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나면 뭐든 정리해야 직성이 풀렸다.
읽은 티를 내야 했다.
읽고 난 직후의 감동을 조금이나마 풍성하게
붙잡아 두려고, 최소한의 시간차를 허락했다.
그렇지 않으면 잊어버릴 것만 같았다.
나중에 다시 꺼내보려고 핵심내용이라도
요약해 두기도 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읽고 기록하는 방식이 사뭇 달라졌다.
핵심 메시지가 일관되게 분명하여
즉각 적용해 봄직한 내용의 실용서들은
나의 일상이라는 도화지에 써낸다.
쉬운 듯 쉽지 않은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책들은
다 읽고 난 후에도 며칠 숙성시킨다.
숙성시키는 와중에 듬성듬성 들춰보며 또 음미한다.
문장과 내용, 분위기, 문체를 마음에 담아놓고
쓰고 싶을 때 쓰거나, 불현듯 꺼내 쓴다.
짧게 쓰거나, 나의 이야기에 언뜻 녹여냄으로
참고할 뿐이다.
책이 주는 감흥에 나 자신을 충분히 담궈본다.
지나간 이야기를 들추고 또 들춰보며
놓아주는 일이 점점 더디다.
읽는 일은 여전히 신난다.
만화책보다 책이 좋고, 영상보다 책이 좋은 사람이다.
잘 읽고 있다 자부할 수는 없어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자신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은 부쩍 정리에 게으르다. 대신,
나의 글을 쓰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부지런을 떠는 맥락이 달라졌다.
쉽게 읽고 힘들게 쓰는 작업에 몰두하는 중이다.
그렇게 글과 더 친해지는 중이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시간을 보내게 하는 일이다.
요즘 내가 배우는 한국무용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