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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샤랄라 Apr 04. 2024

무엇이든 물어보살

사람사는 이야기의 진수

요즘 핫한 드라마? 재미있지. 그런데 그건 좀 비현실적이잖아. 특히 나는 내가 사는 세상과 상관없는 재벌집 아들이나 회장님과 궁상맞은 식구들과 비벼대며 살고, 온갖 고난을 몰고 다니는 그런 여주인공과의 로맨스를 기본으로 하는 이야기는 딱 질색이야. 보고 있자면 시간 낭비 하는 것 같아서 별로더라. 로맨스를 갖다 붙이는데, 말이 되야 말이지. 그런 드라마들은 정말 여성의 허영심을 더욱 부추기는 이야기들 같아. 그런 진지함 쏙 빼고 요즘같이 봄꽃이 흩날릴 때에 달달 로맨스가 그리우면 한번 씩 볼 수는 있겠지만 여전히 그거슨, 내 취향 아님. 


잔잔하게 흘러가는 이선균과 아이유가 열연했던 '나의 아저씨' 나 '나의 해방일지' 속 로맨스가 더 현실감 있어서 좋더라. 상대방의 가장 취약한 부분까지 서서히 감싸 안아주는 그런 사랑, 당신이 가장 잘나갔던,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만을 보듬어 주는 그런 사랑 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게 될 수 밖에 없는 현실적이면서 또한 비현실적인 것 같은 사랑, 그리고 혼자가 아님을 알려 주는 그 소소한 시그널들을 크리스마스의 선물을 뜯어 보듯 펼쳐 놓는 구성이 좋더라고. 난 그게 좋아. 내가 좀 우울한 면이 있는 건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 너무 일찍 철이 들어서 그런 건가봐. 그런데 그 철든 사랑이 또 나의 체온처럼 지속가능한 사랑이라는 것도 좀 알 것 같아. 


이십 대에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며 아이 둘을 낳고 살면서 나는 더 깊이 있는 사랑을 알게 되었어. 학창 시절에는 죽어라 내 공부만 신경쓰다 보니 나에게도 공감 능력이라는 것이 있는가 싶었을 정도로 연애 세포가 과연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인간미가 뚝뚝 떨어 졌었는데, 그건 나의 기우였었나봐. 고3 시절이 딱 끝나니까 세포들은 대나무처럼 그냥 쑥 커버리더라고. 그러면서 사랑을 알게 되었지. 하지만 그 사랑도 깊이를 더하고 무르익기 까지는 이십년의 세월이 필요했어. 


그 세월을 보내고 종종 시청하는 TV는 예전과는 달라. 진짜 웃을 수 있고, 진짜 눈물이 흘러. TV 속 음향효과로 왜 사람들 웃음소리 넣어 주잖아. 난 그런 포인트에서 혼자 못 웃고 공감 못한 적이 많았거든. 눈물 포인트도 그래. 쥐어 짜도 눈물이 흐르지 않더구만, 이제는 나도 같이 감정이 이입이 되어서 웃고 울고 연기자가 따로 없다니까. 그런 감정이입이 정말 잘 되는 프로그램이 요즘 나에게는 '물어보살' 이야. 이수근과 서장훈의 케미도 너무 환상적이고, 특히나 가감없이 정색하며 말해주는 진중한 조언이 너무 마음에 드는 거야. 모나미볼펜으로 진심을 다해 받아적는 거 뭔데? 그럴 때마다 카메라감독님 클로즈업 하시는데, 딱 내스타일이야. 어쨌든 두 진행자가 해주는 조언들, 사실 가까운 사람이어도 하기 힘든 말이잖아. 하지만 상담하러 온 사람에게는 약이 되는 말이구. 개의치 않고 해주는데 진심이 느껴져. 


어제도 나는 이번주 물어보살을 챙겨 봤더랬지. 우리집에는 본 TV는 안나오고, 넷플릭스만 나오는데 다행히 '물어보살'이 있더라고. 그저 지하철만 타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 나와서 저마다의 사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데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느낄 수 있는 연민, 동정, 사랑을 자연스럽게 되살려 주는 따뜻한 프로그램인 것 같아. 이번주는 특히 구성이 감동적이었어. 봄을 맞아 연애하고 싶은 선남선녀가 각자의 고민 때문에 나왔는데, 그 고민들이 오히려 장점으로 승화될 수 있도록 알아봐 주는 짝을 진행자들이 엮어 준거야. 내가 너무 순진한건지, 정말 이건 짜고 치는 고스톱 같다는 생각은 안들었거든. 그리고 무에타이 관장님과 뷰티브랜드 CEO의 모습도 너무 사랑스러웠고. 그 어느 개그 프로그램 보다 재미져서 눈물 날 정도로 웃었지 뭐야. 그렇게 재미있을 수 있는데 한몫 한 건, 또 PD님의 편집능력도 때문인 것 같아. 출연자들을 스티커처럼 잘라서 적재적소에 활용한 장면이나 상황에 맞는 배경음악이 찰떡이었어. 


두 번째 게스트는 그 옛날 광산에서 일하다 만났던 은인 두명을 찾으러 나온 아저씨였어. 요즘은 백세시대 잖아. 듬직하시고 말끔하시니 너무 보기 좋더라고. 인생 후반부 나의 젊은 시절을 살뜰히 챙겨 줬던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찾으러 나온 아저씨였는데, 가슴 저 한 구석부터 따뜻해 지는 거야. 참 잘 살아 오셨구나, 그리고 지금도 잘 살고 계시구나. 인간과 인간이 만나서 서로를 보듬어 주고 정신없이 바쁜 시절을 보내느라 찾아 뵙지 못했는데, 그래도 잊지 않고 이리도 인연을 찾기 위해 방송까지 출연하시니 그 간절함이 나의 조그만 스마트폰을 뚫고 나올 지경이더라고. 아이들 재우고 몰래 보느라 스마트폰에 헤드셋 끼고 봤거덩. ㅋㅋㅋ 캬, 저런 인연도 또한 인복이라 생각하며 나도 누군가에게 세월이 흘러도 만나고 싶은 사람으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쫌 잘 살아볼까 했지. 


마지막 게스트는 너무 마음 아픈 사연자 였어. 지병이 있었지만 그래도 꾸준하게 병원을 10년간 다니면서 밝고 건강하게 자라 준 둘째딸이 어느 날 갑자기 심장마비로 아버지의 곁을 떠난거야. 너무나 갑작스러웠기에 아버지는 아무 준비도 하지 못했고, 아직도 딸 아이를 보내 줄 수가 없어서 괴로운 나날들을 보내고 계신 가장이었어. 온 가족이 함께 찍은 사진이 중간에 나왔는데, 비록 지금은 여기 없지만 따님이 정말 행복한 가정 안에서 사랑 많이 받고 살다 갔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진행자의 조언에 따라 이제는 마음 추스리고 따님의 몫까지 정말 열심히 행복하게 사셨으면 하는 바램을 나도 같이 했어. 첫 번째 게스트 때는 너무 웃어서 눈물이 났는데, 마지막에는 너무 가슴이 떨려서 눈물이 나는 거야. 오늘 진짜 PD님이 작정을 하셨구나 싶더라. 


우리네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누구나 가슴 한켠 말못할 고민이 있고 슬픔이 있다는 것을 알게 돼. 과거의 나는 왜 나에게만 자꾸 이런 불행한 일이 닥치는지 묻고 또 물으며 살아 왔다면 지금은 달라. 그러한 시련과 고난들은 누구에게나 찾아 오는 것이고 또 그런 힘겨웠던 시절을 이겨 내면 더 단단해져서 이 세상을 살 수 있게 될테니 무너지지 않아도 된다고 나 자신을, 주변을 다독이게 돼. 나만 괴롭고 힘든게 아니었어. 누구나 적어도 한 번은 겪는 일이더라고. 너무 나를 짓누르지 않아도 되는구나. 훌훌 털어내고 훨훨 날자 싶어. 그리고 그렇게 자유롭게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온 마음 다해 사랑하고, 또 나로 인한 인연들에게 따뜻한 미소를 아낌없이 보여주면 이미 그것으로 나는 행복한 삶을 사는거야. 우리 부디, 희망을 잃지 말고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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