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벽돌 3층집

by 엘샤랄라

내가 4학년 때, 진짜 우리 집이 생겼다. 두 대 정도의 차가 너끈히 지나다닐 수 있는 도로변 옆으로 난 골목길로 들어가 오른쪽 바로 두 번째 집이다. 내 키보다도 높은 대문이 있고, 그 옆으로는 한자로 쓰인 문패가 달려있다. 집을 들어설 때마다 문패 하나가 던지는 위엄이 남달랐다. 그건 아마도 아버지 성함에 '용 용'자가 들어가서일까. 3층짜리 건물이었던 우리 집은 검붉은 벽돌로 빼곡히 쌓아 올린 집이었다. 담장도 동일한 붉은 벽돌이었기에 아직 옛 모습을 하고 있던 누루 죽죽 한 색의 시멘트로 밋밋하게 덮여 있는 주변 건물에 비하면 반짝반짝 빛이 났다. 비록 골목 안쪽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우리 집 앞을 빼고는 주변으로 모두 단층짜리 건물이 대부분이었기에 3층으로 올라서면 시야에 막힐 것이 없었다.


계단을 올라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선다. 반 지하 형태로 두 집, 1.5층이라고 해야 할까, 그곳에 두 집, 그리고 3층이 우리 집이다. 3층으로 올라가는 문은 원래 개방되어 있었지만, 주인집임을 공고히 하고 계단에 쌓아 둔 물건들을 지켜야 했기에 어느 틈에 중간문이 추가로 설치되었다. 그리하여 집까지 올라가는 데만도 나는 문을 하나, 둘, 세 개는 열고 들어가게 된 셈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어쨌든 이제 나에게도 내 방이 생겼으니까.


눈부신 태양 빛을 받으며, 대리석 계단을 오르고 현관문을 연다. 오른쪽 한편에 신발장이 있고, 바로 거실이다. 모든 것이 새것이었다. 누려보지 못했던 호사에 나는 구름 위에 둥둥 떠 있는 기분이었다.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화분이 놓였고, 벽 한쪽으로 널찍한 텔레비전이 자리를 잡았다. 그 벽을 맞댄 자리에는 새까만 전축이 있다. 그 전축은 테이프, CD, 레코드판, 라디오까지 듣지 못할 노래가 없이 완벽한 구색을 갖추었다. 그 높이로 양 옆에 스피커까지 짱짱했다.  부모님은 이 전축을 이사 기념으로 집들이를 하면서 '노래방 기계'로 몇 번 사용하신 게 전부였다. 나중에 이 기계를 가장 많이 쓴 사람은 어쩌면 우리 가족 중에 나였을 것이라 자부한다.


신발장 옆으로 큰 창문이 나 있었고, 사파이어색의 가죽 소파가 창가 앞에 놓였다. 이 전까지 누려보지 못했던 완전한 신식 생활구조였다. 그리고 엄마는 나에게 영창 피아노를 사 주었다. 당시 삼익 피아노와 영창 피아노는 라이벌처럼 대결 구도였는데, 우리 집은 영창 피아노라며 친구들에게 어찌나 자랑을 했는지 모른다. 마치 내가 그 회사의 관계자인 것처럼. 하지만 어쩐 일인지 친구들 대부분은 삼익 피아노를 가지고 있었다. 어쨌든 집에 피아노가 있어야 할 정도로 피아노를 잘 치거나 열렬히 연습하는 편은 아니었어도 뭐든 열심히 배우니, 엄마 눈에는 그런 나에게 피아노 한 대쯤은 있어야 한다 생각하셨는지, 그렇게 피아노가 그곳에 놓여 있었다. 나에게는 그저 하늘에서 뚝 떨어진 피아노였다. 그렇게 나는 새 집으로 이사하게 되면 꼭 사야 하는 물건 중 하나가 피아노인 줄 알았다. 피아노 옆으로 이제 내 방이다. 그 옆으로 남동생 방이었고, 가장 안쪽에 안방과 부엌이 자리 잡았다.


부엌으로 가는 길목에는 멋들어진 밤갈색 장식장이 거나하게 자리를 잡았고, 그 안에는 위스키를 비롯하여 하나, 둘씩 무언가가 놓였는데 그 안의 내용물은 자주 바뀌었다. 아버지가 한 번씩 손님들과 꺼내 마시고 채워 넣고 마시고 채워 넣었다. 장식장이라기 보다 술 진열대 같았다. 나중에는 동생과 내가 우리들에게 소중한 것이라며 하나, 둘 말도 안 되는 잡동사니들을 나름 구역을 정해서 진열해 놓는 본디의 목적은 상실해 버린 그저 그런 진열장이 되었다.


그때 그 시절 내 방은 순전히 엄마 취향으로 꾸며졌다.그런데도 뭐 하나 흠 잡을 게 없을 정도로 나는 그 방에 폭 감겼다. 손이 퉁퉁 붓도록 아침나절부터 가게에 딱 붙어서 장사만 하시느라 집안 꾸미기 같은 거에는 별로 관심도 없는 줄 알았는데, 엄마가 꾸며 놓은 내 방은 지금 생각해도 썩 괜찮았다. 하긴 우리 엄마는 유치원 때, 나에게 옷을 입혔던 것만 봐도 남다른 사람이긴 했다. 양쪽 눈이 올라가도록 바짝 잡아당겨 잔머리 한올 삐져 나오지 않게 묶은 머리에 청청 패션으로 입히기도 했고, 망사가 멋들어진 원피스도 여러 벌 사서 입혔다. 어쩌면 예쁘다 싶은 옷은 그때 다 입어 봤을까. 정작 본인은 언제나 기름때 묻은 앞치마를 벗을 날 없는 날들을 보내면서도.


방 안을 야무지게 채운 가구들에는 신부는 빨갛고 신랑은 파란 전통 혼례복을 입은 이미지로 만들어진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파스텔톤의 연한 분홍색과 회색의 조화로 이루어진 책상과 옷장, 침대까지 모두 한 세트다. 동일한 구성으로 남동생은 연한 파란색과 회색의 조화로 이루어진 가구다.나는 나름 누나라고 부모님은 나에게 더 큰 방을 배정해 주었다. 난 그게 당연하다 생각했고, 내가 누리는 특권에 고마운 줄 몰랐다. 커튼과 침구는 솜씨 좋은 집에 엄마가 직접 주문해서 만들었는데, 분홍색 바탕에 알록달록한 물방울무늬가 가득했다. 순면으로 만들져서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었을 때에 바스락 거리는 그 기분에 누워서도 어쩔 줄을 몰라 나는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다가 두 발과 두 손을 허공에 대고 마구 파닥거리며 신나 했다.


부모님은 공부하라 원체 잔소리 같은 건 하시지 않는 분이셨지만, 새 책상에 맞게 재단된 차가운 유리에 팔을 올리고 새 학기를 맞아 구매한 전과를 펼치며 공부는 저절로 되었다. 내일 배울 내용이 어디인지 확인하고, 밑줄을 친다. 선생님께서 질문하실 때에 자신 있게 손을 쭉쭉 뻗치며 가장 먼저 대답할 나의 모습을 상상하니 공부가 신이 났다. 거실에서 들려오는 텔레비전 소리는 아득하게만 들렸고,내 공부에 크게 방해되는 정도는 아니다. 새 의자에 앉아 이제 나는 학생으로서 열심히 공부할 일만 남았다 생각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가게 안에 딸린 한 칸짜리 방에서 다시 찻길 건너 집에서, 또다시 찻길 건너 가게 뒤편 주택의 이층짜리 집으로 몇 번 이사를 왔다 갔다 한 기억이다. 언제나 우리는 한 방에서 지냈었다.이사오기 직전에야 방이 두 개였다가 이젠 방이 세 개에 거실까지 딸린 집이 우리집이 되었다. 이 집으로 오기 위해 그만큼 부모님은 1년 365일 중 설 명절과 추석 명절 당일 하루 빼고 아침부터 밤 10시까지 꼬박 일에 매달린 시간이었다. 열심히 일한 만큼 근면과 성실이라는 기준으로 그에 합당한 보상이 차곡차곡 쌓이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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