시하여야 한다. 다만, 내용량이 소량인 화장품의 포장 등 총리령으로 정하는 포장에는 화장품의 명칭, 화장품책임판매업자 및 맞춤형화장품판매업자의 상호, 가격, 제조번호와 사용기한 또는 개봉 후 사용기간(개봉 후 사용기간을 기재할 경우에는 제조연월일을 병행 표기하여야 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만을 기재ㆍ표시할 수 있다.

6. 사용기한 또는 개봉 후 사용기간


② 1차 포장에 2차 포장을 추가한 화장품의 1차 포장에는 다음 각 호의 사항을 기재ㆍ표시하여야 한다. 다만, 소비자가 화장품의 1차 포장을 제거하고 사용하는 고형비누 등 총리령으로 정하는 화장품의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한다.

4. 사용기한 또는 개봉 후 사용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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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용기한’이 더 많이 보일까?


화장대에 놓인 스킨을 확인해 봤습니다.

"20280212까지"


우리나라 화장품에서는 이렇게 ‘사용기한’만 표기하는 경우가 가장 흔한 것 같습니다. 제조일자 & 개봉 후 사용기간을 쓰는 경우는 드물어요.


왜 그럴까요?

실제로 화장품 브랜드에서 마케팅을 하는 친구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2025년을 기준으로)

“‘제조 2023년’이라고 쓰는 것보다 ‘사용기한 2026년까지’라고 적힌 게 훨씬 신선해 보이지 않니?”



정보는 같지만, 소비자가 느끼는 체감은 확실히 다르다는 것이죠.

특히 화장품처럼 기분이 선택에 영향을 주는 제품은 작은 표기 하나에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을 거예요.

참고로 대부분의 기초 화장품은 제조일로부터 약 3년까지는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으니,

‘제조 2024년’과 ‘사용기한 2027년까지’는 사실상 거의 같은 정보를 뜻한다고 보면 됩니다.



세계는 제각각, 한국은 조금 까다롭다


화장품 사용기한에 대해 조금만 검색해 봐도, 유럽이나 미국 화장품의 날짜를 못 찾겠다는 고민글들이 많이 보입니다.


유럽에서는 품질 유지 기한이 30개월 이하인 제품에 한해 MMYY, DDMMYYYY, 또는 DDMMYY 같은 방식으로 기한을 표시하도록 정하고 있어요. 하지만 30개월을 넘게 보관할 수 있는 제품은 기한 표기를 생략해도 됩니다. 심지어 미국은 아예 기한 표기 의무가 없죠.


그래서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화장품에는 옆의 사진처럼 한국 화장품규제 기준에 맞는 스티커가 반드시 붙습니다. 이 점은 한국 법이 소비자를 잘 보호하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한때 방문판매가 성행하던 시절이 있었죠.

그땐 제 화장대에 본품보다 샘플이 더 많았고, 샘플을 쓰는 일이 더 흔했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미니어처처럼 귀여운 샘플화장품을 좋아해서 옆의 사진처럼 모아두고 쓰고 있네요.


한 번은 여행 갈 때 쓰려고 서랍 깊숙이 넣어둔 샘플을 꺼냈는데, 손등에 에센스를 짜보니 오묘한 갈색을 띠고 있더라고요.

‘이게 원래 색일까? 아니면 변질된 걸까?’

향이 너무 독특하고 강해서 구분하기가 어려웠고, 알 수 없으니 결국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마 이런 경험,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 같아요.


다행히도, 2017년 2월 4일부터는 국내에서 유통되는 샘플 화장품에도 사용기한 표기가 의무화되었답니다. 덕분에 마음 놓고 샘플을 꺼내 쓸 수 있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낯선 약어 해독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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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FG/ MFD: 제조일자(Manufacturing/Manufactured Date)

‣ EXP: 사용기한/ 이 날짜까지는 제품의 안전성과 효능이 보장됨(Expiration Date)

‣ LOT: 내부 식별 및 추적용 고유번호(제조번호, 배치번호, 로트번호)

‣ 모래시계: 품질유지기한이 30개월 이하일 때 모래시계 기호를 그리고 옆에 날짜 기재

‣ 열린용기: 개봉 후 사용기간 기재(예: 6M = 개봉 후 6개월까지)


위와 같은 영어식 약어는 아는 사람은 알지만, 모든 소비자가 쉽게 알기 어렵겠죠.

그래서 우리나라는 원칙적으로 한글로 기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위의 사진은 해외 화장품도 섞여있어 영어로 된 표기가 많지만, 다른 부분에 우리나라에서 제작한 스티커가 별도로 붙어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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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법」 제12조(기재ㆍ표시상의 주의) 제10조 및 제11조에 따른 기재ㆍ표시는 다른 문자 또는 문장보다 쉽게 볼 수 있는 곳에 하여야 하며, 총리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한글로 정확히 기재ㆍ표시하여야 하되, 한자 또는 외국어를 함께 기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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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사용기한.

작은 숫자 한 줄이지만,

그 숫자가 건네는 건 단지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내 피부를 위한 따듯한 배려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숫자와 함께

보이지 않는 법의 섬세함도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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