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샤바 공항에서의 경유는 약 3시간 정도로 급하지 않은 적당한 여유가 있었다. 우리는 폴란드 입국심사를 하려는데 아 영어가 너무 많아. 폴란드어인가. 아마도 혼자였다면 나의 목적지인 프라하 땅은 밟지도 못하고 폴란드 공항에서 국제 미아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다. (아빠 말 틀린 것이 하나 없다)
입국심사부터 쉽지 않았다. 솅겐과 비솅겐 국가로 가는 경유자들의 통로가 달랐는데,
여기서 잠깐!
솅겐(Schengen) 조약이란 유럽 국가들이 국경에서의 검문검색 폐지 및 여권 검사 면제 등 인적 교류를 위해 국경 철폐를 선언한 국경 개방조약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솅겐 국가로 가는 통로로 가야 했고 그 갈림길 앞에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몇 번을 하다 간신히 입국심사를 마쳤다. 휴.
다음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우리는 맥도날드에 자리를 잡았다. 배고픔보단 쉬고 싶었기에 간단히 맥플러리를 주문하고 의자에 앉아 공항을 구경한다.
이제 다시 비행기 탑승 시간이 돌아온다. 바르샤바에서 프라하까지는 약 2시간 정도의 거리였는데 비행기 화장실을 이용할 까 하다가 그냥 공항 화장실에 들렀는데.. 맙소사. 공항이 정말 이러기 있어? 이럴 수가 있다고? 총 4칸의 화장실이 모두 다 초토화 상태였으며 내가 방광염에 걸리면 걸렸지 여기서는 일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그냥 나왔다. 유럽 국가의 화장실 사정은 대충 들어 알고 있었지만 공항이 이러면 너무 배신이지.
간단히 손만 씻고 비행기 화장실을 생각하며 좀 더 참아본다.
비행기에 올라탄다. 우리나라 국내선 정도의 작은 사이즈 비행기였는데 창가 자리에 앉아 밖을 구경한다. 지금 한국은 몇 시지? 이전 비행기에서 잠을 별로 못 잤더니 너무 졸리다. 간단하게 나눠준 빵을 받고 나는 화장실 가는 것도 잊은 채 잠이 들었고 얼마나 지났을까 R이 나를 흔들어 깨운다. 그렇게 꿀잠을 자고 프라하 공항에 도착했다.
그래 나 프라하에 드디어 왔다고. 유럽이라고 여기가.
비행기를 몇 시간을 탔는데 계속 10월 25일에 머물러 있다. 으 실감 난다.
잠이 깨니 화장실 신호가 온다. 부지런히 나와 수하물을 기다리는 동안 공항 화장실로 발길을 옮겼다. 체코 시간으로 밤 10시가 다 되어서 그런지 공항은 한산 그 자체. 화장실을 찾아 바쁘게 가고 있는데 비어있는 수하물 벨트 앞에 어떤 캐리어 하나가 삐딱하게 서있다. 사람은 없고 캐리어만 덩그러니. 우선 급한 일부터 처리하고 자세히 보니 바퀴 하나가 빠진 채 버려진 캐리어였다. 에구. 유럽여행에서 주의해야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퀴 빠진 캐리어라고 하던데. 말로만 듣던 그것을 내 눈으로 직접 보다니. 아 너무 웃기다.
한국에서는 국내선 수하물도 나오는데 한참인데 화장실에 다녀온 그 사이에 벌써 짐이 나왔다. 친절한 R은 나의 (무거운) 캐리어까지 찾아서 기다리고 있었다.(아니 R은 택시를 부르고 있었다) 아, 내 짐 분실 안되고 잘 왔구나. 다시 보니 반갑다. 그렇게 우리는 택시를 불렀고 게이트로 나가는 중이었다.
캐리어가 왜 이렇게 잘 안 굴러가지. 너무 무거운가. 하는 순간 내 캐리어가 한쪽으로 기울어진다. 어 뭐지? 뒤를 돌아보니 멀지 않은 곳에 내 캐리어 바퀴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아.. 아..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하지만 더 놀랄 틈도 없이 바퀴를 주워 들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택시에 올라탄다.
나는 다시 한번 되새긴다.
'버려진 캐리어를 보고 비웃지 말자.'
그 일이 내 일이 될 수도 있다.
덧붙이는 말.
공항에서 파손된 캐리어는 바로 접수를 해야 한다. 공항을 벗어난 순간 항공사에서는 캐리어 파손이 수하물을 옮기는 과정에서 생긴 것인지 판단할 수가 없기 때문에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확률이 매우 줄어든다고 한다.
위의 내용을 다시 보자.
‘더 놀랄 틈도 없이 바퀴를 주워 들고 택시에 올라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