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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둘, 이십 대의 나를 만날 수 있을까

by 엘샤랄라

어쩌면 내 삶을 가장 가만 두지 못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나일까.


학원 강사로 경력을 쌓으면서 즐겁게 일했다.

하지만 직계가족의 결혼식이 아니라는 이유로

토요일 하루 수업을 조정할 수 없다는

규정이 납득되지 않았다.

이모 딸의 결혼식이었다.

스물여덟, 학원을 박차고 나왔다.

수학 선생님 두 분과 수업을 시작하며

본격적인 프리랜서의 길로 들어섰다.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움직여야 했지만,

그 어떤 규정에 얽매이지 않고 일만 할 수 있어

집중도가 남달라 지면서 수입이 최고치를 찍었다.

스물아홉, 결혼을 하고 그다음 해 임신을 했다.

입덧이 있어 괴로웠지만, 아이를 낳고도

일을 그만두고 싶지도 않았고, 그만두어서도 안 됐다.

내 아이니, 내가 케어할 수 있는 부분은

내가 직접 하고 싶었다.

학원을 정리하고, 30평대 아파트를 구했다.

방 하나를 따로 빼서 수업을 시작했다.

딱 한 달 몸을 풀고 바로 수업을 해야 했지만,

실적이 좋아 아파트에 입소문이 났다.

2016년 12월, 안정적인 수업을 위해

아파트를 매매했다.


마흔, 고3 학생들을 대거 졸업시키고

신입을 받고 있지 않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읽고 싶었던 책을 읽고,

새벽마다 글을 쓴다.

책을 썼고, 시를 썼고, 시민기자단 활동을 했으며,

산을 다녀오고, 무용을 배우기 시작했다.

지금 이래도 되나 싶은 무모한 도전의 연속이다.

나의 글은 눈에 띄는 화제성은 없지만,

글이 주는 자유를 알기에 내가 나를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알게 되었다.

글을 다듬어 생전 처음 응모라는 것도 해보았다.

처음이 두 번이 되었고, 두 번이 세 번 될 듯하다.


그리고 올해 마흔둘,

이십 년의 영어강사 커리어가 쌓였다.

앉아서 하는 강의 말고, 서서하는 강의,

익숙한 공간을 벗어나서 하는 강의,

혼자 말고 동료 교사가 있는 강의가 하고 싶어졌다.

집에서 보는 엄마선생님 말고,

밖에서 만나는 엄마선생님도 보여주고 싶어졌다.


아무래도 나는 또 한 번 사고를 칠 것 같다.

의무감에 해야 하는 버거움이 아닌,

봄기운에 실려가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이십 대의 나를 만나러 가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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