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얼굴은 내 것이 아닌 타인의 것이었다

by 엘샤랄라

"사실이란 것은 없고,

해석만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


남편이 설거지를 하고 있다.

그릇을 놓기 위해 남편이 살짝

옆으로 비켜 선 사이,

나는 남편의 머리 바로 위 찬장에서

꺼낼 것이 있어 덮개를 열었고,

바로 그 찰나에 남편이 움직이며

찬장 덮개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혔다.

예상치 못한 사건이었고,

내가 가늠하지 못할 정도로 세게 부딪혔는지

남편의 표정은 볼성 사나울 정도로 일그러졌다.

남편 입장에서는 얼마나 황당했겠냐만은

남편의 일그러진 얼굴을 본 나는

'아무리 아파도 그렇지, 나도 일부러 그런 게

아닌데, 상대방이 무안하게 어떻게

저렇게까지 아파할 수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건 처음에 든 생각이었다.

지극히 나를 중심으로 한 이기적인 생각.

그러고서는 떨떠름하게 '미안하다' 말하고

각자의 일로 돌아갔다.


그러다 며칠 뒤, 차로 이동하는 중에 문득 다시

그날의 남편 표정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남편이 느낀 '고통의 강도'라는 사실보다

'나의 해석'에 집중했다.

'서운하고 무안하다'는 감정에 집중하기보다

나는 그동안 어떠했는지,

아파서 일그러진 그의 얼굴 표정 속에서

되려 나의 얼굴을 되새겨봤다.

남편에게 무심결에 보였던 냉담한 표정과

여과 없이 드러냈던 싫은 기색 하나하나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나는 나의 얼굴 표정을 생생하게

볼 일이 되려 드물다. 아침과 저녁, 두 번인가.

그렇게 잠깐 사이, 나는 부끄러움과 동시에

깨달음으로 몸에 전율이 인다. 그랬구나,

나의 얼굴은 내 것이 아닌 타인의 것이구나.

내가 나의 얼굴을 가꿔야 하는 이유는

나의 만족보다는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소중한 그 사람의 행복을 위함도 있었다.

나의 온화한 미소로 상대방 또한 미소 짓고

그 미소가 다시 나에게로 화답하는 선순환이다.


남편이 항상 나에게 원했던 단 한 가지,

자신을 향해 환히 웃어주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일 끝나고 집에 도착했을 때

자신을 향해 환하게 맞이해 주는 것.

내가 세상을 향해 웃어야 하는 이유를

'사건에 대한 해석'을 달리함으로

마흔이 넘어 진정으로 깨닫는다.


'사건'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나,

'해석'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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