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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칭과 2인칭의 대화가 좋다

by 엘샤랄라

여중, 여고를 나왔다.

아침에 학교에 가면 먼저 온 친구들은

지난밤에 보았던 드라마와 예능 이야기로

한껏 고조되어 있다.

나는 그 이야기에 끼어 있기도 혹은 끼어있지 않기도

했다. 나에게는 TV 속 남 이야기였으므로.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보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훨씬 더 시급하고 다급했으므로.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도 친구들은 잘도 모인다.

선생님 험담이 대부분이다.

나는 그 자리에 끼어서 한패가 될까 하다가

조용히 내 할 일을 하러 간다.

나를 가르쳐주시는 선생님에 대해 괜히 안 좋은 감정만

생기고, 공부에 방해만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고등학생 때 이야기다.

그런 나를 친구들은 퍽 재수가 없어 보였겠다.


내가 좀 컸다고 생각하자 엄마는 나에게

아빠에 대한 불만을 곧잘 말씀하셨다.

"내가 이런 이야기 너 아니면 어디 가서 하니,

내 얼굴에 침 뱉기지.

너니까 그나마 이야기할 수 있는 거야."라 하셨지만,

엄마가 말하고 있는 그 남자는

나의 아버지이기도 했다.

엄마에게 전해 듣는 아버지에 관한 일방적인 이야기로

나는 나 또한 아버지가 미워질까 두려웠다.

나 자신이 두려웠다.

나는 정색을 하며, 그래도 하지 말라했다.

그저 가볍게 농으로 치면서 엄마에게 공감해 줘도

될 일이었지만, 그런 눈치를 알게 된 건

나도 결혼해 보고 한 남자와 십 년 넘게

살아보고 나서야 가능해졌다.

그 일이 가능해지니, 이제는 되려 나의 어머니가

내 앞에서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일이 없어졌다.


'사실'이라는 알맹이가 없는 이야기와

일방적인 시선을 담은 이야기는

그저 들어주는 모양새만 취할 뿐이다.

애초에 잘 꺼내지도 않거니와,

이야기를 하면 당시에는 후련해질 수는 있어도

이야기의 당사자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고 있을 리 만무하므로 상황에는 전혀 진전이 없다.

정말 고쳐야 할 일이면 앞담을 해야 할 일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사람인지라,

험담하는 이야기가 나올 것 같으면

그 밑에 깔린 그 사람의 서운함과 속상함,

심경에 더 주목한다. 그래서 그때 당신의 마음이

상했던 거라며 험담의 대상이 아닌,

험담하고 있는 사람에게 더 관심을 집중한다.

마음을 충분히 터놓고 나면,

화제는 자연스레 넘어간다.

알맹이 없는 이야기에서 성장하고 성숙해 나가는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다.


나에게 관심 있는 이야기는

그와 그녀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 앞에 있는 '너'의 이야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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