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시절, 마음이 맞아 단짝처럼 다니던 친구에게 한 소리 들었다. 홍대 앞 거리를 걸으며, 시도 때도 없이 친구를 붙잡고 저 사람 옷이 특이하다느니, 머리 색깔이 신기하다느니, 옷이 너무 착 달라붙지 않았냐느니 궁금한 게 많아 나는 옆에서 참 수다스러웠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교복만 입고 학교와 도서관만 왔다 갔다 하던 햇병아리가 서울의 큰 대학에 들어와 학교 생활을 하다 보니, 아무리 학교 앞으로 수십 번 왔다 갔다 했어도 호기심이 이는 사람들이 넘쳐났고 나는 그 호기심을 풀 곳이 없어서 친구를 붙잡고 하소연하듯 쏟아냈던 것이다. 내가 하도 정신 사납게 굴었던지 친구는 이제 그만하라며 버럭 짜증을 냈다. 그 친구는 자신과 상관없는 사람이라면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눈길조차 주지 않는 친구였고 나는 아직 친구를 잘 몰랐다.
남편은 가끔씩 지인들의 근황을 전한다. 나도 몇 차례 인사드린 적이 있어 안면이 있는 분이시다. 남편 지인의 아버지가 갑자기 사고로 병원에 입원하셔서 형님이 왔다 갔다 바쁘시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 나는 궁금하다. 사고라 하면 어떤 사고냐, 어디를 어떻게 다치신 거냐, 상황이 심각한 거냐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하지만 남편의 대답은 어째 어정쩡하다. 그렇게까지 깊이 있게 물어보지 않았단다. 물어볼 의도와 생각조차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남편의 성향을 알고 난 이후부터는 남편이 지인의 근황을 이야기해 주면 딱 그 정도로 알아듣고 그 선에서 멈춘다.
나는 나를 잘 몰랐다. 그러다가 글을 쓰며 알게 되었다. 먼저 시도 때도 없이 연락하며 살갑게 안부를 묻지는 못하지만 언제나 마음속에서 소중하다 생각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담았다가 지웠다가 담았다가 지우길 반복한다. 그러다 연락이 닿게 되고 그 한 번의 연락에 참 단순하게 진심이다. 그 집에서 매일매일 밥상 위에 어떤 저녁 반찬이 올라가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나름의 방식대로 열심히 살고 있고 또한 그럴 것이라 믿어 준다. 그러는 한편 내가 자리한 공간 속에서 나를 주변으로 일어나는 상황에 티는 내지 않아도 무척 민감하게 반응할 줄 안다.
학부 시절, 친구 앞에서처럼 호들갑을 떨며 티는 내지 않아도 그래서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내심 궁금해하면서 생각보다 많은 면면들을 관찰한다. 물론 나는 티 내지 않았다 했지만, 바라보는 제삼자의 입장에서는 또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친구들과 대화할 때에도 아주 가끔씩 내가 대화의 주도권을 잡기도 하지만 보통은 들어주는 편이다. 들어주다가 꽂히는 부분에서 흥분하며 나의 이야기를 쏟아 내기도 하지만. 가만히 앉았다가 둘러보고, 또다시 그의 입장이 되어 보며 관찰하기를 즐기다가 그의 말과 향기, 소리, 몸짓이 나의 기억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깃털처럼 한 겹 한 겹 내려앉았던 기억의 단상들을 다시 한 겹 한 겹 들어 올리며 이야기를 써낸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에는 나의 이러한 둔한 듯 또한 민감한 반응들에 대해 주변에서 이야기할 때에 참으로 쓸데없이 생각 많고 질문 많은 피곤한 사람이라 나 스스로도 경계하였다. 그래서 더욱 주변에 대한 신경을 끄고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에 집착하듯 달려 나갔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세상과의 연결점을 차근차근 차단할수록 나는 해방감을 느끼기는커녕 느닷없는 결박에 옴짝달싹 못하는 것이다. 나의 감각으로 세상을 보며 느끼고 관찰하고 다시 풀어내야 하는데 그러한 과정이 없이 살아지는 대로 살라 하니 삶이 살아지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듣고, 보고, 만지고, 느꼈던 모든 것들을 그림을 그리듯 글로 풀어내며 나는 나를, 나의 인생을, 세상을 더 깊이 있게 알 수 있다. 바로 그 알아가는 즐거움이 나를 순환시키고 살아 숨 쉬게 하고, 생동감이 넘치게 하는 원동력이다. 심장이 뛰고, 몸에 전율이 일고, 내 몸의 털 한가닥 한가닥씩 곤두서게 하는 그 무엇이 없이는 나도 없다. 다 알 수는 없지만 조금 더 알기 위해 나는 기꺼이 오늘도 나를 백지에 풍덩 던져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