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

by 엘샤랄라

하교 후 집으로 가는 길이 바뀌었다. 전에는 학교 후문에서 죽 걸어 내려오다가 오른쪽으로 꺾어야 했는데, 이제는 그냥 아래로 아래로 걸어내려가기만 하면 우리 집이 나온다.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길을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걸어왔다. 그래도 새집은 여전히 좋다. 신이 나서 현관문을 여는데 집 안이 불이 난 것처럼 뿌옇다. 거실에서 외할머니와 동네에 살던 외할머니 친구분들이 잔뜩 모이셨다. 간단히 인사를 하고 창문을 활짝 열어재낀다. 조용하던 집이 북적거린다. 옹기종기 단독주택들이 모여 있던 곳이었기에 따로 어르신들이 모여 놀 만한 경로당은 없었다. 집들이 명분으로 어쩌다 우리 집이 경로당 노릇을 톡톡히 하게 되었나 보다.


부모님은 모두 집이 아닌 가게에 계시니, 이제 이 집의 주인은 나다. 우리 할머니는 가족이지만, 처음 뵙는 할머니들도 있어서 손님이라 생각하니 챙겨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되지도 않는 솜씨로 냉장고에서 과일을 주섬주섬 꺼내서 화투 치며 노시는 할머니 옆에 올려다 드리고, 할머니들 좋아하시는 달달한 믹스커피도 인원수대로 타서 내왔다. 우리 집이 생긴 이후로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아졌고, 집안이 북적거리니 괜스레 기분이 들뜬다. 큰 외삼촌댁과 함께 사는 할머니를 이렇게 자주 뵐 수 있다니 나와 동갑인 친척에게서 할머니를 빼앗아 온 것만 같다. 하지만 이마저도 초반에만 좋았지 며칠 반복되니 시들하다. 우리 집은 새집인데, 할머니와 할머니 친구분들 때문에 조만간 헌 집이 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이 들 즈음, 33-14번지 경로당은 자연스레 파하였다.


부모님이 하시는 가게는 주말이면 특히 더 바빴다. 할머니가 사시는 동네는 우리 가게에서 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었는데, 토요일 오후 가장 바쁜 시간이 끝날 때 즈음이면 종종 가게에 들르셨다. 오셔서 그냥 가시는 법이 없다. 다음 날 쓸 양파를 한 자루 가득 깎아 주시거나, 잔뜩 쌓여있는 설거지를 손수 해주신다. 말보다 몸이 바지런한 할머니는 엄마에게 이래라저래라 잔소리하시는 경우도 없었다. 그렇게 할머니는 자기 딸 도와줄 수 있는 일이면 아낌없이 다 해주고 나와 동생을 부른다. 할머니네 가잔다. 그러면 우리는 할머니 뒤를 쭐래쭐래 따른다. 할머니의 양손을 사근사근하게 잡고 가진 않는다. 할머니의 걸음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지만 우리는 할머니와 거리를 좁혔다가 떨어뜨렸다가 그래도 결국 놓치지 않고 따라간다.


가는 길에 지인이라도 만나면 할머니는 가던 길을 멈추고 자신의 손주, 손녀라며 꼬박꼬박 인사를 시킨다. 그러다가 운이 좋은 날이면 용돈을 받았다. 오며 가며 만나는 얼굴은 매번 바뀌었고, 그럴 때마다 우리는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할 뿐이다. 어느덧 외할머니댁인 줄 알고 도착했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그곳은 큰 외삼촌댁으로 바뀌어 있다. 우리집처럼 2층짜리 단독주택에 층고는 우리집보다 높고, 거실벽에는 밤갈색의 나무판이 결대로 덧대어져 있다. 도착하자마자 어영부영 동갑내기 친척과 논다. 그러다 막상 잠이 들 때 즈음 어쩐지 허기가 진다. 그 순간을 큰 외숙모는 귀신같이 아시고 후다닥 김치볶음밥을 볶아 내주셨다. 우리 엄마는 중화요리 담당이라면 큰 외숙모는 한식 담당이다. 명절 때마다 바구니 한가득 부쳐주신 전과 입에 감기는 식혜는 내가 외할머니댁을 찾아오는 낙 중에 하나였다.


조금씩은 어려운 관계, 살뜰하게 챙겨주시는 건 없었어도 동생과 내가 하룻밤 편히 잘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던 시간이었다. 그런 큰 외숙모를 오래, 더 오래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시간은 너무도 짧았다. 5학년 때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데, 담임 선생님께서 얼른 집에 가보라 하셨다. 학교에 온 아이를 왜 가라 하나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리둥절한 사이, 곧 그 연유를 알게 되었다. 큰 외숙모가 돌아가셨단다. 무슨 일인지 몰랐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헤어질 수 있는 건지 알지 못했다. 상이 치러지는 내내, 이모들과 삼촌은 황망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그저 큰외삼촌과 그 딸이 딱하고 또 딱할 뿐이었다.


그때는 상을 치를 때에 장례식장이 아닌 할머니 집에서 치렀다. 염을 하시는 분들이 직접 집에까지 찾아오셔서 일을 봐주셨다. 어린 우리들은 그 과정을 일일이 보진 못했다. 다만 밤이 되어 모두 할머니댁에서 자야 할 때에 안방 한편에 관이 놓여 있었다. 어렴풋이 그 관 안에 외숙모가 계시다 이야기를 들었다. 설마설마하며 나는 남동생과 친척들 사이에 몸을 딱 붙이고 눈을 감았다. 꿈뻑꿈뻑 잠이 들려는데, 잠이 오질 않는다. 옆에 더 바짝 몸을 붙여 본다. 이미 돌아가신 외숙모와의 추억을 떠올렸다. 여전히 외숙모는 내 마음속에 살아계신데, 지금 저 나무상자 안에 누워계시다니. 무서운 마음에 심장이 떨렸지만, 무서워하는 마음을 외숙모가 아시면 서운해하실 것 같아 무서워하지 않기로 했다. 심호흡을 하며 눈을 감았다. 그렇게 하루가 갔다.


딱 하나뿐인 큰 며느리를 먼저 보내고, 둘째 외삼촌의 며느리는 아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이민을 가버렸다. 그리고 남은 막내 외삼촌. 복잡한 속내는 자세히 알 길이 없었지만 어찌 되었든 아들이니 뭣이든 챙겨주길 바랐는데, 할머니 주머니에서 딱히 나올만한 것이 없었는지 서서히 왕래가 끊겼다. 나에게 우리 할머니는 그렇게 야박하고 심술궂은 사람이 아니었는데 왜 우리 할머니는 이토록 며느리복이 없었던 건지, 다시 생각해도 어려운 문제다.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꿈속에서 몇 번이나 할머니 장례식을 치렀다. 나 혼자만의 꿈이었기에 괜한 꿈 이야기를 했다가 엄마 마음이 슬퍼질까 싶어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그런 꿈을 꾼 날이면 할머니에게 전화 한 통을 더 하고, 시간을 내서 찾아뵈었다. 그러면 할머니는 여전히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며 나의 마음을 안도하게 하셨다. 그러다 결국 할머니가 위독해지시는 날이 왔다. 아이들이 아직 어렸기에 크리스마스라며 주변 엄마들은 어떤 이벤트와 선물을 해줄꺼나 부산스러웠지만, 나는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꼭 외할머니에게 다녀와야 할 것만 같았다. 모든 일을 제쳐두고 꼭 외할머니를 뵈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날 할머니를 찾아뵈었다. 한층 말라버리고 쪼그라든 할머니의 모습, 정신이 나갔다 들어오시길 반복하시지만 그 날 만큼은 우리를 알아보셨다. 그리고 딱 일주일 뒤 할머니도 큰 외숙모 곁으로 가셨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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