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다.
재미있게 읽다가 문득 출판 연도가 궁금해진다.
이질감없이 자연스레 공감되는 문구가 많아서
비교적 근래에 쓰인 책이라 장담했다.
적어도 2000년대에 쓰였겠거니 했다.
하지만 막상 확인해 보니, 이십 년이 훌쩍 지났다.
2025년 3월 3주차 주간베스트 1위
양귀자의 <모순> 이야기다.
이 책은 작년에 내가 활동하는
'학부모 글쓰기 모임'에서
선정되어 함께 읽고 서평을 작성했던 책이다.
안진진에게는 시장에서
억척스럽게 내복을 파는 엄마와
부유하지만 지루한 삶에 몸부림치는
일란성쌍둥이 이모가 있다.
둘 다 선을 보고 결혼했다.
그저 태어난 순서로 선을 보게 되었는데,
운명은 극명히 그 둘을 전혀 다른 삶으로 이끌었다.
남자 하나 잘못 만나 달라지는 인생인가 싶었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질적 조건만 갖춰진다면,
살아가는 일도 즐겁기만 할 것 같은데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까 하는 삶의 면면들을
찬찬히 보게 만들었다.
지속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터짐으로
골치가 아플 것 같은데, 그럼에도 되려
삶의 의욕을 불태우는 안진진의 엄마를 보면서,
그럼에도 살아내는 건 나의 몫인가 싶다.
안진진의 엄마를 보고 있자면, 나의 엄마,
내 남편의 엄마가 떠오른다.
시어머님은 여전히 손에서 일을 놓지 않고 계시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집에 들어앉아 있으면 되려 우울해진다며,
자신만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지인들이 있다며,
어머니에게는 일을 해야 하는 온갖 구실들이 있다.
다리가 편찮으시니, 덜 움직이시고 쉬시라 말씀드려도
아직은 아니란다. 오 년은 더 일하실 수 있으시단다.
이제 일은 내려놓았지만, 우리 엄마도
가지고 있는 돈 축낼 수 없다며 용돈벌이 하겠다고
지인의 가게를 도와주러 여전히 나가신다.
어떻게 하면 최소한으로 일하면서,
물론 일을 아예 안 하면 더 좋겠다는 마음으로
방법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성실하게 일함으로 얻는 가치를
등한시하게 되는 요즘,
그 시절 나의 엄마, 내 남편의 엄마는 쉬면 되려
온몸이 쑤시다며 볼멘소리를 하시면서
참으로 지금까지 바지런하게 삶을 꾸려 오신 분들이다.
별 일 없이 편하게 장구 배우며 지내는 줄 알았는데,
문득 친정엄마에게서 전화가 온다.
파김치를 담갔으니, 가져가란다.
한 달에 한 번, 진료를 위해 시어머님을 병원에 모셔다
드리는 날이면, 어머님 손에는 항상 무언가 들려있다.
참기름이며, 들기름에 아이들이 잘 먹는
어머님표 빨간 게장무침이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회자되는 작품들이 있다.
우리 곁을 쉬이 떠나지 못하고 남는 작품들이 있다.
그저 반짝 세상의 흐름을 읽어내는 책이 아닌,
우리의 정서와 삶을 관통하는 질문을 던진 까닭이다.
지적 허영 속에서 혼자만의 상아탑에 갇히는 일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