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by 엘샤랄라

33-14번지 집은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이었다. 골목길이지만 한 두대 정도의 차가 서로 눈치껏 양보해 가며 지나다닐 수 있는 비교적 넓은 도로가 동네 슈퍼를 끼고 삼거리로 나 있었다. 도로가 아니었기에 길 위에는 도로를 나타내는 그 어떤 선도 그려져 있지 않았다. 그래도 딱히 큰 사고는 없었다. 길에서 놀다가도 차가 오면 비키면 되었고, 차들도 골목길임을 인지하고 빠르게 달리지도 않았다. 굵직한 도로를 중심으로 구역별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는데, 참으로 신기한 게 멀찍이서 보면 그저 이 집과 저 집의 담장이 나란히 놓여져 있어 길이 나 있을 것 같지 않은 그곳에 쥐구멍처럼 길이 나 있었다. 그 길의 폭은 일정하지 않았고 좁게 시작해서 다소 넓어졌다가 다시 좁아지고는 했다. 그래도 사람과 자전거 정도는 능숙하게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의 길들이었기에 자주 이용하지는 않아도 시간에 쫓겨서 지름길이 필요할 때에는 꽤나 요긴했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실가닥처럼 나 있는 골목길이 꼭 남의 집 앞을 불순하게 지나가는 것만 같아서 굳이 가볼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웬만하면 공공의 길이라 인식되는 길 위주로 다녔다. 슈퍼 바로 옆으로 난 골목길로 쏙 들어가자마자 바로 오른쪽으로 우리 집이었기에 집에 가기 위해서는 골목길 안쪽까지 쑥 들어갈 필요는 없었지만 우리 집을 끼고 뒤쪽으로는 나름 뒷골목이 또한 거미줄처럼 엉켜 있었다. 보통은 앞길로만 다녔지만, 살다 보니 대담해져서 뒷길로도 이따금씩 다녀보긴 했다. 그렇다 할지라도 여전히 좁은 뒷길을 걸어갈 때 내 모습은 초조한 듯 종종걸음이었고, 대범한 척 뚜벅뚜벅 걸어가는 듯하면서도 행여나 2,3미터 앞에서 사람이 다가오면 미리 피해 줄 태세를 하였다.


골목길을 지날 때에 집집마다 굳게 닫혀있는 철문들을 본다. 주황색, 파란색, 회색 가지각색이다. 저 대문 안에는 어떤 사람이 몇 명이나 살까 나름 눈대중을 해보고 상상해 본다. 내 친구의 집이 있나 흘끗 거리지만 막상 아는 집은 많지 않다. 부모님의 주된 생활반경은 가게를 중심으로 돌아갔기에 집은 그저 여인숙이나 별반 다름없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가게에서 보내는 부모님이 부재한 집을 중심으로 초등학생이 동네에서 사교력을 발휘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했다. 그 와중에 도서관, 학교, 부모님의 가게가 모두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였기에 그 세 군데를 거점으로 하여 궤도가 형성되었고 핸드폰 하나 없었어도 나는 그 궤도를 중심으로 안정감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며 활보하였다.


하지만 그런 노란색 안전선 안에서도 예상치 못한 음침한 사건은 일어나기 마련이었다. 여느 때처럼 부모님 가게에 들러서 텔레비전 좀 보다가 밥도 한 끼 챙겨 먹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바쁘지 않으면 엄마는 그런 내가 무사히 가고 있는지 가게 앞에 서서 지켜보다가 들어가신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었고 환한 대낮이었기에 나는 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엄마에게 어서 들어가라며 눈짓을 했다. 발걸음을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초등학생처럼 보이는 남자아이가 골목길에서 불쑥 튀어나온다. 갑자기 튀어나와 뭐지 싶었는데, 그냥 튀어나온 모습이 아니어서 더 황당했다. 나는 그때 단발머리 중학생 정도 되었었고 그 아이는 고작해야 초등학생이었는데 조그만 바지를 홀라당 내리고 내 앞에 등장한 것이다. 소리를 지를 것도 없이 별 꼴을 다 본다며 무시하고 그냥 내 길을 갔다.


골목길은 내가 볼 수 있는 시야가 제한적이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경계한다고 하지만 그건 한계가 있다. 숨어 있다가 무엇이라도 불쑥 튀어나오면 대응할 방책이 그다지 없다. 조용한 주택마다 창문이 달려 있고 창문마다 사람들의 눈이 한두 개씩은 붙어 있을까 해도 적막감이 흐른다. 층간소음으로 위층에도 아래층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기척을 시도 때도 없이 느끼는 아파트와 달리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 맞는지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게 한다. 지나가다 굳게 닫혀 있던 대문이 열려 있기라도 하면 나도 모르게 궁금해서 흘낏거린다.


33-14번지는 언제나 그곳에서 굳건하게 나를 지켜 줬지만, 나는 하루가 다르게 커갔다. 펑퍼짐한 교복을 입고 곱실거리는 머리를 손으로 눌러가며 가까스로 단발머리를 유지하던 중학생을 지나 고등학생이 되었고 고등학교 다니는 3년 동안 그 집도 나에게는 여인숙이 되고 말았다. 0교시 자율학습을 위해 아침 일찍 나가서 야간 자율학습까지 하고 돌아오면 나 없이 혼자 남겨져 있었을 그 집이 그리웠다. 기껏 우리집이 생겼는데 막상 집에서 뒹굴거리던 시절은 참으로 짧았다.


대학생이 되면서도 집과 나 사이의 거리는 좀처럼 가까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밤 11시가 넘은 시간, 시내버스에서 내렸다. 버스 정류장에서 집까지 가는 길은 구두를 신어서 그랬는지 더 멀게만 느껴졌다. 'ㄴ'자로 돌아가야 하는 길을 그날은 골목길 사이로 가로질러 가기로 했다. 드문드문 설치된 가로등은 아주 밝아졌다가도 몇 걸음 안 가서 어두침침하다. 침침한 그곳에서 음침함이 느껴졌지만 집 주변에서 나는 보호받는 존재였기에 씩씩하게 걸어갔다. 그러다가 등 뒤쪽으로 초대하지 않은 발걸음을 느꼈고, 큰길로 벗어나야 할 것 같은 위기의식이 급격히 나를 감쌌다. 밤 12시를 향하던 그때, 다행히 잠 못 이루는 할머니 한 분이 집 앞을 쓸고 계셨다. 다행이라 말했지만 밤 12시 가로등 아래 할머니 모습도 반갑지만은 않은 납량특집이었다. 어쨌거나 기댈 대 없는 거죽만 남은 할머니 앞에서 아는 사람을 만난 것 마냥 속도를 줄이니 이십 대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가 후드를 뒤집어 쓰며 내 앞을 가로지른다. 나는 안전을 위해 차간거리를 두고 운전하듯 그 사람과 거리를 두며 걸었고 이제 마지막 골목만 지나면 곧 우리 집이다. 집을 앞에 두고 후드 쓴 남자가 바로 그 골목으로 들어간다. 내가 모르는 동네 사람이었나 싶어서 순간 마음이 놓이려는 찰나, 가로등 아래서 다시 그 남자가 나타나 아무 일 없이 바지를 내리고 서 있었다.


나는 이제 단발머리 중학생도 고등학생도 아니고 어엿한 이십 대였는데 순간적인 공포심이 극에 달았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뒷걸음질 치며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냈고, 그 낯선 이는 가로등 아래서 이상한 짓은 혼자 다해놓고 자기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며 나에게 다가오려 했기에 나는 냅다 소리를 지르며 빨간 벽돌 우리 집을 향해 사색이 되어 뛰었다. 때마침 늦는다 싶어 걱정이 된 엄마가 낯선 소리를 듣고 문 밖에 나와보려 하였고 그런 엄마를 만나 나는 무사히 집에 착륙할 수 있었다. 집 안의 온기에도 한 동안 손발이 덜덜덜 떨렸다. 행색이 누추해서 절로 피하게 되는 모습이 아니었고, 그저 수수한 학생의 모습이었기에 설명할 수 없는 배신감에 기운이 빠졌다. 보이는 것으로 나름의 단서를 던져준다 생각했던 세상에서 어쩌면 그건 껍데기에 불과할 수 있으며 다만 한 꺼풀의 껍데기 밑에 숨겨진 인간의 진실성은 아직 세상을 다 겪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캄캄한 심해처럼 다가올 뿐이었다. 멀쩡해 보인다는 것의 기준을 다시 샅샅이 뜯어 봐야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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