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1일. 리얼 백수의 삶 시작.
연차 소진 기간 동안 백수 코스프레를 했다면 이제부터는 진짜 백수다.
사실 지난 한 달간 업무 마무리 및 인수인계 준비, 그리고 늦은 가을 휴가 등 나름 바쁜 날들을 보내느라 제대로 된 여행 계획도 세우지 못했다. 그저 우리는 대략 10월 말에서 11월 말, 올해 안으로 다녀오기 정도의 계획만 세웠을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최소 3주, 우리 가긴 가는 걸까?ㅋㅋㅋㅋ
본격적인 백수의 삶과 함께 여행 준비도 시작되었다. 체코 이야기가 나온 김에 동유럽 여러 국가를 돌기로 했다. 아무래도 유럽이 처음인 나는 그저 R의 계획에 감탄하는 것이 전부였다.
사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처음이라는 핑계 앞에 나는 너무 소극적이었고, 믿을 수 있는 메이트가 있어서였는지 R을 더 많이 돕지 못했다. 함께 가는 여행인데 혼자 너무 많은 짐을 지게 한 것이었다. 여행을 다녀온 지 일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두고두고 후회되고 미안한 마음이 너무 크다. 이미 R에게도 심심한 사과의 말을 여러 번 전했지만 마음이 썩 편치 않다. 사과로 끝낼 것이 아니라 만약 다시 기회가 생긴다면 그땐 내가 최선을 다해 준비해야 하니 여행을 가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의 여행 일정이 드디어 나왔다. 10월 25일부터 11월 14일까지 약 3주간의 여행.
유럽 여행의 비수기라고 하는 10월과 11월이지만 우리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그저 일상을 떠나 여행을 간다는 사실로도 이미 너무 행복하다.
일정이 확실해지니 다른 것들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고 숙소를 정하고 어디를 갈 것인지 조금씩 준비하다 보니 어느새 여행 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퇴직금이 들어온 10월 5일. 여행 가기 20일 전에 티켓을 구매했다.
그간 회사 생활을 하며 겪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비하면 턱도 없는 퇴직금이지만 당시의 기분을 돌이켜보면 보상 심리라고 해야 할까? 내가 이 돈을 여행을 위해 다 써야만 정말로 끊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 어리석고 쓸데없는 생각과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