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상)

by 엘샤랄라

날이 참 좋은 여름에는 창문을 활짝 열어 놓는다. 현관문만 열면 사방으로 바람이 들이쳐서 집이지만 집이 아닌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일방통행으로 부는 바람이 아니므로 고작 3층이었는데도 온몸에 입체감이 든다. 집 주변으로 맞닿은 높은 건물이 단 한 채도 없었기에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해가 뜨고 지는 것부터 바람의 맛까지 땀을 흠뻑 흘리고 거실 한가운데에 벌러덩 누워 있으면 발가락과 손가락 끝에서부터 나른한 행복감이 간질간질 차오른다. 한 여름에는 대나무의 결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대자리를 거실 한가득 깔아 놓으면 찬기가 등으로 훅 전달되어 열기를 식히기에 제격이다. 그러다 스르륵 잠이 들어 자국이 남기도 하지만.


바람이 살랑살랑 나를 부를 때에는 거실의 한 벽면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창문에 기댄 청록색 소파로 간다. 소파 등받이에 가슴을 받치고 무릎을 세우면 단층의 집들과 풍경을 가득 채우는 하늘을 맞닥뜨린다. 하염없이 하늘이 보여주는 그림을 감상할 시간이다. 하늘을 지켜보고 있으면 별 거 없는데 별 게 있을 것 같다. 그냥 구름인 것 같은데 아닌 것도 같다. 분명 나는 혼자인데 혼자라는 생각이 안 들게 해 준다. 혹시나 할 말이 있을까 궁금해지는 얼굴이다. 호흡은 순탄하다. 향에 예민하게 굴던 나이는 아니었지만, 무향과 무취의 그 신선함을 알았다. 그랬기에 바람이 보내는 춤사위를 코로 만끽했다.


그러다 예기치 못한 맹렬한 냄새에 코 끝이 찡하다. 무언가 타고 있다. 종이 나부랭이를 모아서 태우는 냄새는 아니다. 냄새의 발원지를 찾아 거실 창 밖을 두리번거려 보지만 연기는 보이지 않는다. 그건 나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냄새였다. 손 끝의 온기를 서서히 앗아가면서 털이 쭈뼛쭈뼛 서게 한다. 안온했던 마음에 서서히 균열이 가면서 나는 소파를 박차고 집 안의 창문이란 창문은 하나씩 모두 찾아가서 주변을 살펴보았다. 의심이 가는 현장은 없었기에 결국 현관문을 열고 나가본다. 아주 작은 욕실 창문 말고는 유일하게 창문이 나 있지 않은 바로 그 방향으로.


그쪽은 비교적 넓은 골목길 방향이며, 바로 앞에는 우리 집보다 조금 더 높은 상가 겸 주택 건물이 있다. 우리 집 앞에 있지만 앞마당은 없고 뒷마당이 있다. 바로 그 뒷마당에 아저씨들이 모여 있다. 그들 앞에는 정확하게 형체를 알 수 없는 아주 새까맣게 그을린 긴 형체가 들려져 있었는데, 그것에 아저씨들은 부탄가스에 연결된 토치를 사정없이 들이대고 있었다. 불을 보았기에 냄새의 근원지가 그곳인 건 알았는데 저 까만 것이 무엇일지 처음에는 가늠이 안되어서 갸우뚱하다가 한참을 몰래 지켜본 후 몸을 돌려 집 안으로 들어서려는데 그건 아마도 '개'일 수도 있겠다는 확신이 들면서 가슴이 철렁했다.


순간 내가 맡고 있는 저 냄새를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능하다면 하나하나 포집하여 감춰야 한다는 사명감에 사로 잡힌다. 우리 집 옥상에서 아무것도 모르게 평화롭게 쉬고 있을 우리 집 진돗개 '메리'가 있다. 나는 후다닥 옥상으로 올라가 본다. 다행히 우리 집 개 메리는 나를 보며 신나서 그 큰 꼬리를 거침없이 흔들어 대며 달려들 뿐 끼깅거린다던지 하는 불안 증세는 별로 보이지 않았다. 단독 주택의 매력은 마당이든 옥상이든 내 마음대로 개를 키울 수 있다는 점이었는데, 아버지가 이 집을 지어주신 덕분에 나는 그 장점을 원 없이 누릴 수 있었다.


메리는 아빠가 데려와 키우는 개였다. 강아지였을 때 메리의 기억이 없다. 하지만 나는 메리가 좋았다. 라디오에서 우연히 사연을 듣고 그 집에서 개이름을 '메리, 크리스, 마스' 이렇게 쪼개서 부른다길래 나도 따라 해봤다. 나의 첫 개 이름은 내가 지어준거나 다름없다. 토종 한국개지만 영어 이름을 지어준다는 게 처음에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 듯했지만 되려 그 이질감이 부를수록 마음에 들었다. 메리의 그 큰 눈망울을 보고 있으면 나의 눈까지 촉촉해지는 것만 같다. 메리 앞에서는 별 말이 없어도 나는 그냥 나 일 수 있었다.


요즘처럼 목욕시키고 예방접종 맞추며 키우는 애완견 느낌보다는 사실 메리는 그냥 '개'였다. 하지만 내가 메리를 정말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건 앞발을 올리면 내 허리춤까지 오는 그 큰 개가 단 한 번도 나나 우리 집 식구들을 해한 적이 없었고, 메리를 보기 위해 옥상에 올라갈 때면 신나서 달려오거나, 행여나 줄이 묶여 있을 때조차 줄이 끊어질 정도로 뒷발로 서며 안아달라 하는 모습이 뻣뻣했던 나를 녹여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개는 정말 똑똑했다. 나는 메리를 대동하고 해가 진 이후에도 집 근처 공원으로 종종 산책을 나갔다. 해가 졌지만 혼자 나갈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내 곁에 듬직한 메리가 있다는 이유 하나였다. 메리가 나를 지켜줄 것이라 철석같이 믿었다.


그런 메리를 줄을 잡고 나가면 신나게 달리고 싶어 하는 몸짓이 나에게까지 전달되어 사람이 있나 없나 눈치를 보고 슬쩍 끈을 풀어주곤 했다. 요즘 같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그땐 그래도 뭐라 하는 사람 하나 없었다. 끈을 풀어줌과 동시에 메리는 거짓말 하나 보태서 아프리카 초원의 치타처럼 온몸의 힘을 다해 공원 운동장을 뛰는 것이다. 그런 메리를 처음에는 눈으로 좇다가 놓친다. 놓치면 한 번씩 메리야하고 불러 본다. 그럼 여기저기서 메리가 튀어나온다. 안심하고 나는 나대로 운동을 한다. 집에 갈 때쯤이 되었다 싶을 때 다시 메리를 불러 보지만 메리가 대답이 없다. 그래도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집으로 간다. 집으로 가는 길에 어느새 내 뒤에 메리가 바짝 따라왔다. 그렇게 메리는 주인이 누구고 자기 집이 어디인지 철석같이 알아먹은 똘똘한 녀석이었다.


나에게는 한없이 순하디 순한 그 똘똘한 메리에게도 맹렬한 공격성이 숨겨져 있음을 목격한 적이 한 번 있다. 다행히 그날은 메리의 목줄을 꼭 잡고 산책한 날이었다.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차들이 주차되어 있는 골목길로 자꾸만 나를 끈다.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도 메리는 자꾸만 고집을 부린다. 긴장감이 돈다. 그러다 순식간에 뭔가를 발견했는지 머리와 앞발은 낮게 엎드리고 엉덩이를 하늘높이 치켜세웠다. 순간 비명을 지르는 듯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고 우리 집 개 메리는 선홍빛 잇몸과 함께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이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나움으로 고양이를 쫓아냈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상황이 재빠르게 정리되고 우리는 다시 집으로 갔다. 메리가 달리 보였다. 역시 내 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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